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꿈꾸는 것은 행복하다.

바다나무 정원과 농원 사이에서

by 바다나무

세월이라는 이름은 예외가 없다. 노란색으로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바다나무 정원을 지켜주던 개나리도 세월 속에 바깥주인의 자리를 내어주고 화려함 대신 푸르름으로 제 몫을 다하고 있다. 낮은 자리에서 얌전히 죽은 듯 앉아있던 꽃잔디가 어느새 기세를 드러내어 화사하고 의기양양한 채로 안방마님 역할을 하며 정원을 진두지휘한다.


영역을 넓게 포진하고 있어 어쩌다 하나씩 피어나는 꽃과 나무는 웬만큼 기가 강해서는 감히 꽃잔디를 대적하기 힘들다. 흰색, 분홍색, 보라색. 홍색. 줄무늬 등 그 색깔과 디자인도 제 각각이다. 그나마 반대쪽에 올곧게 무리를 지어 피어나고 있는 수선화가 한번 맞짱 떠 보자고 출사표를 던져 보려나?


지금 정원의 꽃들은 저마다 잘난 맛에 취해 때를 기다리고 있다. 꽃은 꽃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하늘빛을 받고 땅의 기운을 얻어 새로운 삶을 갈망한다. 바닥에 붙어 존재감마저 희미했던 손톱만 한 보랏빛 꽃도 '나도 여기 있소'라고 희망의 빛을 던진다. 애기누운주름 꽃이다.


세상이 천지요동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고 늘 풀어헤친 머리로 의연하게 버티고 앉아있는 녀석도 있다. 세상 부러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이 그저 내 멋에 취해 혼자만의 고고함을 자랑하며 화단의 가장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갈사초이다. 계절감각이 없어 보이긴 해도 가을이면 한 몫한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가끔 정원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큰 꿩의비름이 몸집을 키워가며 영역확장을 해 나간다. 광개토대왕의 뒤를 이은 장수왕의 북진정책인양 길건너편 농원까지 기세를 펼치고 있다.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면 이웃들이 몰려오는 유일한 농원의 수입체가 되기도 한다. 동네에서는 나눔을 하여 시골사람들로부터 인심을 얻기도 하.


3년이 지나다 보니 꽃과 나무의 양이 제법 늘고 조그만 바다나무 정원이 비좁아졌다. 어쩔 수 없이 수종이 많은 것들은 길 건너편 바다나무 농원으로 조금씩 분가해서 떠나보냈다. 특별히 기대하는 바는 없지만 취미가 작은 수익으로 연결 될 수 있다면 그 또한 노후에 아주 소소한 재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돈이 목적은 아니지만 봉사에도 약간의 보상이 따르면 또 다른 노년의 가치를 느낄수 있다고 하니 거기에 작은 의미를 부여해 본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꿈을 가본다.


언어적으로 '정원'은 집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을 말하며, '원'은 주료 원예작물을 심어서 가꾸는 농장을 의미한다. 결국 200평이 안 되는 바다나무 정원은 길건너편에 있는 조금 넓은 바다나무 농원에서 가꾼 원예작물의 전시장이 되는 셈이다. 꿈이 다소 야무지긴 하다. 평생 아이들만 가르치던 사람들이. 단지 이 어설픈 도전을 위해 우리는 퇴직 후 5도 2촌 삶을 4도 3촌 정도로 약간의 궤도 수정을 했다. 물론 이것도 여행이나 준이의 호출로 물거품이 될 때가 많다.


오늘부터 조감도에 의해 착수 전에 돌입했다. 조금씩 밑작업에 의해 바다나무 농원을 꾸밀 예정이다. 그동안 미리 나무와 꽃을 많이 식재해 놓았던 터라 자리를 정해 옮겨 심으면 된다. 아, 물론 이 농원의 중심에는 사랑스러운 손주 준이가 있다. 가운데는 준이가 뛰어놀 잔디밭이다. 그리고 그 주변에 꽃과 나무를 심을 예정이다(대문사진). 이대로 꾸며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우리는 첫 삽을 떴다.


남편은 곡괭이로, 난 호미로 둔탁한 소리를 내며 땅을 일군다. 처음 해보는 흙놀이는 다소 힘은 들지만 유치원 모래놀이만큼 재밌다. 남편의 곡괭이가 지나간 자리의 굵은 흙덩이를 나는 작은 호미로 부순다. 뒤돌아보면 거쳐간 자리마다 잡초가 제거된 보슬보슬한 흙이 편평하게 펼쳐져 있어 흐뭇하다. 마치 시루 속 떡가루처럼.


창이 넓은 모자를 쓴 초보 일꾼들은 빠꼼한 눈빛으로 서로 간의 성취감을 확인하며 씨-익 웃는다. 한 뼘만큼 일을 하고 난 뒤에 벌써 멋진 농원이 꾸며진 양 행복해한다. 우리는 이미 잔디밭에서 준이와 비눗방울 놀이와 물총놀이를 하고 있다. 준이가 일 년에 한두 번 와도 상관없다. 그저 함께 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아마 올해 할아버지의 어린이날 선물은 물총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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