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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칼리닌그라드 Oct 13. 2024

시든 꽃

화무십일홍



  집에 들어오자 온 방안을 뒤흔드는 향기가 코를 찌른다. 어디서 이런 향이 나는지. 테이블 위 시들어 내일이면 저물 것 같은 꽃 한 송이가 있다.


  꽃은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전부를 다해 향기를 내뿜는다.



  꽃은 왜 지기 전에 항상 향이 짙어질까.


  나 어릴 적 살던 동네엔 뒷산에 빽빽하게 들어선 아카시아 나무들이 있었다. 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갈 때면 늘 짙어지는 아카시아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시들기 전인 아카시아꽃들이 바람에 마치 종처럼 흔들릴 때 온 동네 문 앞까지 아카시아 냄새가 진동했다.

  잠들 때면 항상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들어오는 꽃향기를 킁킁대느라 잠 못 들던 기억이 난다.


  화무십일홍. 꽃의 붉음이 채 열흘을 가지 못한다. 그 어떤 아름다움도 영원하지 못하더라. 그런데 그 향기는 더 짙어져만 가 꽃이 진 자리 향기만 남겨두더라.




  꽃은 생과 사를 담고 있다. 꽃은 피고 진다. 달이 저물 때 새벽이 밝는다. 분명한 마지막을 알지만 우리는 꽃을 산다. 반드시 저물 것이지만 꽃을 선물한다. 꽃은 존재에 모순을 담고 있다. 이토록 분명히 버려질 것에 우리는 마음을 담는다.


  이는 꽃이 우리를 닮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역설적이고 모순 투성이인 이 작은 미물에 나의 삶을 투영하지 않았을까. 저무는 것을 우리는 안고 살아가야 한다.


  유한하기에 소중하다. 저물 것이기에 아름답다. 천일을 아름다운 꽃보다 열흘 붉을 꽃에 나는 내 마음을 주련다.



  그대 삶에 꽃이 피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 혼자 울음을 삼켰던가. 그 모든 시간을 지나온 여정에 끝에서 저물어야 한다는 것은 결국 비극으로 끝날 옛이야기였나.


  하지만 우린 꽃의 저묾을 선물하지 않는다. 뿌리를 내리려 더 멀리 손을 뻗고, 바람에 흔들리고, 햇살 아래 익어가며 움튼 단 한 번의 순간을, 지나온 그 시간을 선물한다.

  꽃을 피우려 지나온 당신의 모든 순간, 그 모든 시간에 당신은 여전히 꽃이었다.




  저물 것이기에 아름답다. 향기를 남기고 사라질 아름다움이기에 웃음 지을 수 있다. 흩날리는 벚꽃잎이 꽃길을 만들 때의 화려한 낙화는 비극적이고도 찬란한 봄의 끝을 이야기해준다.


  이 모든 모순을 받아들이고 담담히 저물 용기를 가질 때 향은 더 짙어질 것이다. 우리의 꽃은 더 화려하게 빛나리라.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낙화(落花) - 이형기










좋아하는 노래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정밀아 -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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