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세상을 구한다
나와 세상을 치유할, 사소하지만 위대한 120분간의 경험
부족한 애정을 갈망하던 어린 시절부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열등감의 대상이었던 청소년기, 사회적으로는 성인이지만 여전히 모든 게 서툴고 낯설었던 스무 살의 무수한 첫 경험들.
마음 둘 곳 없던 내게, 한 번도 위로받지 못한 그 감정들을 치유해주는 건 언제나 '영화'였다. 스크린 속 배우의 눈에서 나의 어린 시절과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를 발견했고, 영화적 체험을 통해 그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영화는 내게 그저 단순한 오락 거리가 아니었다. 인생의 멘토이자 가장 좋은 친구, 정신과 전문의, 영혼의 수프이자 따뜻한 위로의 말이었다.
메모장에 이리저리 휘갈겨 놓은 문장들을 모아 하나의 무언가를 만들어보기로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 난 소재도 당연히 '영화'였다.
<영화가 세상을 구한다>는 제목이 거창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실제로 나는 내가 영화적 체험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고 느낀다. 삶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니 세상이 바뀌었고 인생의 어두운 그림자가 아닌 눈부신 햇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좋은 영화나 책은 내가 그것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날 먼저 찾아온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좋은 책이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처럼 좋은 영화는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 보인다. 한쪽 방향으로만 흐르는 일방적인 이야기가 아닌, 작품과 나의 대화로 발전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계시처럼 적재적소에 내 고민에 대한 답을 말해준다.
영화는 당신이 갖고 있는지도 몰랐던 고민들, 무의식 곳곳에 뭉뚱그려져 있던 생각을 끄집어내 매우 구체적이고 전지적인 시점에서 보여준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듯이 제삼자의 관점에서 보면 심각했던 상황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본 관점이 당사자의 것보다 정확할 때가 많다. 자신의 상황을 제삼자의 시각에서 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영화는 그것을 가능케 한다.
때론 영화를 통해 단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지구 반대편 낯선 이의 인생 속에서 그를 위로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의 손을 꼭 잡고 따스한 말을 건넬 순 없어도, 단지 한 번쯤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위대한 체험이 된다.
나는 영화가 주는 이런 사소하지만 위대한 간접 체험이 세상을 구하는 씨앗이 될 거라 굳게 믿는다.
<영화가 세상을 구한다>는 영화와 함께해온 내면의 성장을 기록한 지극히 개인적인 평문이다. 누군가는 글을 보며 정말 우리가 같은 영화를 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아리송할 수도 있다. 전문 지식은 평론가의 수준을 따라갈 수 없기에 감독의 의도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기술로 만들어졌는지, 영화적 디테일이 어떤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를 사랑하고 감응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영화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데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날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 영화들, 그에게서 받은 것들을 공유하고자 했다.
한 번도 그렇게 누군가를 바라본 적 없을, 애정과 열정이 넘쳐흐르는 눈으로 본 수많은 영화들. 그중에서도 리스트에 올려두고 상황에 따라 평생 몇 번이고 다시 꺼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영화 마흔두 편을 골라 소개하려 한다. 그 영화들이 어떻게 내 자존감을 높였는지,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덧붙여서.
이 영화들이 나를 치유했듯 당신의 감정과 이 세상을 치유해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