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캉스

친구

by 바다나무

친구들이 놀러 왔다. 모두들 교육현장에서 함께 일한 친구들이다. 두 명은 명예퇴직, 두 명은 아직 현직에 있다. 한 명의 친구는 서울로 이사 가면서 명예퇴직을 했고, 나는 중임이 끝나고 전직을 하고도 기간이 많이 남아 퇴직을 했다.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우리는 늘 들에 핀 꽃처럼 순수함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야생화"라는 이름으로 모임 만들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 대학친구, 사회친구로 조합되어 결성된 모임이다. 우리는 시골의 세컨드하우스에서 1박 2일의 회동을 가졌다. 름하여 "촌캉스"이다.


"호캉스"가 호텔에서 하는 바캉스라면 "촌캉스"는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에서 즐기는 바캉스이다. 모두 대도시에 사는 친구들이라 호캉스보다는 밭뷰나 정원뷰를 보며 잠시 휴식을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여 바다나무 세컨드하우스에서 모인 것이다. 다음에는 서울 사는 친구가 호캉스를 하자고 한다. 호텔이든 우리 집 세컨드하우스 든 그리운 얼굴 보고 웃고 떠들 수 있으면 장소는 어디든지 좋다. 아무래도 퇴직하고 나니 옛날처럼 출장이나 연수기회가 없어 만남이 적조했다.


친구들을 만날 마음에 며칠 전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이 먼 곳 시골까지 와주는 친구들이 고맙고 기다려졌다. 남편은 밤에 모기가 달려들지 않도록 모기장 천막을 쳐주고 해먹도 설치해 주었다. 그리고 이것저것 불편한 것이 없는지 살펴 준 후 맘껏 즐겁게 놀라고 하면서 아파트로 자리를 비켜 주었다. 마치 민박에서 예약손님을 맞이하듯이 일일이 체크하였다. 이부자리며 먹거리까지. 그리고 구들의 편의를 위해서 바람같이 사라져 준 것이다. 편의 배려가 고마다.


호캉스의 드레스코드가 샤방샤방한 드레스라면 촌캉스는 당연 몸배바지다. 우리는 흰색 티셔츠와 몸배바지로 단복을 맞추어 입었다. 이제 밀짚모자만 하나 쓰고 밭으로 나가면 영락없는 농부가 된다. 촌스럽기 그지없다. 친구들의 모습에서 정장을 입고 출근하던 다소곳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마치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꽃밭을 누비며 즐거워한다. 방학을 틈타 왔으니 한 학기 동안 민원으로 시달렸을 머리를 비워가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여자들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고 했던가? 넷이 모였으니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이 줄줄이 새끼줄 엮듯 끝이 없 이어진다. 퇴직하길 잘했다는 위로와 아직은 전선에서 열심히 2세 교육을 맡아달라는 격려가 2:2로 나뉘었다. 퇴직한 자들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난다나? 하긴 요즘 같은 사회에선 가장 열약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감정노동자가 교육자인지도 모른다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최근 숨진 새내기교사의 아픔은 우리가 보듬어서 이끌어 가야 할 후배이자 동료였기에 그 느낌은 남르다. 작금의 현실이 유난히 가슴아픔으로 다가드는 사람들이었기에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선 가능한 말을 아꼈다. 그저 좋은 곳으로 가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말하지 않음에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으니까. 요즘 교욱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예민하고 예측이 어렵다. 갑도, 을도 없던 교육세상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갑이 되도 하고 을이 되기도 한다. 심한 널뛰기에 심을 잃어가고 있다. 나만의 생각일까? 가슴이 먹먹하다.


오늘만큼은 복잡한 현실을 잊기로 했다. 꽃밭에서 즐거운 포즈로 사진을 찍고 농원으로 가서 빨간 방울토마토를 따서 즉석에서 싱그러움을 맛보기도 하였다. 마침 옥수수가 때맞추어 익었기에 쪄서 따끈함으로 싸늘해져 가는 음을 데다. 이 따스함이 식지 않는 교육애이길 바라면서. 꽃향기에 커피향기를 더해가며 흔들 그네와 해먹에서 머릿속을 흔들어 비우 맑음으로 채웠다. 보잘것없는 조그만 세컨드하우스 친구들에게 분주했던 일상의 피로를 풀어 주기에 적격인 캉스의 명당장소가 되 바랬다.


밤에는 모기장 천막 안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남편이 설치해 준 철통방어장 덕분에 모기의 희생양이 되지는 않았다. 한잔의 맥주가 온몸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하늘의 별과 달도 하게 비춰준다. 친구들은 천국이 따로 없다고 하며 목줄을 타고 내려가는 시원함이 목줄을 풀어 준다고 하였다. 가끔씩 들리는 풀벌레 소리도 적당한 취임새로 응원가가 된다. 래 다 잘 될 거야.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난 친구들은 따스한 아침햇살과 맑은 공기에 혼탁해진 마음들을 깨끗이 세탁했다. 아침은 밭에서 공수해 온 온갖 야채로 샐러드를 만들어 바깥풍경을 감상하며 즐겼다. 멍석을 깔고 스뎅쟁반에 양푼비빔밥을 먹어야 제맛인데 간단하게 먹자는 말에 호텔식 조식으로 단순하게 차려졌다. 커피와 샐러드와 베이글. 그리고 삶은 달걀로. 순간 짐하려던 촌캉스가 라한 호캉스로 전락되었다. 각본에 없는 혼선이 왔지만 허기만 채워지면 호캉스든, 촌캉스든 상관없다.


휴가철이 절정을 이룬 탓인지 정원 앞을 지나 계곡으로 올라가는 차들이 줄을 이었다. 나는 먼 길 왔기에 가까운 계곡이라도 가자고 했더니 모두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복잡한 속을 달래러 왔는데 왜 눈을 복잡하게 하러 나가라며 모두 거부했다. 지금 이 상태가 행복이며 여기가 천국이라고. 우리는 피서지의 복잡함을 바다나무 정원과 농원을 오가며 밭멍, 꽃멍으로 시간을 즐겼다. 오늘은 계곡도, 숲도 피서객으로 몸살을 앓을 것 같기에 우리라도 그 대열에서 빠지기로 하였다.


차를 가지고 온 친구는 돌아갈 길을 위해 잠시 해먹에서 쉬게 하고 우리는 길건너편 농원으로 가서 필요한 만큼의 야채를 수확 가져 가기로 했다. 모두들 살림에 그다지 소질이 없는 친구들이라 방울토마토와 고추. 깻잎을 아주 조금씩만 땄다. 소가 천이지만 혹여 냉장고에서 잠을 자고 있는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들까 봐 나 역시 필요이상의 것은 가져가라고 권유하지 않았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린 살림보다는 일이 우선인 사람들이었으니까.


이제 1박 2일의 촌캉스가 저물어 간다. 이별의 정은 카페에서 커피잔에 담았다.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아마도 내년에는 한 명의 친구가 또 자유인에 합류할 것 같다. 그도 명에 퇴직다. 이제 우리들의 역량이 바닥이 나는가 보다. 더 이상 끌어올릴 자신들이 없나 보다. 그래. 이 또한 자연스러운 세대교체이니 흔쾌히 받아들이리라. 떠나온 나도, 남아 있는 그들도 아쉬움은 없는 것 같다. 나름 최선을 다했으니까. 이제 모두들 사회에 나와서 다 멋지게 익어가길 바 뿐이다.


친구들이 사라져 가는 자동차의 뒷모습을 보고 있을 무렵 핸드폰이 울렸다. 바다나무 세컨드하우스를 향해 남편이 출발한다는 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