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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의 지혜 Feb 14. 2024

정영수 <우리들>

  하지만 희망이란 때때로 멀쩡하던 사람까지 절망에 빠뜨리곤 하지 않나? 아니, 오로지 희망만이 인간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 - 237p


  연인과 헤어진 후 상하이로 훌쩍 떠났다가 하던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나에게 그들은 원고를 부탁하러 찾아왔다.

  자신들의 연예 이야기로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오래전 출판사에서 편집 일을 했었던 나는 그들의 원고를 읽고 고쳐 나갔다. 처음엔 이런 연예 얘기가 가당키나 할지 의문을 품었지만 그들을 만날수록 가까워졌다.

  네 번째 원고를 받은 날 나는 그들이 불륜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충격은 받았지만 원고의 내용에 대해 반응하지 않았고,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그럴 때 있잖아. 한창 물놀이에 빠져 있다가 뒤를 돌아보았는데 해안이 까마득히 멀어 보일 때.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 257p


  결국 그들은 원고를 채 끝내기도 전에 헤어졌다. 죄책감이었는지 무엇 때문이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여자는 남편에게 모두 말해 버렸다.

  그 후 우리 모두의 관계도 끝났다. 남자는 나를 만나면 그녀가 생각 나 견딜 수 없을 거라면서 나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글을 계속 쓰라고 말은 했지만 쓰지 않을 거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 쓰기 시작한 것은 나였고, 헤어진 내 연인에 대해 쓰기 시작한 것도 나였다. 하지만 도무지 완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글이 다시 쓰기 과정만 거칠 뿐 완성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은 있지만 나에겐 많은 도움이 다.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 - 264p


  감정이란 어떤 것일까? 특히 사랑이란 감정은 그만큼 설레고 벅차오르고 모든 것을 감수할 정도의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듯싶다.

  하지만 이 모든 감정들이 온전히 영원하지는 못한다. 색이 바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얼룩이 남기도 한다.

  어떤 모습의 결과로 오게 될지 아무도 장담은 못하지만 그 감정은 오로지 글을 쓰는 것처럼 고독하고 지웠다 썼다를 반복해야 하는 끝없는 글쓰기 작업과도 같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결혼한 사람으로서 그 둘의 불륜 관계가 정리가 돼서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하였다.


  

*정영수

1983년생. 2014년 [창비신인소설상]에 단편소설 <레바논의 밤> 당선.

소설 <애호가들>, 2018년 [젊은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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