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단편들이다. 아이와 한바탕 하고 나서 혼자 씩씩 거리다 아이 방에 꽂혀 있던 책을 무심히 꺼내 읽었다. 워낙 유명한 데다가 어릴 적 TV 만화로도 많이 보았다. 다시 보니 새롭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어느 가난한 구두수선공이 교회 담벼락에 헐벗은 남자를 도와주게 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후에 그 남자는 천사였고 하나님의 벌을 받아 잠시 땅에 내려왔다 나중에 큰 깨달음을 얻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이야기이다.
"나는 이와 같은 일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을 생각하고 걱정한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의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도 제화공이 주인공이다. 톨스토이는 아마도 구두수선공을 좋아했었나 보다. 이 주인공은 원래도 성실했고 구두도 성심성의껏 잘 수선을 해 평판도 좋았다. 어쩌다 성경책을 읽게 되었고, 성경책에 푹 빠져 일이 끝나고 난 후 저녁에는 늘 성경책을 읽었다. 어느 날 누가복음 6장을 읽다 7장까지 읽게 되었다. 그러다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된다. 다음날이 되어 창밖을 보라는 꿈속 내용이 계속 떠올라 일하는 중간중간 창밖을 보다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도와준다. 이것으로 이분도 역시 큰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는 세 자매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세 자매는 각각 결혼을 하였다. 언니가 시골 동생 집에 놀러 갔다 서로 자기 사는 곳이 제일이라며 자랑하다 동생의 남편이 땅만 있으면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다고 말하게 되고, 그것을 악마가 모조리 듣게 된다. 악마는 그런 동생의 남편을 골탕 먹이고 동생의 남편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다. 결국 땅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 죽게 된다.
다음으로 '바보 이반'이다. 워낙 유명한 이야기이다. 아주 부자 농부에게 세 아들이 있었다. 그중 셋째 아들이 바보 이반이다. 첫째, 둘째 아들들은 돈이 떨어지거나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바보 이반에게 와서 도움을 청했고, 이반은 모두 흔쾌히 도와주었다. 도깨비들은 그런 이반을 못마땅하게 여겨 바보 이반을 골탕 먹이려 갖은 애를 쓰지만 모두 실패하고 만다. 보다 못한 두목 도깨비가 직접 나서 이반을 괴롭히지만 애초에 욕심이 없었던 이반을 이길 수 없었고, 결국 형들과 함께 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또 어떤 사람이라도 찾아와서 '우리들을 좀 돌봐 주십시오.' 하면, '그렇게 하세요. 여기는 무엇이든 많이 있으니 까요.' 하고 받아들인답니다.
나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필요한 만큼 쓰고 욕심부리지 않는다면 가능해 질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예멜리얀과 북'이다. 뭔가 판타지 같은 이야기이다. 너무 가난해 결혼을 못 한 예멜리얀에게 한 아가씨가 결혼을 하자고 해 결혼을 하게 된다. 미모가 남달랐던 부인은 임금님 눈에 들게 된다. 임금님은 부인을 뺏으려 예멜리얀에게 갖은 고초를 겪게 하지만 부인의 기지로 그때마다 모두 해결한다. 그 후 두 사람은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이 중에서 난 두 번째 이야기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이야기가 제일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는 순간순간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애쓰고 만족을 못 하는 삶을 살고, 세상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하루하루를 보낼 때 나는 과연 악마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곰곰이 되새겨 보았다. 멈추지 못해 사달이 나는 경우가 과반사이다. 욕심을 버리게 된다면 가장 중요한 마음의 평안을 누리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더라도 이미 물질의 쾌락에 젖어 있어 마음의 평안 따윈 벗어던져 버리고 욕망을 따르게 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하지만 그 어딘가 그 마음의 중간 어디쯤 잘 가늠하여 욕망도 가지고 마음의 평안도 가지게 되면 좋겠다. 이것 봐 이것 봐 난 아직 멀었다. 이렇게 가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걸 잘 알면서도 아직 다 갖길 원한다. 저울은 더 무거운 한쪽으로 기울어야 하고 그것이 마음의 평안이기를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