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둘, 자식은 하나
엄마, 아빠 그리고 나. 두 사람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아이는 어느덧 두 분을 살펴야 하는 어른이 되었다. 두 명의 부모와 한 명의 자식. 내게 스며드는 부담감은 점점 짙어졌다. 이제 고작 삼십 대 중반인데. 뭐 얼마나 대단한 부양을 했다고 이럴까. 요즘 60대는 노인 취급도 안 해주는 걸. 아직 본격적인 자식 된 도리는 시작도 안 했는데 걱정만 한가득이다. 앞으로 나는 어떤 것들을, 얼마나 많은 것들을 혼자 감내해야 할까.
부모를 챙겨야 하는 나이가 되니 외동이란 이유만으로 나를 부러워하던 사람들이 사라졌다. 형제끼리 의절하지 않는 이상은 대부분이 그러했다. 아마 그들도 알고 있겠지. 나이 들어보니 형제가 있는 게 백번 낫다는 걸. 함께 정서적 불안을 공유하고, 금전적 부담을 나눠가질 상대. 클수록 형제는 필요한 존재임을 자각하고 안도하겠지.
반대로 나를 보는 시선에는 애잔함이 더해졌다. ‘앞으로 너는 많은 고비들을 혼자 넘어야겠구나’라는 눈빛. 나를 짠하게 여긴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지 간신히 생각해 낸 위로를 꺼내 보인다.
“그래도 넌 부모님한테 혼자 다 물려받잖아”
이 사람이 말한 상속의 대상이 뭘까? 인생의 가치관이나 삶의 지혜 같은 것을 말하는 건가. 그런 게 아니라면 이런 표면적인 위안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을 무언가는 가족력뿐이니까(현재까지 여드름과 평발을 증여받은 상태. 앞으로 무얼 더 받을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언제 진정한 성인이 되는 걸까. 편의점에서 맥주를 살 수 있을 때? 선거권이 생길 때? 성년의 날이 지났을 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경제활동을 시작한 때로 정했다. 부모님께 의존하던 생활을 청산하고 스스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 그런 어른이 된 나에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 부모님의 용돈이었다.
용돈을 받던 입장에서 용돈을 드리는 역할이 되었다. 내가 돈을 버는 것도 모자라 부모님께 돈을 드린다고? 나 정말 어른이 되기라도 한 건가. 뿌듯함도 잠시. 곧바로 고민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부모님 조공기준을 만들어야 했다.
함께 의논할 상대는 없다. 나 혼자 입법하고 준법하면 된다. 앞으로 계속 다가올 명절, 생신, 어버이날, 결혼기념일 등등. 챙겨야 하는 기념일이 대기 중이다. 한 번 세운 정책은 바꾸기 쉽지 않다. 무조건 신중해야 한다. 매달 생활비처럼 드려야 하나? 아니면 기념일에만? 나에게는 시장조사가 필요했다.
액수도 문제였다. 함께 부담할 상대가 없다. 저 집은 둘이서 50만 원을 드린다는데. 그럼 나는 혼자니까 절반 정도만 드릴까? 아니야… 자식이 하나라고 용돈도 절반만 받으면 속상하잖아. 아니지! 나는 혼자라고 두배로 받고 자랐나? 끝없는 셀프 토론을 마무리했다. 결국 평균치를 조금 웃도는 정도를 드리기로 했다. 소유권 분쟁을 막고자 2개의 봉투를 준비해서 각각 챙겨드렸다. 이런 정성을 보이다니. 첫 월급에 제대로 취했나 보다(처음 시행된 규칙은 절대 변할 수 없기에 지금까지 계속 따로 드리고 있다. 그때의 결정은 아직도 매우 후회 중이다.).
자식을 키우는 것과 부모를 부양하는 것.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식은 손이 덜 가지만, 부모는 손이 더 많이 간다는 것이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는데 부모님은 지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디지털이 점령해 버린 세상에서 여전히 멀미 중이다. 어지러움을 극복하는 대신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한다. 핸드폰 조작 몇 번이면 가능한 계좌이체를 포기하고 집 근처 은행 ATM기기를 찾아간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기가 온다고? 아마 우리 엄마는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오프라인 공간마저도 변하고 있다는 거다. 카페에서는 키오스크로 커피 주문을 받고, 마트에는 셀프 계산 기계가 캐셔보다 많다. 전화로 음식을 배달하던 문화는 사라졌다. 모두가 어플을 이용해서 주문한다. 디지털 소외계층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결국 자식은 부모의 디지털 대행인이 된다. 가끔 본가에 가면 그간 밀린 대행업무를 처리하기 바쁘다.
"TV에 넷플릭스 연결이 끊겼는데. 한번 봐줘"
"핸드폰에 카카오톡 알림이 이상한데. 어떻게 해?"
"이거 인터넷에서 사면 싸다던데. 네가 찾아봐"
현관에서 신발을 벗기도 전에 물음표가 쏟아진다.
밀린 빨래와 설거지를 하듯이 내게 주어진 심부름을 처리한다. 타지에 사는 외동은 집에 갈 때마다 일거리가 쌓여있다. 다른 부모들은 이 정도는 할 줄 안다며 비교 공격을 해보지만 어림없다. 이런 건 원래 자식들이 다 해주는 거라고 역공격을 당한다. 나는 자식들이 아니라 자식인데… ‘들’이 되도록 한 명 더 낳지 그랬어!라는 말이 목젖을 치고 다시 돌아간다.
듣자 하니 형제가 여럿 있어도 부모님의 요구사항을 해결하는 자식은 정해져 있다고 한다. 똑 부러지는 장녀, 편하고 싹싹한 둘째들이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모든 요청이 쏟아지는 건 아니다. 가끔은 다른 자식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대직자가 없다. 요청자에 비해 실무자가 부족하다. 거의 다 하는 것과 전부 다 하는 건 전혀 다르다.
사실 앞서 말한 사례들은 별 문제도 아니다. 귀여운 투정에 불과하다. 가장 슬프고도 난감한 순간은 부모님이 아프실 때다. 시간은 부지런도 하여서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친다. 세계 인구가 24년 기준으로 81억 명이라는데.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명을 놓치는 법이 없다. 시간 앞에 장사 없고 세월은 야속하다. 나 역시 우리 부모님은 영원히 건강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 착각은 20대 끝자락에서 사라졌다. 내가 엄마의 보호자가 된 순간이었다.
엄마가 갑자기 코피를 흘렸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평소 앓던 고혈압 때문에 실핏줄이 터진 거라 생각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동네 병원에 가니 큰 병원을 가보라며 소견서를 써주었다. 당장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생전 처음 듣는 낯선 검사들을 받고 대기실에서 기다린다. 큰 병원이라 사람이 많다. 세상에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새삼 느끼게 된다. 한참 뒤 결과가 나왔다. 담당의의 방으로 들어가니 나이가 지긋한 교수님이 앉아있다. 그는 유감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증상을 설명했다. 빠른 시일 내에 심장수술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심장에는 판막이 있다. 피가 한 방향으로만 흐를 수 있도록 제어하는 개폐장치라고 생각하면 쉽다. 엄마의 심장은 한 개의 판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혈액이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지 못해 역류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심장이 크게 부어올랐다. 평소 작은 오르막에도 숨을 가쁘게 쉬었던 이유가 이 때문인 듯 했다.
병원이라고는 동네 내과나 치과에 가는 게 전부였던 우리 가족은 낯선 대학병원 시스템에 위축되었다. 긴장되는 이유가 큰 병원 때문인지, 아니면 큰 수술 때문인지 헷갈렸다. 엄마는 간호병동으로 입원했다. 간호병동은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가 간호해 주는 곳이다. 하지만 설명과 다르게 보호자나 개인 간병인이 꼭 있어야 했다. 보호자가 없으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화장실조차 가기가 힘들었다.
수술과 회복까지는 보통 일주일이 소요된다고 했다. 유일한 공동 보호자인 아빠는 휴가를 내지 못했다. 결국 내가 회사를 일주일간 비우기로 했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입 밖으로 엄마의 상태를 설명하기 싫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직장인이 갑자기 긴 휴가를 내는 것은 많은 눈치가 보이는 일이다. 허락을 받기 위해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공개해야만 했다.
다행히 엄마의 수술은 잘 끝났다. 하지만 한 시름을 놓았더니 다른 고민이 머리를 장악했다. 앞으로 생겨날 예측할 수 없는 많은 일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일어나지 않으리라 자만할 수 없는 일들. 상상하는 순간 현실이 될까 봐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들. 그 순간이 오면, 과연 나는 혼자 씩씩하게 이겨낼 수 있을까. 환자복을 입은 엄마의 모습보다 어색하고 낯선 건, 보호자가 된 내 모습이었다.
그동안 부모의 사랑을 독점한 대가는 어른이 되자마자 조금씩 청구되었다. 취업하는 순간부터 갚아야 하는 학자금 대출처럼 말이다. 지금은 간단하고 수월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아마 날이 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놓이겠지. 함께 의논하고 의지할 상대가 없다는 사실도 주기적으로 깨닫게 되겠군.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것처럼, 우리 부모님도 나에게서 독립하기 위해 애쓰신다. 아마도 하나뿐인 자식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겠지? 웬만한 건 본인들끼리 해결하려 하신다. 가장 중요한 노후대비도 마찬가지. 우린 경제적으로 서로 독립한 사이다. 도움받지 않는 자식, 손 벌리지 않는 부모다.
하지만 부모님의 자립심이 나의 모든 걱정을 해소시키진 못한다. 어느 순간부터 물가에 내놓은 부모처럼 모든 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눈 뜨고 코 베어가는 세상. 순진한 어르신 취급을 당하면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보이스피싱을 당하진 않을까 신종수법을 실시간으로 공유했고(내가 제일 먼저 당할 뻔했다), 코시국에는 코로나에 걸릴까 전전긍긍했다(내가 제일 먼저 확진되었다).
부모님을 살피는 사람은 나 하나라며. 세상에 온갖 짐은 다 짊어진 척을 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참견할 의욕은 없는 나란 존재. 한심했다. 아직은 정정한 두 분에 대한 안심일까. 상황이 달라지면 태도도 달라지려나. 성숙해지진 못해도 그렇게 변할 준비는 하고 있어야겠지? 엄마와 아빠를 책임진다는 무거운 생각보다는 내가 받은 사랑을 돌려준다는 산뜻한 마음을 가지기로 한다. 일단은 그렇게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