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자란 푸성귀로 저녁상을 차렸다. 요즘 주말이면 시골의 조그만 세컨하우스에 미니멀라이프를 즐기며 소소한 일상을 맞이하고 있다. 밭에 간 남편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길 건너편 밭에 꽃과 나무를 심어 놓고 일주일 동안 자란 풀을 메고 있느라 남편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핸드폰이 일하는데 거추장스럽다며 들고 가지 않기에 급한 일이 있으면 학교 종을 처마 밑에 달아놓고 땡땡땡 울려 신호를 보낸다. 주로 식사 시간이나 손님이 오셨을 때 알림을 전하러 가기 귀찮을 때 사용하는 우리들 의사소통법이다. 허기가 느껴져 종을 치려 서산마루로 넘어가는 저녁노을에 눈길이 멎었다.
어둠과 밝음, 붉음과 푸름을 동반한 채 화려함과 장엄함으로 순식간에 시골 마을을 암흑으로 잠식시켰다. 몇 년 전 가족과 다녀왔던 코타키나발루의 샹그릴라 해변가에서 보았던 저녁노을이 생각났다. 세계명소로 알려진 은빛 물결 위로 넘어가는 해넘이가 장관이었다. 오늘도 그에 못지않은 아름다움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눈은 저무는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온갖 상념들로 가득 찼던 나의 뇌는 정지되어 있었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이렇게 ‘멍 때리기’를 한다.
지난해 어느 늦은 밤, 채널을 돌리다 갑자기 정지된 화면을 보고 TV가 고장 난 줄 알았다. 연못 속에는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꼬리를 흔들며 이리저리 왔다 갔다 물속을 노니는 영상이 10분 동안 계속되었다. 코로나 19로 지친 시민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제작된 멍 때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영상을 보는 동안 내 시선은 물고기와 함께 이리저리 이동하였다. 언제부터인지 내 눈은 물고기로부터 벗어나 있었다. 그리고 힘이 빠져 나른한 가운데 뭔지 모를 평온함이 느껴졌다.
예측지 못했던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이동에 제한을 느낀 사람들은 고단하고 피로한 삶을 시간이나 비용에 부담이 없는 ‘멍 때리기’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물 멍’, ‘불 멍’, ‘숲 멍’, ‘비 멍’, ‘노을 멍’, ‘백색소음 멍’, ‘기차 멍’, ‘밭 멍’, ‘책 멍’ 등 행위나 대상에 따라 이름도 다양하게 붙였다. 어느새 젊은 사람들 간에는 힐링의 대명사가 되어 사람들의 일상에 유행처럼 파고들었다.
나 역시 직장생활을 할 때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하여 힘들고 지친 마음을 달래 주려 ‘불 멍’이 있는 패키지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불안한 마음을 타오르는 장작불을 보며 잠시 쉬고 싶었다. 뒤처지거나 무가치하다는 통념에서 벗어나려고 의도적으로 잠깐씩 의식을 놓았다. 뇌가 충분한 휴식을 한 덕분인지 다녀오면 마음을 집중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로 업무에 성과를 낼 때도 있었다.
요즘에는 ‘멍 때리는 대회’도 열리고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면 어쩌면 대회에서만큼은 일상에서 하지 않는 것을 하면서 힐링의 시간을 제대로 허락받고 싶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쉼 없이 돌아가는 세상을 숨 가쁘게 살면서 멍 때리는 시간조차 정신 차리라는 말로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발로는 아닌지...
퇴직 후 한동안 무언가 새로운 삶에 대한 가치 정립이 되지 않아 곧잘 ‘멍 때리기’를 했다. 말없이 숲 속을 걷다 보면 들려오는 새소리, 계곡 물소리(백멍) 마음이 안정되고 평화로워지며 기분이 상쾌해졌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저수지 윤슬을 바라보면 내 마음에도 소리 없는 잔물결이 퍼져 무아지경에 빠질 때도 있다.
멍을 때리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순간 지난 세월의 기억들은 좋은 추억이 되어 나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흘러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나 앞으로의 삶에 대한 조급 함들이 정리가 되면서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느긋해진다. 스스로를 격려하며 ‘괜찮아, 앞으로의 인생도 멋져, 오늘 여기서 행복하자’라고 현실을 직시하며 오늘의 가치와 지금의 소중함을 느끼는 해 주는 재충전의 시간이 되었다.
일부 외신에서는 우리나라의 ‘멍 때리기’를 일상에서의 도피 행동으로 한국인이 선택한 일종의 도피처라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외국인의 눈에는 다소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시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기나긴 인생 여정에서 성과나 결과를 내야 하는 강박에서 벗어나 가끔은 나를 위한 딴짓의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앞만 보고 질주하던 고장 난 브레이크 같은 삶을 잠시 멈춤 하고, ‘멍 때리기’로 일상의 쉼표를 찍어본다.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서,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치며 인류 역사를 바꾼 것이 멍 때리는 시간이었다고 한다. 나도 내 인생의 역사를 멍 때림을 통해 다시 한번 써 보는 건 어떨까?
인생 2막은 특별히 화려하거나 드러나지 않아도 좋다. 단지 인생 1막을 통해 알게 되었던 삶의 경험을 통해 ‘인생의 방주方舟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라는 스스로의 믿음만 있으면 될 것 같다. 이제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삶의 방향을 돌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