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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크톤 Jul 01. 2024

아빠와 엄마와 위로

2024년 5월 18일



 아빠가 어젯밤 짜증이 잔뜩 난 채로 집에 들어오셨다. 아빠는 젊으실 적부터 그런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하시곤 했다. 개인적으로 힘든 게 있거나 자식들 하는 짓이 마음에 안들 때면, 차분하게 이야기하며 푸는 것이 아니라 온 집안을 쿵쿵거리며 물건을 집어던지다시피 내려놓고 욕설을 읊조렸다. 기분 안 좋은 것을 직접적으로 말하기는 어렵고, 근데 또 알아는 줬으면 좋겠고 그런 마음이었겠지. 고등학생 때 친구들에게 그런 아빠 이야기를 하며 엉엉 운 적이 있다. 나는 지금도 그릇 소리가 크게 나는 것에 트라우마가 있다. 어젯밤과 같은 상황이 있을 때면 무의식으로부터 오는 은은한 공포감과 함께 집을 당장 벗어나고 싶어진다.

 이전까지는 아빠가 그러고 있을 때면 혼신의 힘을 다해 모른 척했었는데, 어제는 나도 모르게 방문을 열고 나갔다.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빠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저녁은 먹었냐며 동문서답을 한다. 재차 묻는다. "무슨 일 있으셨는데요." 그냥 힘들어서 그렇다고 짤막하게 대답을 하시고는 조금 사그라드는 모습을 보인다. 꽤나 민망하셨을 것이다. 배배 꼬인 채 행동하는 사람은 누군가 순수하게 본질을 향해 곧바로 들어오면 화들짝 놀라며 부끄러워하기 마련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아빠는 식사를 하고 계셨다. 나 역시 빵을 굽고 과일을 손질해 접시에 담고 식탁에 앉았다. 아빠는 어젯밤에 대한 화두를 꺼내셨다. 요지는 일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다는 것이었다. 일흔이 다 된 아빠 연세에 자연스러운 일이다. 운전이라는 일이 항상 사고의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에 일할 때는 온 정신과 몸이 잔뜩 긴장을 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녹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러고는 본인이 일을 그만둘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셨다.

 어떤 반응을 예상하셨는지 대충 예상은 가지만, 나는 이런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하고 있었고 나름의 현실적인 대안들도 정리해놓은 터였다. 아빠는 본인이 퇴직 후 알뜰히만 생활한다면(물론 아프지 않다는 전제하에) 10년 정도 버틸 수 있는 자금이 된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본인이 10년보다 더 살면 어떡하냐고 나에게 물으셨다. 참 마음 아프고도.. 어이가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허망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며 그때쯤이면 동생도 자리를 잡고 나도 여유가 생겼을 테니 도와드리면 된다고. 미리 걱정하시지 말라고 대답했다. 아빠는 택시 넘버 값이 조금 더 오르는 것을 기다린 다음 퇴직하는 것을 고려하신다고 하였다.

 모든 내용을 듣고난 나는 아빠에게 진지하게 말씀드렸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으실 때 그만두셔라. 아빠가 그만큼 힘들어하시면서까지 일하실 필요가 없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일을 그만두신다면 기초 생활수급대상이 되어 도움을 받으실 수도 있을 거고. 노인 일자리 지원 사업도 있으니 용돈벌이처럼 하실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어찌 됐던 있는 돈으로 아끼고 살면 된다.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

 아빠는 갑자기 눈을 내리깔고 물먹은 목소리가 됐다. 안 그런 척하지만 눈물이 많은 우리 아빠가 울음을 삼킬 때의 습관을 나는 안다.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며 스물셋의 내가 떠올랐다. 이른 입사로 대학교 졸업식도 가지 못한 채 일을 시작했던 나는, 대학병원 간호사 생활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간호사 힘든 건 누구나 들어본 적 있겠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건 무엇을 상상하든 그것을 뛰어넘는다. 심지어 그 야만적인 시대의 신규였으니. 어느 날 힘든 하루 끝에 퇴근하고 집에 와 엄마 앞에서 펑펑 울며 고충을 토로했다. 그걸 듣는 엄마의 얼굴은 안타까운 표정이었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정반대였다. 그래도 어떡하니. 그만 둘 수는 없잖아. 다녀야지...

 우리 엄마는 내가 어릴 적부터 나의 어려움에는 한 톨의 관대함도 내어주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런 엄마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매번 나의 내면을 깊게 할퀴었다. 동생들보다 다섯 살, 일곱 살이나 많은 내가 엄마 눈에는 얼마나 어른 같았으면 그랬을까. 어떤 마음인지 이해하면서도 그래도 나는 고작 스물셋이었는데. 서른넷이 된 내가 봐도 스물셋인 친구들은 너무나도 어리고 여린데... 나를 아는 나는 그것이 진심으로 그만두겠다는 말이 아니었음을 안다. 어려움을 견딜 수 있는 힘은 충분히 내 안에 있었고, 나는 그저 한 마디의 진심어린 위로가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힘들면 언제든 그만둬도 돼. 그 무엇보다 너의 건강이, 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니까. 인생에서 기회는 수없이 많아. 엄마는 네가 뭘 하던 너의 편이야."


 그 시절의 내게 간절했던 말을 그대로 아빠에게 돌려주는 지금의 나를 보며, 참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부모님이 또다시 원망스럽기도 하고, 내가 불쌍하면서도 기특하기도 하고. 어릴 적 상처투성이인 내가 있기에 좋은 어른이 되어가는 현재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거겠지.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나눌 이야기들이 참 많았을 텐데. 주로 내가 "엄마,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하면 엄마는 그 속없는 웃음을 지으며 "기억은 안 나는데 미안해~~"라고 말할 것이다. 그 어이없는 대화 끝에 이어지는 실소만으로도 마음속 엉켜있던 실타래의 끝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을 것 같다.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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