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룡도(雲龍圖, 16세기 경)-석경
조선 전기 화가로 알려진 화가 석경(石敬)의 <운룡도(雲龍圖, 16세기 경)>. 넘실대는 파도 위 구름 가득한 검은 하늘 속에 나타난 용은 머리를 드러내고 있다. 용의 표정은 인간의 표정과 그리 다르지 않으나 조금 익살스럽다. 이 그림에 대해 찾아보니 어떤 기사에서는 이무기에서 용으로 승천하는데 힘쓰느라 기진맥진한 모습이 아닐까 하는 내용도 있었다. 보는 느낌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가 드디어 용이 되었다!'는 만족감이 용의 미소에 서려있는 듯하고 그래서 그 미소는 원하는 것을 가진 어린아이의 표정처럼 천진하게 느껴진다. 그 익살스러운 표정과 달리,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있지만 날카로운 발톱으로 움켜쥔 여의주는 용의 당당함을 표현해 주는 듯하다. 12 간지 중 유일하게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동물인 용은 동양에서는 상서로운 존재이며 제왕을 의미한다. 그래서 임금의 얼굴을 용안, 그 자리를 용상, 그 옷을 용포라 불렀다. 서양에서는 절대악으로 꼭 퇴치해야 할 존재인 용과는 그 모양 자체가 다르면서 고귀하고 우아한 느낌을 주는 동양의 용.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용 그림 중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알려진 이 그림 속의 용은, 우리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용을 그대로 묘사한 것 같다. 옛사람이나 현대의 우리나 똑같이 생각하는 용의 모습을.
조선 초, 중기의 화원으로 알려진 석경(石敬)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생몰연도 미상인 그가 안견의 제자였다고 하는 것은 구한말 독립운동가이자 서예가, 예술평론가인 위창(葦滄) 오세창 선생의 저서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에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석경에 대한 언급은 <명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그의 이름은 석경(石璟)으로 표현되어 있다. 실록에 기록된 그가 이 작품을 그린 석경(石敬)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안견의 제자, 혹은 그 영향을 받은 화가들을 폭넓게 언급한 윤두서의 <기졸(記拙)>에 석경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하며, 전해지는 작품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그를 안견의 영향을 받은 화가 중 하나로 추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경은 인물, 묵죽(墨竹) , 운룡(雲龍)을 잘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서화첩은 정묘호란 중 소실되었기에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계산청월(溪山晴月)>과 이 작품, 그리고 그가 그렸다고 추정되는 채색화 <마고채지(麻姑採芝)> 밖에 없다고 한다.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전해지는 작품도 거의 없기에 오히려 신비로운 화가 석경. 어쩌면 그림 속 용의 표정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보는 그의 표정이 아닐까.
*이 작품은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