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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등대 Jun 08. 2023

숨 참고 우울 다이브

유서 제3쪽

언젠가 ‘청동 조각상’이라는 제목의, 시가 되고 싶었으나 그 내용이 너무 조잡하여 차마 시라고 부를 수 없게 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다. 대충 내 방은 깊은 해저고 그래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일, 눈 한 번 깜빡이는 일이 굼떠진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점점 몸이 굳어지다가 결국 나는 하나의 차가운 청동 조각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2년 전에 썼던 이 짧은 글을 다시 읽는데 민망한 수준의 글이라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그래도 딱 하나 긍정적인 면은 있었다. 최대한 솔직하게 썼다는 점. 내 몸의 경험을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고 썼다는 점.


우울은 몸으로 온다. 정신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다. 분노가 오면 심장이 뛰고 얼굴이 달아오르듯이, 슬픔이 오면 눈에 액체가 한가득 차오르듯이, 우울이 올 때도 몸에 변화가 생긴다. 나 같은 경우는 먼저 추위를 느낀다. 찬 바람을 맞은 것처럼 몸이 오소소 떨려서 몸을 옹송그려야 한다. 그리고 곧 몸이 굼떠진다. 아주 작은 움직임도 힘겨워진다. 곧이어 숨 쉬는 일도 힘겨워진다.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가 밭은 숨을 내뱉고 다시 숨을 참는 일을 반복한다. 말하자면 물속으로 깊이깊이 다이빙한 것 같은 감각이다. 숨 참고, 우울 다이브. 몸은 무겁고 물은 차가우며 나는 이 경험이 지긋지긋하도록 익숙하다.


우울에 다이빙해 온 시간들을 반추해 보면 그 시간들을 ‘작은 역사’라고 이름 붙여도 될 정도의 양은 된다. 어느 정도 즐거워하며 우울에 다이빙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좀 뒤틀리고 어둑어둑한 것에 대한 취향이 생긴 것이 그때쯤 아닌가 싶다. 그 어린 마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메리 올리버의 글에서 그 이유를 어렴풋 찾았다. “젊었을 때 나는 슬픔에 매료되었다. 슬픔이 흥미로워 보였다.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 줄 에너지 같았다.”(『긴 호흡』) 어리석었다. 그렇게 흥미를 가지고 다가가지 않았어도 이후에 알아서 가까워질 사이였는데. 또한 메리 올리버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늙지는 않았다고 해도 이제 나이가 든 나는 슬픔이 싫다. 나는 슬픔이 자체의 에너지가 없이 내 에너지를 은밀히 사용한다는 걸 안다.”


여전히 슬픔과 우울은 자주 내 에너지를 들고 가버린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나의 ‘청동 조각상’이 되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이 나를 그토록 우울하게 만드는 것인가. 선생님이 매번 묻는 질문이다. 우울할 때 주로 어떤 생각들이 영향을 미치던가요. 나는 매번 어버버 댄다. 특정한 생각이 나를 우울로 이끌 때도 있지만 별 이유가 없을 때도 많기 때문이다. 그냥 갑자기 불안하고 갑자기 답답할 뿐일 때 말이다. 그리고 이럴 때마다 의심이 든다. 내가 너무 별 거 아닌 걸로 유난을 떠는 건 아닌가. 사람이 가끔 이유 없이 우울할 때도 있는 거고 누구나 저마다의 우울을 어느 정도 안고 사는 건데, 그걸 가지고 이렇게 병원까지 다닐 일인가. 생각해 보면 나는 원체 엄살이 심한 사람이 아니던가. 이것도 다 엄살 아닐까. 머리에 달고 사는 힘들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그저 하나의 습관이 아닐까.


그러나 습관은 어떤 반복적 행위가 굳어진 결과물이다. 반복되는 상처 위에 생긴 굳은살처럼. 굳은살은 덤덤함의 상징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되어 온 상처의 증거다. 그러므로 굳은살 박인 덤덤한 마음을 보고 이제 괜찮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는 굳은살이 박이기까지 존재했던 수많은 아픔들을 떠올려야 한다, 고 쓰지만 나는 이론적인 인간에 불과하여, 혹은 나 자신에게만 유독 가혹한 면이 있어 이 문장들을 나에게 적용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유서를 쓰는 이 순간, 시간이 역류하여 온몸이 나의 시간과 존재로만 가득 차는 이 순간만큼은 적용해보려고 한다. ‘청동 조각상’처럼 단단히 굳어버리는 몸에 익숙한 마음, 죽고 싶다는 생각을 반복하는 습관이 생기기까지 나의 생에 반복된 아픔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아픔을 견디어왔든 아픔에 속수무책 이지러져왔든 어쨌든 생을 이어왔다는 사실을, 칭찬까지는 못해준대도 그냥 그러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지금 알고라도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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