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꾸준히 퍼스널컬러가 유행이다. 퍼스널컬러란 개인에게 맞는 채도, 명도, 색을 말한다. 해당 이론에 의하면 얼굴톤은 크게 둘로 나뉜다. 노란색이 어울리는 ‘웜톤’과 푸른색이 잘 받는 ‘쿨톤’. 거기에 사계절이 추가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웜톤, 쿨톤이 각각 쌍을 이루어, 총 8가지의 퍼스널컬러가 완성된다. 봄 브라이트, 여름 라이트, 가을 뮤트, 겨울 딥 등등. 그 이름도 휘황찬란하다.
인터넷에서 무료 검사가 가능한 MBTI와는 달리, 퍼스널컬러는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다. 자가검진은 본인의 주관적 판단이 포함되어 정확성이 떨어지고, 전문가를 통한 검사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유명 연예인이 방문했던 샵은 인당 10만 원이 넘었다. 그 마저도 예약이 어려워 두 달 넘게 대기해야 한단다. 어휴... 됐다, 됐어! 난 보나 마나 웜톤이야! 셀프 점검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런데 얼마 전, 무료로 퍼스널컬러를 진단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톤이 맞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반전이 생기려나?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됐다. 전문가 선생님은 형형색색의 보자기 뭉치를 나의 턱 밑에 대기 시작했다. 똑같은 표정과 동일한 조명인데 신기하게도 낯빛이 바뀐다. 색깔 하나 달라졌다고 이렇게 안색이 변하다니. 사람마다 어울리는 색은 따로 있구나 싶었다.
문득 회사생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각자 어울리는 색이 다르다. 사람마다 톤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어울리는 역할이, 누군가에게는 어색할 수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수월한 업무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기도 하다. 회사원들도 모두 퍼스널컬러를 갖고 있다. 우리는 그걸 활용할 필요가 있다.
"여름 쿨톤이세요!"
"네? 제가요?"
퍼스널컬러를 자가진단할 때 가장 많이 실수하는 부분이 있다. 얼굴의 밝기를 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대게 하얀 피부를 쿨톤, 까무잡잡한 피부를 웜톤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이미지가 있다. 이는 생각보다 단단하여 쉽게 변하지 않는다. 타인의 첫인상이 바뀌기 위해서는 40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어떤 연구에서는 60번을 만나야 변한다고 했다. 본인의 인상을 바꾸는 데는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바쁜 현대인은 스스로를 돌아볼 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를 만나는 기회가 인생에 60번이나 찾아올까.
'나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싫어해'
'나는 단순하고 간단한 일이 좋아'
혹시 자신을 이렇게 단정 짓고 있지는 않는가? 당신은 생각보다 남들 앞에 서는 걸 즐길 수도,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 희열을 느끼는 사람일 수도 있다. 도파민이 분출될 새로운 창구를 스스로 막고 있는 건 아닐지. 지금까지 겪어온 한정된 경험으로 자신을 가두고 있는 건 아닐지 생각해 보자.
"발표 한 번 맡아서 해볼래?"
갑자기 팀장님이 나에게 부서 핵심사업에 대한 발표를 제안했다. 선뜻 긍정의 대답을 하지 못했다. 순간 나는 왜 주저했을까. 이건 무조건 나의 성향과 맞지 않는 일이라 생각했다.
나는 나서는걸 극도로 꺼리는 사람이다. 학창 시절에 나를 반장 후보로 추천해 주겠다는 친구를 한사코 말리느라 진땀을 뺀 적도 있다. 하지만 상사의 제안을 거절할 강단은 없다. 직장인에게는 거절의 자유가 없으니까.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한다.
그런데 희한했다.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지만은 않았다. 분명 익숙하진 않은데 어색하지가 않았다. 처음 입어보는 옷인데 묘하게 잘 어울리는 느낌이랄까.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논리적으로 말하는 행위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기까지 한 것 같았다. 어랏? 나 이런 사람 아닌데. 사회생활을 오래 하더니 성향이 변했나?
만약 내가 나의 첫인상만 믿고 누군가 제안한 소중한 기회를 날렸다면? 그랬으면 내게 어울리는 다양한 색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진짜 퍼스널컬러를 찾기 전까지는 많이 경험해 보자. 좋아하지 않는 색도 입어보고, 꺼리던 스타일도 시도해 보자. 혹시 모른다. 의외로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발견할지도.
'추구미'라는 단어를 아는가. 추구하는 미적기준을 의미하는 말로,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뜻한다. 자신의 추구미와 타고난 모습과 잘 맞는다면? 더할 나위 없다. 하지만 간극이 생긴다면? 슬프지만 이상향을 포기해야 한다.
나 역시 쿨톤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연보라색 가디건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쨍한 코발트블루 스웨터를 찰떡같이 소화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영락없는 웜톤이다. 그런 류의 옷을 입는 순간 얼굴빛이 흐려진다. 순식간에 집안에 우환이 생긴 사람이 된다. 이제 그런 색의 옷들은 굳이 입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응 너 아니야~.
타고난 얼굴톤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미백주사를 많이 맞고 비타민C를 다량 섭취한다 한들, 장원영 같은 쿨한 얼굴톤을 가질 순 없다. 그건 내가 이번생에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미련을 버리자. 대신 나만의 웜톤을 살리는 것에 집중한다.
피부톤만큼 변하기 힘든 것이 성향이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억지로 자신을 바꾸려 하지 말자(물론 잘못된 행동은 당연히 바꿔야 한다). 자신만의 퍼스널컬러를 찾은 직장인이라면 그걸 활용하여 일하는 게 좋다.
사람을 대하는 센스가 부족한가? 어느 정도 노력하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의 성향까지 바뀌긴 어렵다. 이런 사람이 의전 업무를 오래 했다간 마음의 병이 나고 말 거다.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하는 건 꼭 필요한 덕목이다. 하지만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죽자 사자 한 곳에만 매달리진 말자. 회사에는 다양한 업무가 있고, 분명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일이 있다.
얼굴톤에 대해 항상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이 있다. 대표적으로 아이유와 수지가 그렇다. 두 사람은 블루계열, 옐로우계열 모두 잘 어울린다. 쿨톤과 웜톤이 전부 가능한 사람이라니.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다.
회사에도 저런 만능캐가 있다. 우직하게 업무도 잘하면서, 사람들과의 소통능력도 뛰어난 직원. 대게 한쪽이 발달되면 다른 한쪽은 소홀해지기 마련인데… 양쪽의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으면서 최상급으로 발달시키는 사람이라니. 사기캐임이 분명하다.
수지 is 뭔들. 수지는 뭔들 안 어울리겠냐는 말이다. 회사의 만능직원들은 아이유와 수지 같은 존재로 생각하자. 너무 부러워하지도 시기하지도 말자. 그냥 나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쟤네 is 뭔들. 쟤네는 뭔들 못하겠어! 그냥 내 일을 하자.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다.
함께 퍼스널컬러 진단을 받았던 사람들은 놀랍게도 거의 비슷한 톤으로 밝혀졌다. 대부분 파스텔컬러나 베이지 계열이 잘 어울렸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대중적인 색상이기도 했다. 반면, 채도가 짙은 버건디나 녹색이 어울리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희소성이 높으니 오히려 멋있어 보였다.
인기 있는 색상은 수요가 많다는 장점이 있지만, 흔한 만큼 개성이 드러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튀는 색상은 다른 컬러와 조합하기 어렵다는 단점은 있지만, 남들보다 돋보이는 장점이 있다. 좋은 톤과 나쁜 톤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톤만 있을 뿐이다. 이 세상에 쓸모없는 색이란 없다.
회사도 그렇다. 이곳에는 다양한 직원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다양성이 필요하다. 큰 조직일수록 더욱 그렇다. 리더십이 넘치는 직원만 있으면 곤란하다. 팔로워십이 충분한 직원도 필요하다. 다 같이 협업하는 것에 능숙한 직원이 있어야 하듯, 혼자서 잘하는 직원도 절실하다. 꼼꼼함이 장점인 직원도 존재해야 하지만, 사소한 것은 웃고 넘길 줄 아는 직원도 있어야 한다.
자신이 가진 능력이 평범하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다. 반대로 자신이 특이한 성향을 가졌다고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조직 내에 당신을 위한 자리는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고유의 개성이 있는 쓸모 있는 직원들이다.
* 사진 출처 : MBC <나 혼자 산다>, 화사-멍청이 MV, 포토뉴스, V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