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주인이 나타났다.

준이의 일기

by 바다나무

준이가 왔다. 바다나무 농원의 미래의 주인이 나타난 것이다. 기저기 둘러보며 해야 할 일이 많은 듯하다. 부산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독백한다.


방울토마토도 따야 하고, 꽃밭이 잘 가꾸어졌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내년에 심을 꽃과 나무가 하우스에서 삽목이 잘 되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도대체 왜 이렇게 바쁜지 모르겠다. 놀이터 가서 해먹도 타야 하고 그네도 타야 하는데. 가지고 온 낚싯대로 물고기도 잡고 물놀이도 해야 하는데, 아, 아랫마을에 사시는 큰할머니집 마실 가는 것도 잊으면 안 되는데. 도대체 날 보고 뭐부터 하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일단 입부터 즐거워야겠다. 지난번에 왔을 땐 산딸기와 블루베리가 맛이 좋았는데 이번는 방울토마토와 수박이 어떤 맛인지 미식가인 입으로 한번. 음~ 맛있군. 방울토마토는 미끄러지지 않게 가운데를 한입 물어 앙! 할머니 유치원선생님이 절대로 한 번에 꿀꺽하지 말라고 했으니 조심조심. 성공이군. 그래, 꿀떡도, 메추리알도 꼭 이렇게 반씩 베어 먹으라고 했지. 잘못하다가는 목에 걸려 큰일 난다고.


바구니에 방울토마토와 파프리카. 리고 엄마가 아하는 바질까지 수확을 했지. 이제 양상추만 뜯으면 완벽한 샐러드가 되겠군. 발사믹 식초에 올리브 오일. 소금, 추를 약간만 넣으면 제법 맛이 나겠는걸.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리코타치즈를 조금 얹으면 환상의 맛을 낼 거야. 사다 놓은 게 분명 있을 거야. 여기 안주인도 리코타치즈를 좋아하니까. 내가 벌써 내일 아침을 신경 쓰고 있군. 내일은 내일 걱정해야지.


물도 주고 농장 점검도 했으니 주인장이 내놓은 옥수수 맛을 보아야겠군. 그러고 보니 냉동실도 점검해 보아야겠는걸. 현미가래떡과 가 좋아하는 김과 먹을 수 있는 찰밥은 잘 보관되어 있는지. 제철 간식인 옥수수도 얌전히 자리 잡고 있는지. 냉동실 설정온도와 날짜표기도 확인해야겠군. 럴리야 없겠지만 혹시 작년 묵은 것이 남아 있을 수도 있으니. 은근 이 집 안주인이 덜렁거린단 말이야. 바깥주인은 꼼꼼한데. 내가 여름이면 바깥주인덕에 텐트며 해먹이며. 물놀이장 잘 설치해 주어 즐겁게 휴가를 즐기고 가거든. 바다나무 농장을 맡겨놓길 참 잘했어.


사실 다녀간 지 한 달 조금 넘었지.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윗집에 이사 오는 사람이 멋진 집에 살고 싶다나. 이리저리저리 뜯어고친다는 인테리어를 하겠다고 해서 잠시 어. 머리 위에서 탕탕 망치로 두드리질 않나, 드릴로 드르륵드르륵 쑤시지를 않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이곳으로 피신을 온 거야. 병원 호텔 말고는 달리 갈 때도 없고. 그나마 이 농하는 주인들이 내 말을 고분고분 잘 들어 염치 불구하고 온 거야.


내가 엄마랑 둘이 오겠다는데 부득불 모시러 온다지 뭐야. 돌아갈 때 아빠가 데리러 오게 되면 차가 두 대가 된다나. 맞는 말이긴 하지만 살짝 미안했거든. 실은 그보다는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어. 그건 내가 얌전하지 못해서 운전하는 엄마를 괴롭힐까 봐 걱정이 된 모앙이야. 내가 기분 나쁠까 봐 그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어찌 되었든 난 기분 좋았어. 기름값도 비싸고 거리가 좀 멀어서 미안하긴 했지만. 내가 점검 온다니까 준비할 것들이 많았는지 야근을 조금 한 모양이더라고. 놀이터 준비로. 얼마나 피곤하겠어? 나야 뭐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지만. 덕분에 편안하게 와서 맛난 것도 얻어먹었지.


농원에서 바쁘게 일처리도 하고 장거리 차를 타고 왔더니 좀 졸리네. 난 시원해야 잠을 잘 자는데. 그러고 보니 안주인이 쿨매트를 내 침대에 씌워 놓았더군. 난번에는 없던 건데 역시 센스장이야. 내가 누우면 안주인이 들려주는 잔잔한 동화이야기가 날 꿈의 나라로 인도해 주지. 가끔 토닥거려며 안아주면 아주 포근해. 안주인이 애들을 많이 키워봐서 그런지 잠재우는 명수야. 무리 안 자려고 발버둥 쳐도 어느새 내가 최면에 걸려들더라고. 가만히 보면 사람마다 재주가 다 어. 약간 까칠해 보여도 옆에 두면 도움 될 때가 많아. 내가 실수해도 절대로 혼내는 법도 없거든. 마음이 바다야. 아. 그래서 이 집 농장이름이 바다나무나. 바다 같은 아내와 나무 같은 남편이 살고 있다나 봐. 참 이름도 잘 지었어!


한숨 자고 더니 깜깜한 밤이 되었네. 난 무서워 죽겠는데 밤하늘의 별을 보러 가자고 하네. 사실 난 좀 귀찮았거든. 나갔다 들어오면 또 씻어야 해서. 유아차에 앉아 하늘을 보니 별이 너무 많은 거야. 우리 집에서 아빠랑 백화점 갈 땐 하나도 안 보였는데. 바깥주인이 날 보고 별숫자를 세어보래. 래서 세었지. 열까지 또박또박. 내가 숫자를 세었는데 왜 주인들은 박수를 치고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어른들은 아무 때나 웃고 좋아해. 난 숫자가 바뀔까 봐 긴장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세었는데. 마실 나온 길에 큰할머니댁에 들러 안부인사를 드렸지. 지난번에는 업어 주셨는데 오늘은 내가 참았지. 허리가 더 꼬부라지신 것 같아서. 아무래도 내년에는 내가 업어드려야 할 것 같아.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는데 어디선가 반짝반짝하는 게 있었거든. 다가가보니 사라지고 없더라고. 바깥주인 말에 의하면 반딧불이라네. 꽁무니에서 불을 밝히는. 조금 있으면 아주 많이 나오는데 지금은 몇 마리 없대. 아직 여기 놀러 오고 싶지 않은가 봐. 다음엔 잡아서 곤충채집통에 넣어야겠어. 어린이집 가서 친구들 보여주고 싶니까. 우리가 지나가니까 네에 있는 멍멍개가 막 짖어. 남의 물건 손도 안 됐는데. 무서워서 혼났어. CCTV도 안 보나 봐. 암튼 기분 나빴어.


그나저나 내일 오후부터는 태풍이 온다는데 어떡하지? 아직 물놀이도 안 했는데. 오전에라도 할 건 하고 가야지. 물고기 한 마리라도 잡고 가야 하는데. 가고 싶은 계곡이 있긴 한데 날씨가 별로 안 좋네. 내가 양보해야지 어쩌겠어. 오늘은 수영장을 새로 만들어 놓았다고 하니 그곳에서 놀다 가려고. , 비가 조금씩 내리려고 하네. 다행이야. 나도 이제 그만 놀려고 했어. 아무도 안 놀아줘서 조금 심심했거든.


주인들이 무척 바쁜가 봐. 나하고 안 놀아주고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 태풍에 날아가지 않도록 하우스도. 천막도 단단히 동여매고 있는 걸 보면 태풍이라는 녀석이 엄청 짓궂고 심술꾸러기인가 봐. 괜찮을 거야. 나도 슬슬 아파트로 갈 준비를 해야겠네. 아쉽지만 어쩌겠어. 꽃들에게 인사라도 하고 가야지. 다음에 올 때는 더 키도 크고 멋진 얼굴로 온다고. 얘들아 안녕~, 담에 또 만나! 준이 일기 끝.


* 준이는 세 살 된 저의 손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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