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에 도장을 찍다.

제주 살기 8.

by 바다나무

새로 옮긴 숙소는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제주 살기에서의 숙소는 교직원 복지혜택으로 협력관계가 있는 곳들로 택하면서 저렴하고 깨끗한 뷰가 있는 숙소들로 정했다. 우리들의 제주 살기는 작년부터 계획된 터라 미리 조금씩 알아본 후에 광편의를 고려하여 선택하였다. 한 곳에 오래 머무는 것과 번거롭지만 일주일 단위로 옮기는 것, 펜션과 리조트 등을 비교해 보면서 결정한 것이다.


조식뷔페로 식사를 하고 가벼운 산책길에 올랐다. 피톤치드향이 나는 치유의 숲에서 몸의 긴장을 풀고 자유로운 영혼의 날갯짓으로 심신을 잠시 쉬게 해주고 싶었다. 어제의 여행이 조금 힘들었는지 딸은 오전에 숙소에서 쉬고 오후에 합류하기로 했다. 지친 몸을 쉬게 하는 것도 여행의 궁극적 목적이기에 편한 대로 유로운 휴식을 주기로 했다.


제주에 올 때부터 딸은 꼭 먹어보고 싶은 음식이 있다고 한다. 김밥이다. 하긴 지난해 여행에서도 먹고 싶어 했는데 여행일정이 맞지 않아 먹지 못했다. 얼마나 대단한 김밥이길래 목표의식을 가지고 도전해야 하는지 궁금했다. 직접 가서 주문하고, 직접 가서 찾아와야만 하는 이 김밥의 정체는 무얼까? 어찌 되었든 제주까지 와서 청한 딸의 부탁은 들어주어야 할 듯싶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으니까 소리 없이 쿨하게 져주기로 했다.


치유의 숲에 가면서 주문했더니 두 시간 뒤에 찾으러 라고 했다. 숲에서 돌아오는 길에 찾으면 될 이다. 이 또한 먹방이나 유튜브 탓이리라 생각하며 인터넷의 정보성과 홍보력의 력을 느낀다. 그걸 꼭 먹어야 하냐고 반문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 무시하면 대화가 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꼰대가 되어린다. 가능한 별 무리 없으면 동참하고 그에 따른 색다른 묘미도 께 즐는 것이 최근 내가 딸과 함께 공존공생하는 방법이다.


치유의 숲에 도착하니 공기부터 다르다. 뭔지 모를 상쾌함과 신선함이 코끝에 다가온다. 숲해설가 공부를 하면서 자주 드나들었던 숲이 내 집처럼 정겹고 편안하게 다가든다. 덕분에 얼마 안 되는 금액을 무료입장하는 특혜를 받았다. 데크길 위로 빽빽이 자란 동백나무의 빨간 꽃이 우리를 반겼다. 이렇게 큰 동백나무는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이 숲은 장애인을 위한 산책시설이 의도적으로 편하고 넓게 조성되었다. 데크길이 휠체어나 유아차를 가지고 와도 충분할 듯싶었다. 한때 직장 생활하면서 특수교육 업무를 맡은 적이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특별한 게 아니라 결국 비장애인을 위한 거라는 알면서 스스로의 편협한 시각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국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그 한 예로 리모컨이 그렇다. 개발당시 몸이 불편해 누워있는 사람의 편의를 도모하기 위해 만든 것이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편안한 도구로 일반화되어 있다.


피톤치드가 가장 활발히 뿜어 나오는 시간이라 그런지 찌뿌둥한 몸이 이완되는 것 같았다. 시간여유가 되면 숲해설을 신청해 그곳에 서식하고 있는 꽃과 나무, 곤충들의 생태계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유의 숲을 산책하고 오는 길에 김밥을 찾아서 딸과 함께 한라산 등반길에 올랐다. 형부가 예까지 오셨으니 입구까지라도 가봐야 친구들에게 자랑할 명분이 설 것 같았다. 아니 나 스스로에게도 한라산 등반은 제주도 여행에 대한 왠지 모를 당위성이 광코스이다. 최소한의 눈도장, 발도장을 찍 가야 한다.


한라산 정상에는 희끗희끗하게 잔설이 남아있고 영실탐방로 쪽으로도 음지라 두터운 눈이 녹지 않아 무척 미끄러웠다. 따뜻한 날씨에 위험한 구간이 길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나이인지라 안전에 대한 우려로 30분 정도만 올라가기로 했다. 조금 가다가 우리는 사가지고 온 도시락을 먹는 의식을 자연스레 치렀다. 숲 속에 털썩 주저 물러 앉아 먹는 김밥의 진미를 누가 알까? 당초 의도된 바는 아니었지만 김밥과 산행은 찰떡궁합이었다. 원래가 맛있는 김밥이라 주인장이 콧대를 세운건지, 등산길의 김밥이 별미인지는 알 순 없지만 딸이 한 번쯤 보고 싶어 할 만다. 짭짜롬하니 맛이 있다.


점심을 먹고 병풍바위까지 가서 한라산에 다녀왔다는 족적을 남기기로 했다. 역시 갈피 속의 버킷리스트 하나를 완성했다. 내려오면서 오름이 보이는 카페로 향했다. 몇 년 전 가족끼리 갔을 때 너무 붐비는 인파로 인해 커피를 마시지 못한 곳이다. 앞에는 새별오름이 동산처럼 펼쳐져있고 햇살에 억새가 평온한 채 다소곳하게 자리지킴하고 있었다. 낼모레면 온몸을 불살라 새살을 돋게 하리라.


새별오름에서는 '2023. 들불축제'를 하려고 막바지 행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수많은 부스가 설치되어 다양한 체험활동과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고 무대에서는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멋진 축제에 참여할 수 있어 너무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불쇼가 장관일 듯싶었다. 하지만 최근 일어난 합천의 산불사고가 생각나 다소 정이 되기도 했다. 한두 번 해본 행사도 아닌데 안전에 대해선 주최 측에서 철저하게 준비했으리라 여기며 기대감에 맘이 설렜다. 축제기간에 다시 이곳에 오리라.


차를 마시고 나서 새별오름을 올랐다. 한라산을 다녀온 터라 조금은 완만한 반대쪽 능선을 타고 올랐다. 오르기 전 밑에서 정상을 올려보던 언니가 처음에는 겁을 먹고 주춤하더니 막상 오르고 나니 안 왔으면 후회할 뻔했다고 한다. 힘들 때마다 손을 잡고 오르내리는 언니와 형부의 정겨운 모습이 오랜 세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온 가장 든든한 내편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두 사람이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건강했으면 좋겠다.


오늘은 꽤 많이 걸어 밥맛이 꿀맛일 것 같다. 어느새 내일이면 3박 4일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갈 날이다. 제주 왔으니 갈치조림은 맛보아야 할 것 같다.

운동한 후의 몸에 영양분을 공급해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는 믿음으로 제주에서의 맛집을 선택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하나로 마트에 들러 회감과 맥주를 사가지고 와서 회동식을 가졌다. 내일이면 헤어질 생각에 밤이 깊어가는 게 아쉬웠다.


※ 혹시 모를 여행자를 위해 다녀온 장소를 기록해 본다.(서귀포 치유의 숲. 오는 정 김밥. 한라산 병풍바위. 새빌카페. 새별오름. 성향. 더큐브 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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