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영혼이 자유로운 여행백수

제주 살기 2

by 바다나무

숙소의 망사커튼 사이로 아침햇살이 새어 들어온다. 그사이로 푸른 바다가 끼어든다. 어젯밤 늦게 까지 넷플릭스를 보다 잠이 들었다. 집에서 보다가 끝을 보지 못한 결말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라는 자발적 백수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니 왠지 퇴직한 우리 이야기인가 싶어 속으로 뜨끔하면서 몰입하게 된다. 젊고 예쁜 청춘드라마이다. 아무렴 어떠랴? 일단은 사회가 백수로 명명했으니 그 이름값을 해볼 생각이다. 지금은 여행백수다.


오늘은 숙소에 조식뷔페가 예약되어 있다. 편한 옷차림으로 식사를 하고 주변을 산책했다. 제주도는 어디나 관광지다. 골목도, 밭도, 바다도, 카페도.. 특별히 일정이 계획된 것은 없지만 일단 길을 나섰다. 이번여행은 무계획이 계획이다. 그러나 난 안다. 남편 머릿속에는 제주의 관광지도가 그려져 있다는 것을...


차가 멈춘 곳은 제주현대미술관과 저지문화예술인 마을 주차장이다. 현대미술관은 다음작가의 전시를 계획 중이라 잠시 휴관이라고 안내되어 있었다. 넓은 정원에는 다양한 조각작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현대미술관과 함께 있는 예술인 마을은 전국의 예술가들이 모여 작품활동을 하는 곳이다. 전시관이 오픈된 곳도 있었고 굳게 문이 닫힌 곳도 있었다. 저마다 다 특색 있게 지어진 건물들 다양한 예술분야의 작가들이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제주도립 김창열 화가의 미술관으로 발길을 향했다. 작가가 일생동안 일궈놓은 작업과 사유, 삶과의 만남. 그리고 함께 향유하고자 하는 작가의 예술혼이 담긴 전시관이다.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기는 하나 물방울 그림을 통해 모든 것을 무로 돌려보내고자 하는 작가내면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검은색으로 깔끔하게 만들어진 건축물은 위에서 보았을 때 회(回)형상으로 만들어졌다. 길을 따라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건축구조 조차도 하나의 물방울이 되어 인위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고자 하는 작가정신이 깃들여져 있다. 곳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속의 물방울이 방이라도 톡 터질듯 영채가 눈이 부시다.


예술인들의 영혼은 맑고 자유로운 것 같다. 그래야 창의성이 발현될 것이다. 구조화 속에서는 경직되고 정형화될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정해진 틀속에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이젠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너무 구속시켰다. 2월 28일 5시가 지나자 남편이 말했다. "난 이제 자유인이야!"라고...


무거운 어깨의 짐을 내려을 때가 었다. 혹자는 당분간은 좋아도 다시 그 시절이 그리워질 거라고... 아무것도 장담할 순 없지만 인생은 예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자유로운 혼으로 살아보는것도 우리 인생일듯 싶었다. 우리도 예술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 앞으로의 삶은 4일은 여행하며 자유인으로, 3일은 시골서 꽃 가꾸며 자연인으로 살아보자. 하루 일상도 여행으로 만들어보리라 생각했다. 예술인 마을을 돌며 새로운 삶의 활시위를 당 보았다.


저지오름으로 발길을 돌렸다. 적어도 하루 만보이상은 걸을 예정이다. 70이 되신 여자 네 분이 앞서 걸으며 단체사진 한 장을 부탁한다. 60에 왔다가 다시 명분을 만들어 70에 오신 봉사활동 하면서 만나신 분들이라고 한다. 연세가 있으셔서 그런지 계단 오르내리는 게 겁난다고 하시면서 분화구 쪽 단을 조심스레 내려가신다. 문득 나의 10년 후 모습이 보여 내 다리를 쳐다보았다. 아직은 건재하다. 미리 걱정할 일도 아니고 일단 오늘을 살기로 다. 아직은 다리보다 가슴이 떨리니까...


점심으로는 젊은 사람들에게 인기 맛집으로 알려진 분식집에 가서 눈꽃떡볶이를 먹었다. 침을 든든하게 먹은터라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당에 나이 든 사람은 우리뿐이다. 세대차이가 난다고 미리 거부할 필요는 없었다. 나이 먹어 젊은 자녀들이 같이 가자고 할 때 안 간다고 하면 정말 다음부터는 자기들끼리만 가니 무조건 따라가서 어울리라고 하셨던 퇴직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나이에 맞는 음식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관광지에서 이렇게 먹는 거라도 세대공감 연습을 해 볼 생각이다.


오름을 걷고 나니 차 한잔의 여유로 잠시 쉬고 싶었다. 오설록으로 발길을 옮겼다. 외국인 광객 대형차량이 주차장에 꽉 차있다. 로나가 물러갔나 보다. 상품코너의 줄이 보이지 않게 끝없다. 우리가 다른 나라 유명 관광지에 갔을 때의 모습이 생각났다. 언젠가 라텍스가 유명세를 치르던 때에 우리 산지라 하여 이 싼 줄 알고 긴 줄을 서서 라텍스를 사가지고 왔다. 돌아와 보니 국내에서는 더 저렴했. 지나고 나니 가격에 상관없이것 또한 추억이 되었다. 분명 저 긴 줄에 서 있는 자들도 추억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넓은 녹차밭의 푸르름이 마음을 평온하게 해 었다. 북적거리는 관광객 속에 섞여 있는 내가 오늘 살아 있음을 스스로에게 확인시켜 었다. 입안에 감도는 시원한 녹차아이스크림의 짜릿함이 인생의 짜릿한 묘미듯 설레게 해 준다. 여행은 그런가 보다. 내 삶을 반추해 보고 만나는 사람을 통해 나의 또 다른 삶을 계획해 가는 아주 설레면서 짜릿한 것...


제주 3월의 바람은 차면서 따뜻했다. 3월의 마음도 묵은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교차된다. 제 예약해 놓은 영화관으로 향했다. 좌석이 40석 정도 되는 작은 영화관이다. 아이들이 편하게 볼 수 있고 어른들이 저렴하게 볼 수 있는 마을로 돌아온 영화관으로 조금은 특별한 영화관이다. 관광하면서 저녁에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저렴한 영화(7000원)이다.


우리가 본 영화는 "더 웨일"이라는 영화로 폭식으로 인해 272킬로의 거구로 삶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이다. 그 주인공 역시 문학을 하는 대학의 에세이 강사로 글쓰기의 진실성을 의하고 있다. 또한 몸이 망가짐과 동시에 내면의 망가짐을 절하게 표정연기로 보여준다. 커다란 화면을 꽉 채운 그의 거대한 몸, 마지막 울부짖음에 자리를 쉽게 떠날 수가 없었다, 제주에서 본 이 영화는 내 기억 속에 오래도록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제주의 밤이 깊어간다.


※ 혹시 모를 여행자를 위해 다녀온 장소를 기록해 본다. (제주현대미술관. 저지문화예술인마을. 김창열미술관. 저지오름. 분화구. 밀크홀분식. 오설록. 한림 작은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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