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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낮은 속삭임 Sep 21. 2024

그때의 추석 성묘

마지막은 언제나 소분

그때의 추석엔 언제나 큰집에 갔다. 여자 형제가 많았던 우리 집에서는 부모님과 남동생, 그리고 아직은 어렸던 내가 큰집에 갔었다. 큰집엔 사촌 오빠들이 많았다. 그래서 추석 성묘 때는 큰어머니를 비롯한 집안 여인들이 준비한 제사음식을 짊어지고 큰아버지를 비롯한 친척 어른들, 사촌 오빠들은 물론 육촌 오빠들까지 집안 남자들은 큰집 부근의 선산에 있는 묘를 찾아가 차례를 지냈다. 아직 어렸기에 나는 여자였지만 차례 지내는 산소에 따라다녔다. 친척 어른들과 사촌오빠들을 따라 그날은 거의 하루종일 산을 헤매고 다녔다. 혼자였으면 절대 찾아가지 못할 그 산길, 그 여러 비슷비슷한 산소들 중에서 우리 조상님들 산소를 찾아내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때 나는 어렸고 특히 여자였기에 명확하게 그 순서는 알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알지 못한다. 요즘에 나온 성묘 순서에 따르면 가까운 촌수부터 성묘를 하는 것이 예의라고 하는데, 이것은 한집 제사일 때 그런 것인 듯하다. 그때 내 기억으로는, 육촌형제들까지 성묘를 함께 다녔기 때문에 어느 묘소를 제일 먼저 가는지는 각 집안 어른들이 예법에 따라 정하셨지 않을까 싶다. 큰길 건너편의 산에 난 작은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다 보면 볕이 따뜻하게 들고 풍경이 탁 트이는 곳에 산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산소 부근에는 늘 소나무가 있었다. 물론 우리나라 산에 소나무가 많기도 하지만, 아주 오래전에 민속학을 전공했던 선배의 말이 기억났다. 진한 시대 장례 풍습에는 매장 후에 묘지목으로 소나무를 심었다고. 그래서 경상도 지역 산소 주변의 산에는 소나무가 가득하다고.  지역의 산소 모양은 그냥 동그란 것이 아니라 산 쪽에서 약간 짧은 터널처럼 나와 동그랗게 마무리가 된 무덤이었다. 그 앞의 공간은 평평하게 정리되어 제사를 지낼 수 있게 자리 잡혀 있었다. 비탈진 산 자락의 양지바른 곳에 있었던 조상님들의 산소를 찾아 차례를 지내는 추석은, 그날 하루 온종일 가을 산행을 떠나는 것과 같았다. 어른들과 오빠들을 따라다니다 보면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에서 차례가 끝났다(이것을 보면 성묘는 가까운 순서가 맞나 보다. 종갓집을 제외하고는 우리 큰아버지께서 항렬 상 가장 어른이셨고, 우리 조부모님 산소의 성묘가 마지막이었으니까). 할머니 산소의 터가 넓었기에 그곳에서는 차례 음식이 소분되었다. 소분하는 산소는 큰집이 있는 동네에서 멀지 않아서 큰집에 계셨던 어머니와 숙모들도 올라오셔서 소분을 받아가셨다. 다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으니 차례 음식은 며칠 먹을 반찬이 되었고 고기와 생선이 공평하게 나눠지는 것이라 머릿수가 많으면 당연히 음식이 많이 돌아가는 것이었던 탓이리라. 어린 시절이라 나는 몰랐지만 그 차례 음식이 공짜로 제공되는 것은 아니었다. 차례와 제사 준비를 위해 아버지는 매번 일정한 돈을 큰집에 드렸다. 내가 어느 정도 컸을 땐가 아버지께서 차례음식을 보며 혼잣말처럼 하셨던 말이 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 제사 준비에 등골이 휜다'는 그런 말씀이셨던 것 같다. 식솔들 많은 가난한 살림에도, 당신의 형님이 모시는 제사와 차례를 당신께서는 직접 돕지 못하니 돈으로 도우셨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돈이 만만찮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셨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산소에 다니는 차례에 더 이상 가지 않은 것은 아마 열 살이 넘어서면서였을 것이다. 산소에 따라다니기에는 너무 커버린 탓이기도 하고, 함께 산소를 다닐 친척 여자애없었으며-동갑내기 육촌이 있었지만 그녀는 나와 달리 소분 때만 산에 올라왔다-어린아이도 아닌 여자애가 산소를 함께 따라다니는 것은, 그 시절 어르신들은 탐탁지 않게 생각하신 것도 있다.  

지금은 도저히 찾아갈 수 없는 그 산소들은 이제 내겐 의미가 없다. 게다가 과거 조상님들의 산소가 있던 곳은 커다란 새 도로가 생기면서 산소를 이장했다고 한다. 그리고 2년 전 우리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그리고 지난해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큰집 장손인 큰오빠가 제사를 자신이 다 가지고 가니 더 이상은 제사나 차례에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제 더 이상은 산을 다니는 성묘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며, 추모공원에 모셔진 우리 아버지만 모시면 된다는 것. 망자의 멈춘 시간이 산 자의 흐르는 시간 앞에 잊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그 옛날의 추석 차례 성묘를 볼 수 없다는 것, 우리 세대가 지나면 성묘의 끝을 알리는 차례음식 소분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나 책에서 볼 수 있는 풍습으로만 남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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