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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독자 Oct 03. 2024

직장동료 경조사, 어디까지 챙겨야 하나


사회인이 되면, 처음 받는 것들이 있다. 첫 명함, 첫 월급, 첫 사원증 그리고 첫 청첩장. 빳빳하고 흰 사각봉투. 예쁜 스티커가 붙어있어 열어보기가 조심스럽다. 살면서 이렇게 정성스러운 봉투를 받은 적이 있나. 초대장이라고는 어릴 적 친구가 만들어준 생일잔치 카드가 전부였는데.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초대받는 건, 분명 감사하지만 동시에 부담스러운 일이다.


결혼식은 부모님을 따라 몇 번 가봤지만, 장례식은 그렇지 않다. 엄숙해야 하는 자리에 아이들을 데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접한 부고 소식은 입사 동기의 조부상이었다. 갓 수습 딱지를 떼어낸 시절, 나에게 조문은 높은 어르신 같았다.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안절부절못하는 행동, 갈 곳 잃은 눈동자. 죄다 들통나고 말았다.

 

사회생활 10년. 이제는 결혼식이 반갑지 않고, 장례식이 놀랍지 않다. 끝이 없는 경조사. 나만의 기준이 필요했다. 하객룩은 무조건 치마에 구두라는 의무감을 없앴고, 친분에 따라 참석여부를 결정했으며, 상황에 따라 액수를 달리했다. 잣대가 생기니 고민이 확연히 줄었다. 경조사비에 1천만 원을 쓰고 얻은 값비싼 기준이다.




결혼식, 어디까지 챙겨야 하나

같은 층에 근무하지만 복도에서 마주치면 목례만 하던 직원. 그녀가 갑자기 내 자리를 찾아왔다. 느닷없이 인사를 건넨다. 이 사람... 원래 이렇게 사근사근한가?


"안녕하세요! 제가 다음 주에 결혼을 해요"


청첩장을 주고받으며 첫 대화를 나누다니. 나도 나긋나긋하게 축하한다고 대답했다. 엇! 근데 왜 안 가지? 얘기를 더 나눠야 하나? 대화 소재를 찾으려 재빨리 청첩장을 열었다. 결혼식 날짜와 장소를 빌미로 말을 이어간다. 세 번쯤 축하를 반복하니 어색한 대화가 끝이 났다. 휴-.



그녀가 떠난 자리에는 청첩장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저렇게 고급스러운 카드를 받았으니 예의상 곧바로 버릴 수도 없다. 그리고 고민이 시작됐다. 근데... 나 가야 되나? 그 정도로 친하지는 않았는데… 아는 사이도, 모르는 사이도 아닌 애매한 관계. 한참을 갈팡질팡 했다. 결국 결혼식 전날 5만 원을 봉투에 넣어 다른 직원에게 전달을 부탁했다. 다음 해에 그녀는 타 부서로 이동했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알지 못한다. 철저한 남이라는 소리다.


친분이 없다면 챙기지 않아도 된다. 청첩장은 독촉장이 아니니까. 주는 사람도 당신의 축하금을 기대하진 않았을 거다. 줄까 말까 고민하다가 청첩장을 건네었을 가능성이 99%. 그러니 큰 부담 갖지 말자. 당신이 받은 초대장은 사내 공람 메시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상대방에게 진심 어린 축하만 전해도 된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결혼식 참석은 꼭 해야 하나

얕은 친분이 있는 관계라면 결혼식 참석여부가 고민이다. 꼭 가야 하나? 아니면 축의금만 보낼까? 여러 변수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가 생긴다.


입사 동기, 같은 팀 직원, 친한 선후배의 경우는 무조건 참석한다. 이 정도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청첩장을 만들기도 전에 결혼소식을 알려준다.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라면 꼭 시간을 비워둔다. 황금 같은 휴일에 직접 찾아온 하객은 잊지 못할 감사함으로 남을 것이다.


반면 공적인 관계에 더 가까운 사람도 있다. 이때는 먼저 날짜를 확인하고 다른 일정이 없는지 살펴본다. 선약이 있다면 과감히 참석은 포기. 별다른 스케줄이 없다면? 장소를 확인한다. 너무 멀리 떨어진 지역이라면 역시나 포기. 축의금만 보낸다. 직장인에게 주말은 황금 같은 시간이다. 양해를 구하고 불참의사를 밝히거나 조용히 축의금만 부탁하자. 혹시 식장이 근처라면? 그때는 직접 축하하는 것도 괜찮다.



축의금은 얼마가 적당할까

축하금액 또한 큰 고민거리다. 예전에는 5만 원이면 무난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결혼식장의 식대가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인기 있는 웨딩홀은 기본 식사비가 인당 5만 원이 넘고, 10만 원 가까이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그럼 직접 참석할 때에는 최소 10만 원을 해야 한다는 소리다. 호텔 결혼식은 어떻냐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보통 경조사비는 10 단위로 올라간다. 만약 10만 원은 적고, 20만 원은 많은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15만 원을 낼 수는 없다. 그럴 땐 10만 원을 내고 작은 선물을 한다. 혹은 조금 무리해서 20만 원을 낸다. 그런데 10만 원을 주기에도 애매한 사이가 있다. 앞서 말한 얕은 친분의 공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때는 5만 원만 축의 한다. 따로 참석은 하지 않는다.


축의금도 낼까 말까 할 때가 있다. 경험에 의하면 그때는 내는 게 속 편하다. 사적인 친분은 없지만 업무적으로 연락을 자주 했던 사이라면 챙기는 게 좋다. 나중에 일로 만날 때마다 '아 낼걸 그랬나'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낫다.

 



장례식, 어디까지 챙겨야 하나

결혼식과 다르게 장례식은 종류가 다양하다. 조부상, 조모상, 외조부상, 외조모상, 부친상, 모친상, 장인상, 장모상 등등. 가족 관계에 따라 여러 애사가 발생한다. 당연히 발생 빈도도 높다. 다 챙기려고 하다간 내 통장이 거덜 날지도 모른다.


언젠가 회사 경조사 게시판에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옆 팀 후배의 이름이었다.

OOO직원 백부상 알림

백부상? 생전 처음 듣는 단어였다. 백부상은 큰아버지의 장례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나름 친했던 후배였지만,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아버지까지 챙기는 건 과한 거 아닌가… 어디까지 챙겨야 하는 거지?

 

그때 이후로 장례식에도 기준을 정했다. 친한 사이면 (외)조부모상까지, 약간의 친분만 있는 사이면 부모상까지 챙긴다. 장인, 장모상은 제외하기로 했다(대개 기혼자 분들은 부모상과 비슷하게 여긴다). 그 외는 모두 마음의 애도만 한다.



장례식장은 꼭 가야 하나

결혼식과 장례식의 차이점이 하나 더 있다. 결혼식은 예정된 날짜에 진행되지만, 장례식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3일의 여유를 주지만, 마지막 발인일에는 조문을 하지 않는다. 그럼 이틀이 남는 셈이다. 낮에 다른 일정이 있다면 밤늦게 찾아가도 된다. 장례식은 새벽 늦게까지 조문객들을 받아준다. 여행이나 휴가 중이라면 어쩔 수 없다. 부고는 갑작스럽게 전해지니 말이다.


장례식은 고인이 살았던 지역 혹은 근방의 도시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식장 위치가 굉장히 다양하다. 회사가 서울이라고, 동료가 수도권에 거주한다고 해서 장례식도 주변에서 치러질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국팔도로 갈 각오를 해야 한다.



직계가족의 상은 많이 멀어도 웬만하면 참석한다. 축하는 멀리서 보내도 괜찮지만, 위로는 직접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퇴근하고 지방까지 다녀오기에 시간이 빠듯하다면 휴가를 사용하는 것도 괜찮다. 같은 회사 직원의 상이므로 대부분은 팀원들이 이해해 준다.


그 외의 부고는 가까우면 참석하지만, 멀면 부의만 한다. 모든 애사에 직접 찾아가면 좋겠지만. 오고 가는 시간이나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가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부의금은 얼마가 적당할까

나는 애사의 종류에 따라 부의금의 액수를 달리 정했다.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외)조부모상은 5만 원, 부모상은 10만 원을 낸다. 결혼식과 달리, 참석여부과 관계없이 부의금의 액수는 동일하게 설정했다.



얼굴과 이름을 알고 몇 마디 나눠본 게 전부인 사이라도 부모상은 챙기려 하는 편이다. 자녀상은 아직 접한 적이 없지만, 앞으로도 전해 들을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 따로 기준을 정하지 않았다. 본인상은 지금까지 딱 한 번 가봤다. 유일하게 생각지도 못한 장례식이었다. 이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하길 바란다. 나는 생전에 감사했던 만큼 애도를 표했다.




기준을 정한다는 것. 어찌 보면 계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따지지 않으려고 잣대를 세운 것이다. 경사는 축하하는 마음이, 애사는 위로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 본질을 뒤로하고 이것저것 고민하는 것이 싫었을 뿐이다. 진심보다 고민이 깊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실적으로 모든 경조사를 챙기기엔 돈과 시간이 부족하다.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면 된다. 진정 챙기고 싶은 사람, 챙기고 싶은 경조사만 신경 써도 괜찮다. 오고 가는 정이 아닌, 어차피 나중에 돌려받을 거라는 ‘기브 앤 테이크’의 사고방식을 가진 게 더 계산적인 것 아닐까.



#이건 TIP인가 TMI인가

돌잔치는 가족끼리 보내는 추세다.
그래서 가족 같은 사이가 아니면 가지 않는다.


* 사진출처 : 디지털타임즈 뉴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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