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지요.

혼자 하는 1박 2일

by 바다나무

요란했던 태풍도. 정신없이 깔깔대며 웃어주던 준이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갔다. 일주일은 비상사태로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던 시간이었다. 세상이 조용해지고 나니 내 몸에서도 한 움큼의 기가 빠져나간 듯이 허전하다. 내 일상으로 돌아와 이번달의 스케줄을 확인해 본다. 몇 개의 모임과 문화센터에 신청해 놓은 일정이 있을 뿐이다. 정수기 필터교체 가정방문도 끝났고. 늘 노는 백수 삶도 가끔은 머리 쉼을 원한다. 카눈이 스쳐간 태풍의 회오리를 벗어버리고 가을을 느끼고 싶다. 그리고 다시 2학기를 준비하고 싶다. 오늘은 오롯이 혼자.


입추가 지나 들녘의 벼이삭이 곧 춤을 추려한다. 아직은 황금의 무대가 펼쳐지지 않았는지 다소곳하다. 차를 몰고 나왔다. 예쁜 정원이 있는 야외 카페도, 인테리어가 멋진 도심의 카페도 오늘은 사절이다. 오롯이 나 혼자 있을 공간이 필요할 뿐이다. 남편도 퇴직한 터라 차두대가 특별히 필요치 않았지만 오늘 같은 날을 위해 지하주차장에 모셔두고 있었다. 나를 위한 선물 같은 시간에 사랑스러운 나의 애마가 오늘은 나를 위해 충성을 다할 것이다.


어디론가 향했다. 시골 세컨드하우스다. 늘 함께 오던 곳이었으나 오늘은 혼자다. 함께 오면 들어섬부터 바쁘다. 가지고 온 물건정리부터 주변 정리까지. 오늘 하루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련다. 내일이면 바깥주인이 올 테니까. 여자라는 이름은 늘 가사를 벗어날 수 없다. 숙명처럼 따라다닌다. 일이 많고 적고를 떠나, 식구수가 많고 적음을 떠나, 남편이 가사를 많이 분담하고 안 하고를 떠나, 아주 가끔은 나 혼자 오롯이 나를 찾고 싶을 때가 있다. 나만 그럴까?


아파트 공간보다는 이곳이 내게도 안성맞춤이다. 남자들만 티브이의 "나는 자연인이다"가 로망이 아니다. 그러려고 이곳을 퇴직 3년 전부터 드나들며 발품을 팔았다. 어쩌면 여기가 내가 퇴직 후 같이, 따로 살아가는 아지트인지도 모른다. 물론 나보다는 남편이 더 필요로 하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오롯이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이곳이다. 그리 긴 시간을 요하지는 않는다. 하루나 이틀정도,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배고프면 냉장고를 뒤적여 허기를 면고. 식사시간도, 취침시간도 정해짐이 없다. 그저 내 맘대로다.


혹여 운전하며 졸릴까 봐 사온 아이스커피가 도착할 즈음 다 녹아있었. 그래도 시원한 여운은 남아있다. 커피를 들고 정원을 한 바퀴 돌았다. 바다나무 정원이 반쪽주인을 환하게 맞이해 준다. 백일홍, 여름장미, 수국이 색의 조화를 이룬다. 불과 며칠 전 태풍으로 인해 쫓기듯 두고 간 곳이지만 원망 없이 반겨준다. 가을바람까지 한 줌 얹어서. 풀은 외면한 채 진한 갈증을 느끼는 꽃들에게만 샤워를 시켜 주었다. 최소한 도리는 해야 하니까.


안 하던 운전을 해서 그런지 졸음이 쏟아졌다. 일단 한숨 자고 일어났다. 날망집에 혼자 있다는 두려움으로문을 잠그고 방안의 열기를 에어컨으로 식혔다. 조용하니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젊은 날 쉬는 주말이면 잠을 실컷 자고 싶었다. 안 먹어도 좋으니까 을. 그런 나를 아이들은 잠만보라고 놀렸다. 남편이 방문을 조용히 닫아주고 배려해 줌에도 아이와 함께 싱크대를 오가고.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는 바깥 공간의 움직임이 나만의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 주지 못했었다. 가끔 시집간 딸이 단 하루만이라도 온전한 휴가를 원할 때가 있다. 이해가 간다. 그 간절함을. 그래서 준이를 돌보러 간다.


눈을 뜨고 나니 밖이 깜깜하다.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같은 공간에 누구랑 있는 것도 중요하다. 오늘은 남편대신 하늘의 별이 나를 지켜준다. 오늘만큼은 별님과 달님 신세를 져야 할 것 같다. 아주 고즈넉한 밤이다. 풀벌레 소리만 들린다. 홀로 맞이하는 밤의 꽃향기는 낮보다 진하다.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었다. 시골에서 가끔 무심함 속에서 지는 석양을 보며 듣는 노래이다.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지요"라는 홍순관 가수의 노래를.


난 이 노래를 아해서 가끔 듣는다. 물론 가수 노래의 배경지식은 없다. 수가 기독음악을 다는 것 외엔. 난 기독교 신자도 아니다. 각설하고. 난 이 노래의 단순한 노랫말이 좋다. 이유는 없다. 그냥이다. 다소 대답이 무성의하기는 하만 어쩔 수 없다. 내 마음이고 내 감정이니까. 산에 나무가, 넓은 바다가 저처럼 사는 건 저밖에 없다고 한다. 산이 바다를 부러워한다. 늘 살아서 움직이니까. 바다는 산에게 말한다. 난 네가 부러워, 늘 한자리에서 변함없이 서 있으니까. 각자의 숨을 쉬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늘 곁에 있다. 변함없이. 바다나무처럼.


책을 읽다가 잠이 든 것 같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이 부셨다. 꽤나 숙면을 취했나 보다. 시간이 오전을 집어삼키려 하니까. 기지개를 켜며 커피 한잔을 들고 홀로 아침을 맞는다. 아니 점심을. 잠자리와 나비가 가을햇살과 바람을 재촉한다. 가을 무도회를 열고 싶은가 보다. 나비 두 마리가 늘 함께 날아다니며 백일홍 꽃 두 송이에 각자 앉아있다. 잠자리는 장대 끝에 홀로서기하고 있고. 올 가을 우린 어떤 무도회를 열어볼까? 아무래도 잠자리보다는 나비가 춤을 잘 추겠지? 차소리가 난다. 눈 익은 번호판이 바다나무정원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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