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읽었던, 만화 잡지의 단편 만화 하나가 생각난다. 아마도 '정의의 여신'에 대한 만화였던 것 같다. 만화 속의 '정의의 여신'이라 불린 소녀는 눈을 가린 채 천칭과 검을 가지고 세상 일을 공정하게 판단하였다. 그녀의 공정성은 모두의 칭송을 받았고 그녀는 존경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여전히 공정하게 판단을 했지만, 그것은 너무나 가혹했다. 아마도 '정상참작'이 되어야 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장발장 같은 도둑질이었거나, 폭행범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살인이었거나. 그리하여 여신이라 불린 소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배척당했고, 그녀의 가혹한 처사에 사람들은 하나둘씩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자신의 판단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가혹한 판단에 반대한 사람들의 성화에 결국 마을에서 쫓겨날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한 소녀를 보호했던 마을의 원로 중 하나가, 그녀가 눈가리개를 벗고 세상을 보면 더 공정히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제안을 한다. 이에 동의한 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눈가리개를 벗게 되는데, 그 이후 벌어진 일은 모든 이에게 충격이었다. 물론 만화적 상상이기는 했지만. 그녀는 애초부터 눈이 없었다...! 누가 그녀에게 타인에 대해 판결을 내릴 권한을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의 가련한 모습에 사람들은 그녀를 애처롭게 여기고 그녀에게 주었던 무거운 판결의 권한을 내리게 한 뒤 마을에서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내용이라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갑자기 '정의의 여신'을 소환한 것은, 너무나 어이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발생하는 현실 탓이기도 하다. 사실, 정의의 여신 디케의 눈은 가려져 있고 천칭과 정의의 검을 양손에 들고 판단한다. 디케의 눈을 가린 이유는 공정성을 위해서이다. 보게 되면 치우칠 수 있는 감정적 판단을 막기 위해서 눈가리개를 쓰고 있는 것. 그러나 서양의 디케와는 달리 우리나라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은 눈가리개 없이, 그리고 눈을 뜨고 있다(물론 서양에서도 눈가리개를 풀고 눈을 뜬 디케의 조각상을 쓰는 곳도 있다고 한다). 매정하고 무감각한 디케의 판단에 대해, 인정을 생각하고 자애로운 판단을 내리라는 것인가.그 의도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눈을 뜬 정의의 여신이 내리는 판단이, 어느 순간부터 사자성어처럼 쓰이는 '내로남불'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여 씁쓸하다.
정의의 여신 디케, 혹은 유스티치아(좌)/우리나라 대법원 정의의 여신(우)[이미지 출처: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