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Aug 30. 2023

2023년 08월 30일

좋기만 한 사람

오롯하게 좋기만 한 은둘기에게.


은둘기야, 빗방울들이 사이좋게 떼지어 다니는 좋은 아침이야! 처서 매직 어디 갔냐고 어제까지도 반팔을 입고 덥다고 그랬는데, 신기하다. 눈을 뜨기도 전부터 귓가에 들리는 빗소리가 오늘은 어쩐지 소란한 여름이 아니라 다정한 가을비처럼 느껴지는 아침이야. 은둘기 생일이라서 다정보스를 닮아 빗방울도 이렇게나 다정한 건가! 눈 뜨자 마자 너에게 생일 축하를 전해야지 싶었는데, 어젯밤에 더듬거리던 편지를 모두 지우고 이렇게 다시 적어. 의도치 않게 생일 축하가 늦어지겠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걸 너한테 주고 싶지 않아. 시간이 걸려도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귀하고 귀한 것만 소중하게 모셔 전하고 싶어.


너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눈물이 날 때,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혼자 집으로 돌아올 때, 찰나를 모아 영원을 만드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 나는 곧잘 마음이 구불구불해졌어. 구불해진 마음을 다리지도 그렇다고 구기지도 못해 허둥대던 날들. 너무 좋다가도 너무 아쉬울 다음 때문에 모두를 다 주지 못하고 여분을 남기던 날들. 그런 날에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몇 번이고 지고, 또 나도 모르게 의기소침해졌던 것 같아. 서늘해진 마음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 가만 마음을 가누는 게 유일하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 같아. 뜨문뜨문 나타나는 그저 남김없이 좋기만 한 날에는 어찌나 반갑던지. 얼마만큼 멀어도 좋으니 버선발로 저 멀리까지 달려나가 등에 엎어 부둥부둥 아껴주고 싶었어. "좋기만 한 기분". 그리고 나한테 은메이는 오롯하게 “좋기만 한” 사람.


 작년에 <나의 해방일지>를 봤는데, 보게 된 계기가 드라마 5화에서 여주인공 염미정님 내레이션이었어. "좋기만 한 사람"이 없다고, 좋다고 말하려고 하면 하나씩 꼭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고. 인스타그램에 돌아다니던 그 짤을 볼 때에도 단박에 좋기만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다정보스 은둘기였던 건 안 비밀><) 기쁘다가도, 상대방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에 나도 이랬다 저랬다 하게 되는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아 석연찮았던 게 떠올랐어. 물론 그때도 석연찮은 마음보다는 말 그대로 그저 "좋기만 한" 사람이 있어 고맙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


생각해보니까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내가 좋아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 불편한 구석이 있어요.
실망스러웠던 것도 있고, 미웠던 것도 있고, 질투하는 것도 있고, 조금씩 다 앙금이 있어요.
사람들하고 수더분하게 다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실제론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혹시 그게 내가 점점 조용히 지쳐가는 이유가 아닐까.
늘 혼자라는 느낌이 시달리고 버려진 느낌에 시달리는 이유 아닐까.

​한번 만들어보려구요. 그런 사람.

상대방이 이랬다 저랬하는 거에 나도 이랬다 저랬다하지 않고, 그냥 쭉 좋아해보려구요
방향 없이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을까.
이젠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요.

_나의 해방 일지 5화


은둘기를 떠올리는 마음을 바닥에 쏟아놓고 왼쪽 손바닥으로 찬찬히 펼쳐 놓다 보면 깜짝 놀라는 거야. 그럴 거라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걸리는 게 하나도 없어서!  왼쪽에서 오른손으로 훑어도, 혹시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쓸어봐도 정말 한없이 매끄럽기만 해. 원래 그랬던 것처럼. 어떤 사람이 이렇게까지 좋아할 수 있게 태어날 수 있나 의문이 들 정도로 싶게 말이야!


나한테 다정보스 은둘기는 그런 사람. 광활한 하늘에 한땀 한땀 별 새기듯 사는 은메이 일상을 보면서 나는 항상 담뿍 좋은 의지를 얻어. 존재 자체가 나한테는 응원이고 의지야. 은둘기라는 숲지붕 아래 서면 아마 내리는 빗줄기도 축복 같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이라는 뜻에 ”다한“, ‘집안으로 가득 든 햇빛’이라는 뜻에 “든해”, ‘작은 틈을 통하여 잠시 비치는 햇볕’ 또는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을 뜻하는 “볕뉘’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도 단박에 은둘기가 떠올랐어. 아마 내가 새로 알게 되는 모든, 처음 딱 뜨는 처음 밥 한 술 같은 뜨끈한 것들에는 은메이가 서려 있을 거야. 은둘기를 알게 된 순간부터 그것들을 가까이 하고 모으는 게 나의 기쁨이 된 건 두 말 하면 잔소리라구!


높은 산에 오를 준비를 할 때마다 장비를 챙기면서
운다고 고백한 산사람이 있었다 14번이나 최고봉에 오른 그가
무서워서 운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무서운 비밀을 안 것처럼
나도 무서웠다 산 오를 생각만 하면 너무 무서워서 싼 짐을
풀지만 금방 울면서 다시 짐을 싼다고 한다 언젠가 우리도
울면서 짐을 싼 적이 있다 그에게 사닝란 가야 할 곳이므로
울면서도 떠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무서워 울면서도
가야 할 길이 있는 것이다

능선에 서서
산봉우리 오래 올려다보았다
그곳이 너무 멀었다
-천양희 지음, 《너무 많은 입》, <최고봉>, 창비, 2005

_일을 잘하고 싶은 너에게, 이원흥


사람들한테는 각자 울면서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데, 나한테 은메이는 그런 사람이 정말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

심지어 울지도 않고 씩씩하게 나아가는 사람.

나아가는 와중에 다른 사람들을 살피고 손을 내어 함께 가는 사람.

나는 왜 울지 않을까, 이 터널을 의심하지 않을까 주춤할 때에도, 은메이는 “민희는 민희 자체 필터링으로 터널도 터널인 줄 모르고 지났을 거야”라고 단박에 나를 원래의 템포로 만드는 사람. 아마 내가 조금 더 자주 헤매여도 그 꼬부랑길에서도 최선을 발견하고 알뜰살뜰하게 마음을 얹어줄 수 있는 사람.


은메이가 대학교 시절 좋아하던 삼단은 이제 정말 바람이 아니라 실현이 된 것 같아.

단단, 단아, 단순.

은메이가 많은 시간을 할애할 새로 만드는 지금 그 장소도 분명 그럴 거야.

지치는 것보다 지겨운 게 무서울 때가 있는 새롭고만 싶은 나에게 언제라도 새마음을 주는 다정보스야, 생일 축하해!

너의 오늘은 딱 너처럼 새롭고 다정하고 그저 좋기만 하기를!!!!!


전에도 말했던가.

먼저 좋아할 수 있는 은메이가, 막막한 대지에 온기를 심는 다정 보스가, 넘어지는 것보다 더 자주 일어서는 은둘기가 너-무 좋다고!

사랑해! 너는 내가 고민없이 사랑한다고 외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내 확신의 사랑이야!! 러뷰!!







매거진의 이전글 2023년 05월 25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