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소년 코난 vs. 명탐정 코난
요즘엔 미래소년보다 명탐정
우리 세대에게 '코난'을 얘기했을 때는 거의 먼저 <미래소년 코난>을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요즘에야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코난'은 세대차이를 느끼게 해 준 한 단어였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영어단어가 그대로 쓰이는 바람에 만화영화라는 말도 거의 쓰이지 않아서 여기에서도 세대차이가 난다고 해야 할까.
어린 시절, 심심하면 따라 불렀고 응원가로도 많이 쓰였었던 <미래소년 코난>의 주제가를, 처음 시작만 나와도 바로 자연스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 또한 우리 세대이다. 동요도 많이 불렀지만 만화 주제가는 늘 새롭고 신나서 따라 부르는 것이 당연했다.
푸른 바다 저 멀리 새 희망이 넘실거린다
하늘 높이 하늘 높이 뭉게 꿈이 피어난다
여기 다시 태어난 지구가 눈을 뜬다
새벽을 연다
헤엄쳐라 거친 파도 헤치고
달려라 땅을 힘껏 박차고
아름다운 대지는 우리의 고향
달려라 코난 미래소년 코난 우리들의 코난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이 단독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연출하게 된 이 작품은, 1978년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에 방영되었다. 원작은 미국 작가 알렉산더 힐 케이의 <The Incredible Tide(1970)>라고 한다. 이 책은 <네가 세계의 마지막 소년이라면>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80년대이면 아직 우리 세대도 어린 시절이니 그 내용은 완벽하게 기억해 내지는 못한다. 발가락 힘으로 매달려 있던 코난, 코난만큼의 능력자이자 위로 묶은 머리와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포비, 당시 가장 청순하고 예뻤던, 신비한 초능력을 지닌 소녀 라나. 가끔씩 TV채널을 돌리다 보면 이 오래된 애니메이션이 방영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현재의 <미래소년 코난>을 보는 것은 아니다. 내 기억 속의 <미래소년 코난>은 인터넷으로 검색되는 이미지로 남아있을 뿐, 다시 보기를 할 정도로 애틋한 애니메이션은 아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너무나 어두웠다. 물론 애니메이션으로 아름답게 그려졌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결국 종말에서 시작된 것이고, 양분된 세상이니까. 그 당시 TV에서 방영되었던 대부분의 일본 공상과학 만화영화들은 그 내용이 어둡고 쓸쓸했다. 마츠모토 레이지[松本零士]의 걸작 <은하철도 999>, <하록 선장>, <천년 여왕> 같은 것들이 그랬다. <미래소년 코난>의 경우는 공상과학 만화영화는 아니지만 지구의 종말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이며 환경적 주제, 독재에 대한 저항 등이 포함된 이야기이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에 맞게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조정이 되기는 했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은 몇 번을 보아야 그 의미가 조금씩 읽히는 것 같다. 그러나 <미래소년 코난>은 그저 내 기억 속의 만화영화로 남겨두고 싶을 뿐,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 <은하철도 999>도.
요즘 세대들에게 '코난'은 단연코 <명탐정 코난>이 아닐까(그러나 이제는 이 애니메이션도 세대 차이의 척도가 되어 있지 않을까). 검은 조직에 의해 특별한 약을 강제로 먹게 되고 그리하여 어린아이로 변한 쿠도 신이치가 에도가와 코난(일본 추리소설가 에도가와 란포의 이름과, 영국 추리작가이자 셜록 홈스를 탄생시킨 아서 코난 도일의 이름을 합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쿠도 신이치의 한국 이름이 남도일인 것이다)으로 살아가면서 추리 능력을 발휘하는 이야기. 내가 이 애니메이션을 보게 된 것은 '코난'으로 나타난 세대 차이 탓이다. 그 세대 차이는 극복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이야기가 되려면 명탐정인 코난과 그 주변의 인물들에 대해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명탐정 코난>은 일본 애니메이션답게 시즌을 거듭하고 극장판까지 존재하는데 작품이 생각보다 재미있다. 추리의 경과는 거의 비슷하고 결국 쿠도 신이치의 신들린 추리력이 문제를 해결하는 단순한 구도이지만, <미래소년 코난>의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의 이야기에 비해-물론 쿠도 신이치가 검은 조직의 신약 아포톡신 4869를 먹고 아이가 된다는 것은 지극히 비현실적이긴 하지만-현실 세계에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이야기에 빠져들기가 쉽다. 물론 둘 다 각기 다른 면에서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의 향수만을 불러일으키는, 초능력에 가까운 괴력을 지닌 '미래소년 코난'보다는 개연성 있는 허구 속 소위 '뇌섹남'에 가까운 '명탐정 코난'에 좀 더 이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