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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기대에 찬 준비과정, 상상 속에서 그곳으로 떠나는 첫 번째 여행"

by 낮은 속삭임

올해 초, 시칠리아에 다녀오면서부터 그리스에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 대(大) 그리스)'의 일부였던 시칠리아의 유적들과 분위기는, 원래부터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과 기대감을 더욱 부추겼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했던 그리스-로마 신화를 그대로 담고 있는 나라이자 서양 문명의 원류라 불리는 그리스. 역사 유물들이 그렇게나 많이 유출되거나 도난당했어도, 자국의 문화재만으로 박물관을 충분히 채우고도 남는 그리스에 대한 궁금증은 결국 항공권을 구매하게 만들었다. 코로나 19 이후 엄청나게 오른 항공권 가격이었지만, 인터넷 검색을 지속적으로 하고 몇 날 며칠 찾고 고민하여 적절한 가격의 항공권을 찾았다. 아부다비 경유 에티하드 항공편을 삼성카드 결제로 할인받아 여름 성수기 항공권 치고는 괜찮은 가격에 구매했다. 아마도 출발 서너 달 전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항공권을 구매하고 나서는 숙소 알아보기에 나섰다. 조금 이른 감도 있었지만, 그리스는 유럽인들의 여름 휴양지로도 유명해서 여름 숙박비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편이다. 유럽 여행 카페와 블로거들의 글을 참고하여 숙소를 하나하나씩 예약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주로 부킹닷컴을 사용하는 편이다. 다른 앱에 비해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후기나 평점이 믿을 만하여 주로 이것을 사용한다. 자주 사용하는 편이라 무료 업그레이드나 요금 할인이 적용되기도 한다. 이는 아마 다른 앱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유 여행자들 중에는 첫 숙소만 정해놓고 그다음부터는 현지에서 예약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그게 더 적절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면에서 소심한 편이고 일정이 세워지면 그에 맞춰 이동하는 편이라, 크게 일정이 나오면 숙소를 바로 예약하는 쪽에 속한다. 그리고 여름의 지중해, 그리고 인기 관광지의 경우에는 숙박비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일정에 따라 숙소를 예약하는데, 일부는 선결제이고 일부는 숙소에서 결제하는 것으로 선택했다. 가격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부담을 안고 싶지는 않으니, 가장 저렴한 환불 불가 상품은 제외했다. 선결제의 경우 예약 즉시 결제하면 조금 더 저렴한 면은 있지만, 무료 취소 기간까지 숙소를 계속 검색할 수도 있어서 지정일 결제로 선택하여 숙소를 예약했다.


숙소를 결정하고 나면 현지에서의 교통편에 대한 고민이 이어진다. 사실 동유럽이나 서유럽의 경우 각종 패스나 기차, 버스 편이 잘 연결되어 있어서 그리 고민하지 않았다. 물론 연착이나 파업, 자연재해 등으로 교통편 운행이 중지되는 경우가 있지만, 그래도 다니기에는 그리 불편하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그리스는 조금 다르다. 내륙의 기차 편이 그리 좋지는 않은 편이며 버스로 다닌다 하더라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가, 섬이 많기 때문에 자유여행이 조금 불편한 곳이다. 그래서 아테네에서 테살로니키, 테살로니키에서 한냐 구간은 비행기로 이동하기로 했다. 테살로니키-한냐 구간은 직항의 경우 새벽 비행기나 한밤중 비행기라서, 아테네 경유 편으로 구입했다. 그러고 나서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크레타에서의 교통편이었다. 지중해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며,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인 이곳은, 시칠리아와 마찬가지로 본토보다 교통편이 좋지 못하다. 제주도보다 5배 정도 큰 이 섬을 대중교통으로 다닐 것인지, 아니면 처음으로 해외에서 렌터카로 이동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차를 빌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제일 먼저 한 것은 국제운전면허증 발급이다. 그리스는 우리나라 영문면허증으로 운전이 가능한 곳이라고 되어 있기는 했으나, 혹시 어떨지 몰라서 경찰서 민원실에 직접 가서 당일 발급받았다. 그러고도 며칠을 고민하여, 결국 크레타 한냐에서 이라클리온까지는 차를 빌렸다. 구글 평점이 괜찮은 렌터카 회사에서 제공하는 내용을 꼼꼼히 읽어보고 결정했으며, 동일 차종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차는 기아 피칸토-뉴모닝-로 예약 완료. 그리고 이라클리온에서 산토리니로 가는 페리, 미코노스에서 아테네로 들어오는 페리는 성수기라 어떨지 몰라 미리 예약한 이후, 탑승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나머지 구간도 일정에 맞춰 예약했다.


항공권에서부터 숙소, 중요 현지교통에 대한 예약이 끝나고 나니 어느덧 여행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주까지는 여행 몸살(a.k.a 귀차니즘)이 일더니, 이제는 조금씩 설레기 시작한다. <서울리뷰오브북스(2021)>의 김영민 편집위원이 책 읽기를 여행에 비유했다고 한다. 그가 책 읽기로 비유한 여행을, 나는 지금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기대에 찬 준비과정, 상상 속에서 그곳으로 떠나는 첫 번째 여행, 몸을 움직여 그곳으로 떠나는, 힘들고 고된 두 번째 여행, 그리고 물리적 여행에서 돌아와 자신의 기억을 여행하는 세 번째 여행"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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