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의 설렘을 여행의 설렘으로.

제주 살기 1.

by 바다나무

차가 먼저 출발했다. 남편의 퇴직기념으로 새로 산차에 3주간의 제주여행 짐을 실려 떠나보냈다. 오래 사용한 차라 작년에 내가 퇴직하면서 주문했더니 1년이 지난 올해 남편의 퇴직일에 맞추어 배달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준 남편에 대한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통 큰 선물이다. 이제 이차는 앞으로 우리 인생 2막의 에 애마가 되어 편안한 도로의 휴식처가 될 것이다.


나 혼자만의 퇴직으로는 가까운 3박 4일 정도의 여행은 가능하지만 한 달 살기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렁크 속의 1박 2일 가방은 그동안 속초, 양평, 단양으로 추억을 쫓아 제 몫을 다하고 있다. 이제 조금 긴 여행을 하고 싶었다. 일단 제주부터 살기로 했다. 남편의 퇴직과 함께 묵은 것을 정리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떠나기로 오래전에 계획을 세운 터라 실행에 옮기는 일만 남았다. 개학의 설렘을 우리 내외는 여행의 설렘으로 바꾸기로 했다.


당초 제주 한 달 살기를 계획하였으나 평생교육원에서 공부한 자격증 시험과 일정이 겹쳐 어쩔 수 없이 한주를 줄여 3주 살기를 계획했다. 우리는 차를 가지고 가기로 해서 하루 전날 필요한 옷과 약간의 생필품. 자전거를 미리 차에 실어두고 탁송으로 출발을 시켰다. 그 차는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도착하는 날 제주공항에서 인계받으면 된다.


전날 설레기도 하고 오랜 기간 집을 비워 여러 가지 정리해 두어야 할 것들이 있어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무엇보다 작은 딸이 집에 있어 바다(고양이)에 대한 걱정이 줄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시골도 다녀와 봄농사(꽃과 나무 재배)에 대한 비료와 거름도 준비해 두었다. 해외도 아니고 국내이니 그리 큰 부담은 없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챙기고 정리해 두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우리들이 사는 이곳까지 봄이 오기엔 아직 시간이 아있다. 그럴 바엔 성격 급한 리가 봄을 찾아 미리 길을 나서는 것도 괜찮을 듯싶었다. 만물이 생장하고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3월, 올해는 둘 다 퇴직한 새로운 출발을 저 외딴섬 제주에서 박한 걸음으로 느리게 시작하련다. 작년 내가 퇴직했을 때 간 3박 4일간의 제주여행과는 뭔지 모르게 느낌이 달랐다. 이젠 둘 다 자유인인 탓일 게다.


제주공항에 도착했다. 포항을 거쳐 먼저 도착한 우리 차가 차장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많이 와본 제주지만 도로의 나무부터 설레게 했다. 빨간 열매가 다닥다닥 붙은 나무가 꽃인양 기길래 너무 예뻐 "뭔 나무야?"라고 물어봤다. 남편은 "뭔 나무?"라고 대답했다. 아니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되묻는 거 같았다. 다시 한번 물었다. "저 빨간 나무 이름이 뭐냐고?", "먼나무!" 대답은 여전했다. 제주에 오자마자 썰렁한 개그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그 나무의 이름이 "먼나무" 였 것이다. 출발부터 제주에 가로수로 유독 많은 "먼나무" 이름덕에 한바탕 웃었다.


숙소로 가기 전에 배를 채워야 했다. 아침을 안 먹은 탓도 있지만 기체가 많이 흔들린 탓에 속이 메스꺼워 우선은 위를 달래주어야 할 것 같았다. 따뜻한 국물 있는 것을 원하자 네이버지도가 알려주는 식당으로 향했다. 돌아보니 교직생활을 하며 남편은 수학여행지로 제주도를 가장 많이 왔고, 나는 현장학습으로 에버랜드를 가장 많이 간 것 같다. 덕분에 이번 제주여행이 수월해질 것 같다.


가족이 경영하는 해장국집으로 갔다. 주말이나 관광철에는 대기하는 곳인데 오늘은 약간 점심시간이 지난 터라 한가했다. 해장국 한 그릇에 속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 나이에 멀미라니. 아직도 내 삶에 적응 안 된 것이 남았다는 게 신기하다. 수십 년 아동인솔로 익숙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자유인으로 긴장이 풀리니 속도 그 끈을 놓고 방향을 잡지 못하나 보다.


배도 찼으니 따뜻한 커피 한잔의 수혈은 필수다. 제주만의 분위기와 감성이 있는 카페를 찾아갔다.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천장과 벽,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가운데 조화로움을 갖추고 있는 돌담으로 둘러싸인 카페이다. 커피도 맛있고 인상적이다. 이번여행에서도 1일 1 카페 투어는 의무이행사항이다.


숙소로 향했다. 한림해변에 있는 리조트였다. 맛집도 여행의 묘미지만 숙소의 주변경관이나 부대시설이 여행에 한 몫하는 부분이라 우리는 일주일 단위로 숙소를 정했다. 상황에 따라 3일씩 정한 곳도 있다.

짐을 풀고 한림해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바람이 싸늘하다. 가지고 온 경량패딩이 한 몫한다. 오기 전 먼저 다녀온 지인의 충고와 어느 작가님의 제주 한 달 살기 글을 읽고 온 것이 도움이 었다. 높이 솟은 야자수가 이국적이다. 바람이 춥다는 느낌보다는 상쾌하다. 어둠이 내려앉는 시간의 낯선 타지에서의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바다도 잔잔하다. 고운 모래가 발밑에서 부서진다. 해가 수평선을 넘는다. 이렇게 제주에서의 첫날을 보낸다. 초로의 나이에 또 다른 꿈을 꾼다. 둘이 함께!


※ 혹시 모를 여행자를 위해 다녀온 장소를 기록해 본다.(대춘해장국. 독개물항. 커피냅로스터스. 한림리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