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주말인 내겐 별다른 휴가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더구나 3박 4일은 시골에서, 3박 4일은 아파트에서 지내는 나는 피서지의 복잡함과 번거로움을 비켜가고 싶었다. 직장생활에서 피곤함에 지쳐있는 사람들에게 양보하려 했었다. 쉼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기에, 회색 콘크리트 안에서의 답답함을 이해할 수 있기에. 내가 차지할 수 있는 여분의 공간을 그들에게 내어 주려고 했다. 그런데 더워도 너무 덥다. 연일 36도를 넘고 있다.
평상시 그렇게 더위를 타는 사람은 아니다. 커피도 여름이라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편이니까. 누구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라고 하지만. 얼마 전부터 뒤늦은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는지 얼굴이 훅 달아오른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인지, 내 나이가 몇인데 이제서. 친구들이 덥다고 옷을 펄럭일 때도, 부채로 달아오르는 얼굴에 대고 흔들어 댈 때도 난 여유로웠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다. 내 인생의 갱년기를.
오늘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분당, 서울, 대전에서 일어나는 묻지 마 폭행사건 탓인지, 날씨 탓인지, 내 마음도 어수선하고 불안했다. 지금이라도 호신술을 배워야 하나, 딸들에게 격투기라도 배우라고 해야 하나? 세상이 무서워졌다. 가슴도 답답해졌다. 이럴 땐 조용하지만 가슴이 트이는 곳으로 나가야 한다. 어제 늦은 시간 시골에 왔기에 오전일을 마친 남편과 계곡으로 향했다. 시골마을에 아주 넓은 규모의 카페가 계곡옆에 자리 잡았다. 하도 넓어서 입이 떡 벌어진다고 홍보하고 있다. 넓긴 넓다. 무엇보다 계곡을 끼고 있다. 자주 왔지만 에어컨이 있는 실내에서만 커피를 마셨다. 오늘은 제한된 공간이 답답할 것 같다.
지난 주말 친구들과 왔을 땐 실내든, 야외든 자리가 없었다. 주차장도 만차였다. 휴가철이 절정인 탓에. 주변의 캠핑장도, 식당도, 계곡도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이곳은 일곱 개의 폭포가 연이어 있는 관광지라 더한 듯싶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주말보다는 한산했지만 사람은 제법 많았다. 오늘은 나도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 시골에도 카페가 많이 생기다 보니 경쟁이 된탓인지 이곳에서도 지역민에게는 약간의 DC를 해준다. 얼마 안 되는 저렴함에 은근한 속물근성이 발현된다.그럼에도 기분은 좋다. 계곡옆 테이블에 가방을 두고 커피를 들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와우! 시원하다. 발을 담그고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모금을 마시니 천국이 따로 없다. 맑은 계곡물 사이로, 내 발가락 사이로 좀 전의 걱정과 우울함이 빠져나갔다. 열심히 제 몫을 다하는 매미가 계곡에서 우렁찬 목소리로우월권을 행사한다. 그 또한 오케스트라의 멋진 연주다. 계곡에서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즐겁게 놀고 있다. 다양한 모양의 튜브가 등장한다. 준이가 떠오른다. 한번 데려오면 좋아할 것 같다. 할아버지가 사준 물총으로 놀이도 하고. 이 좋은 상황에서 손주가 생각나니 난 참 손주 바라기다.
늦은 시간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최근 지인이 출판한 책을 읽으며. 이젠 몸에 한기가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곳을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계곡에 물놀이하는 사람들이 없다. 우리도 소지품을 챙기고 나온 김에 저녁식사까지 해결하고 집으로 핸들을 돌렸다. 남편은 콩국수를, 나는 칼국수를. 어! 그런데 이건 뭐지? 차로 5분 거리의 계곡카페에 다녀 온 것뿐인데 세컨드하우스로 들어가는 도로를 통제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아랫마을에서 일 년에 한 번 하는 불꽃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저수지에 줄을 띄워 불꽃을 내리는 줄불놀이가. 낙화축제이다. 늘 피서철을 맞이해서 열리는 밤행사이다. 관객 유치를 위해서. 한 번쯤 볼만한 풍경이라 전국에서 사람들이 구경하러 온다. 차량이 많이 몰리는 탓에 잠시 저녁시간에 통제를 하는 듯했다. 교통경찰에게 집이 여기라고 했더니 통제선을 풀어준다.
배도 부른 터라 운동화로 갈아 신고 산책 삼아 불꽃구경을 나섰다. 한산했던 시골길이 한쪽으로 차가 즐비하여 일방통행으로 도로가 변해 있었다. 암흑 같은 어둠 속에 저 멀리 불빛이 환하다. 하늘에서 붉은 비가 내려오고 있다. 지난번 무주야행에서도 시연해 준이와 본 불꽃놀이다. 처음 보던 해 무척이나 아름답고 신기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하늘에서 불비가 내리던 것이. 자주 보면 그 신비로움도 줄어들지만 그래도 볼만하다. 축제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또다시 덥다. 불꽃을 보는 동안 더 덥다. 그런데 멋지다. 불꽃 떨어지는 하늘이, 불꽃 맞이하는 저수지가.
*동영상을 올려봅니다. 약간의 소음은 현장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