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뚜기호롱불 Jun 07. 2022

1화. 과학고생의 하루 일과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함. 절대 못 함. 아니 그냥 못 해요.

과고생의 하루 일정은 다음과 같다.


06:00 기상

    (방송반은 기상 노래를 틀어야 해서 05:45 쯤 일어난다. 먼저 이불을 살며시 걷고 나가는 친구들의 기척을     느낄 때면 그 때도 참 짠하게, 하지만 멋있게 느껴졌다.)

06:30 주차장에 모여서 아침 체조

07:00 아침 식사

08:30 각 반 점호 (1,2학년은 총 4개의 반, 3학년은 1개의 반으로 구성)

09:00-13:00 수업

13:00-14:00 점심식사

14:00-18:00 수업

18:00-19:00 저녁식사

19:00-23:20 야간자율학습

24:00 점호

24:00-26:00 개인 공부 시간

    (원칙은 자정에 자야 했으나 암묵적으로 새벽 2시 정도까지는 작은 스탠드를 키고 개인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같은 방을 2-3명씩 같이 써서 2-3시를 넘기지 않는 것이 매너이기도 했다. 시험기간에는 반대)
    



우리 학교의 경우 기숙사 생활이라

월부터 금까지 이런 하루를 보내고

토요일은 12시까지 수업을 한 뒤 집으로 귀가 후 월요일 아침에 복귀했다.

하지만 주말에 돌아다니는 학원이 거의 비슷해서 어딜가나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사실 하루 일정이라야 일반고랑 비슷해서 과고 별 거 없네~ 싶지만

문제는 학교 진도였다.

2학년 조기졸업이 정석 졸업 루트인데다가

대부분 수시 전형으로 대학을 들어가는 곳이었기에


과고 입학 시험 범위가 공통과학/공통수학 이었고

1학년 1학기에 물화생지 I 와 수 I 을 완성,

1학년 2학기에 물화생지 II 와 수 II 및 미적을 완성,

2학년 1학기에 대학 물화생지와 수학을 완성 및 입시 준비

가 정규 진도였던 것이다.


당시 20% 정도 되는 친구들은 이미 입학 때부터 전 과목 II 까지 완성해서 왔었고,

나의 경우 수학은 그럭저럭 하겠는데 과학을 공통까지만 하고 들어가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수학 마저도 2학년 1학기 들어서는 진도 따라가기도 급급했던 것 같다.


이런 정규 수을 따라가려면

어쩔 수 없이 평일보다 주말을 더 바쁘게 다녀야 했다.

밥은 보통 차 안에서 대충 떼우거나 친구들끼리 사먹었고

토요일 저녁 10시에 귀가 -> 집에서 기절
->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학원 뺑뺑이 -> 2시까지 주말 수업 정리 -> 기절
(가끔 비행기 타고 학원 원정도 다님. 그 비행기 안에서도 아는 얼굴 ㅎㅇ)  
-> 아침 8시까지 학교 등교

가 반복이었다.


나름 과학고라고 빨간 넥타이가 특징인 교복도 있었다.
월요일과 토요일 등하교 때에는 입고 오는 게 원칙이었는데 주말동안 혼이 더 빠져서 온 덕에 지킨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만 안 지킨 것 같기도 하고...)


수요일 한 달에 한 번은 R&E (research and education) 이라고

대학 교수님들과의 컨택을 통해 프로젝트를 하나 완성시키고 논문과 유사한 형태의 프레젠테이션을 발표하는 는 수업도 있었다.

점심식사 시간부터 밖으로 나가서 6시 전후로 복귀하기만 하면 돼서

이 순간만큼은 freedom~~~~~ 을 외치며 친구들과 대학가를 열심히 돌아다녔었다.

(그러나 대학가 롯데리아를 가는 것이 최대의 일탈이었던 친구들ㅇㅅㅇ;)




이런 생활 속에서 뭐가 제일 힘들었냐고 물으면

엄청난 공부량도,

끊임없는 시험도,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학교 진도도,

시차적응 하는 애처럼 머리만 대면 잠이 드는데 그마저도 '엠씨스퀘어'를 쓰고 잠드는 생활도 아니었다.

소름 돋게도 힘들지가 않았다.


어딜가나 아는 얼굴이 있었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그런 일정을 대부분이 버텨내고 있었고

생각보다 여기서 받는 위로가 정말 컸다.

더군다나 밤 12시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을 지키고 있는 선생님들을 보면

뭣 모르던 그 시절에도 그 책임감에 부응해야겠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딱히 낙도 없었고 그냥 그런 생활을 하는 친구들 틈 속에 스며들어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다만, 그런 생활을 버티지 못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그 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다행히 너나 할 것 없이 지금은 모두 각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


직장인이 된 지금,

저 때보다 더 바쁘게... 치열하게 살고 있냐는 질문에

단언컨대 절대 X 라고 답하겠지만

힘들다힘들다 징징 바쁘다바쁘다 찡찡거리는 건

왜 때문에 지금이 훨씬 더 심한지 모르겠다.

(인테그랄도 까먹는 거 보면 세월에 잘 굴복하는 편인 듯) 

                                                                          

일찍 출근하신 선생님들의 차 뒤꽁무니를 보며 하던 아침 체조... 그 때도 이건 참 하기 싫었다. 거의 눈 감고 했던 듯 (*출처 베리타스알파DB)

                                                                                    


언젠가 한번쯤 치열하게 살아본 경험이
평생의 자산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보며,
Hoc quoque transibit



매거진의 이전글 Intro 과고 출신이 인테그랄을 까먹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