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귀도를 전세 내다.

제주 살기 7

by 바다나무

어제저녁 먹으며 반주를 한잔 한 탓인지 조금 늦은 하루를 시작했다. 벌써 옆호실에 묵고 있는 언니와 형부는 어제 사 온 빵과 커피, 구운 달걀. 귤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주변의 오설록 녹차단지와 우주항공박물관 산책을 다녀오셨나 보다. 나이 들면 아침시간을 잘 활용하기도 하지만, 며칠간의 제주여행이 아쉬워 하나라도 더 눈에 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요즘 제주날씨는 햇살 가득한 봄바람, 바닷바람에 여행하기 아주 좋은 날씨이다. 늦은 아침을 간단하게 먹으러 장어덮밥 집으로 갔다. 점심시간 맞추어가면 영락없이 자리가 없는 식당이 조금 일찍 갔다. 작고 허름한 식당이지만 맛은 일품이다. 주방셰프의 요리철학과 자부심이 대단해 하루에 정해진 양 50인분만 팔면 가게문을 닫는다고 한다. 요즘 같은 시기에 이런 배부른 장사도 있다니. 그런데 의외로 제주에는 이런 식당이 많았다. 술인지는 몰라도 사람들은 이런 식당을 더 열광하며 줄을 서서라도 맛을 보려고 기다리며 선호한다. 리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저 어떤 맛이길래? 그것이 궁금할 따름이다.


복권당첨이라도 된 듯 행복하게 맛난 식사를 했다. 역시 맛있다. 모두가 보편적인 입맛이다. 산방산이 보이는 유채꽃밭에서 언니의 소원풀이를 또 한 번 해본다. 한참 사진을 찍던 언니가 "이제는 원도 한도 없다"라 말에 우리는 모두 박장대소했다. 딸은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며 맘껏 포즈를 취한다. 모두들 오늘이 세상 끝나는 날이듯 열심히 유채꽃과 맞춤 하고 있다. 하하 호호 웃음소리가 유채꽃가루와 함께 어디론가 날아간다. 다음엔 단풍색깔 고운 가을에 다시 와야겠다.


가까이 있는 용머리해안을 산책하고 제주의 이국적인 분위기가 바다와 맞물린 해변에 있는 카페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은 바다와 인접해 있어 비치파라솔 아래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야외카페였다. 며칠 전 남편과 둘이 왔다가 가족이 오면 다시 오려고 아껴두었던 장소이다. 카페와 해변을 넘나들며 사진을 찍고 풍광을 즐기고 있을 무렵 딸이 커피를 가져왔다. 야외에서 마시는 커피에는 바람이 한 줌 더해져 시원함이 가미되어 있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취향도 다 다르다. 어쩌면 나는 커피맛에 취해 커피를 마시기보다는 분위기나 인테리어. 뷰 등 감성적인 부분에 취해 커피를 마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나의 취향이 다소 커피를 욕되게 하는 것 같아 얼마 전부터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에 도전하고 있다. 그땐 최소한 커피맛과 풍경맛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취향으로 변하지 않을까 싶다.


카페를 나와 풍차도로를 드라이브하면서 바다의 웅장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제주바다를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제주바다목장을 산책하면서 융단처럼 깔려있는 초지와 바다의 수평선을 한눈에 담아 본다. 잠시 후 김대건 신부의 기념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천주교 신자인 언니와 형부이기에 산티아고 순례길은 못 모시고 가더라도 잠시 들러 종교적 예의는 표해야 할 듯싶었다. 객지에 나가 여행 중에도 가능한 미사를 빠지지 않은 두 분임을 알기에 기념관으로 발길을 향했다. 언니는 냉담 중인 우리 부부를 위해서도 촛불을 켜고 잠시 묵상했다.


다소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섬을 한 군데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차귀도로 가는 배표를 끊었다. 뱃삯이 비양도에 비해 두 배가 비싸고, 사람이 살지 않는 섬으로 제주도에서는 가장 큰 무인도라고 한다. 뭔가 신비함이 숨어 있는 섬인 듯 기대가 되었다. 차귀도는 누구나 편하게 트레킹 할 수 있는 이자 일몰장소로도 유명해 관광객들에게는 각광받고 있는 섬이라고 한다.


배에는 우리말고도 10명 정도가 승선해 입도했다. 내리면서 삼삼오오 흩어지고 우리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 마치 우리 가족이 섬하나를 전세 낸 듯싶었다. 넓은 초원과 저 멀리 보이는 등대와 맞은편의 야트막한 산봉우리, 앞에 보이는 광활한 바다, 마치 하늘에서 신선이라도 내려와 우리와 함께 동행해 줄 것만 같은 신선함과 평온함이 우러진 우리들의 천국 같았다.


1시간 반정도의 시간이 소요된 차귀도 섬여행의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관광철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섬을 호젓하게 독차지할 수 있는 평일여행에서의 특권이 퇴직에 대한 감사함으로 이어진다. 여행이 일상이 되어버린 여행백수의 삶은 그동안 수고한 삶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며 즐기는 자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다.


오랜 걸음뒤에 느껴지는 배고픔, 그것은 어느새 맛집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고 있다. 가성비 짱으로 기억된 맛집으로 다시 한번 가려고 한다. 오늘은 대방어회로 풍성한 식탁을 메워 보련다. 가본 곳을 다시 방문하기란 쉽지 않지만 이곳은 다시 한번 더가도 무색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가족들의 배가 풍성함으로 채워진다. 운전과 트레킹으로 수고한 남편에게 술잔의 기회를 부여하고 운전의 기회를 내가 잡았다.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은 동생의 욕심에 언니와 형부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더니 섬을 통째로 차지한 이런 행운은 두 번 다시없을 거라며 즐거움에 술도 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도 이렇게 붙잡을 수 없는 하루가 아쉽게 지나갔다. 숙소를 옮긴 탓에 또다시 신혼방을 꾸민다는 칠순의 부부는 농을 건네며 어깨동무하고 손을 흔들며 옆호실로 들어갔다. 그 뒷모습이 아름답다.


※ 혹시 모를 여행자를 위해 다녀온 장소를 기록해 본다.(우주항공박물관. 사계의 시간. 산방산 유채꽃밭. 용머리해안. 원 앤 온리 카페. 제주바다목장. 김대건신부 기념관. 차귀도. 수눌음식당. 더큐브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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