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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Apr 19. 2022

염승숙, 『그리고 남겨진 것들』

 블루(blue)의 시대 - 염승숙, 『그리고 남겨진 것들』독후감

  어느 순간부터 비가 오면 한없이 우울해졌다. 사람을 만나기도 싫었고 그 기분을 환기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끝없는 무기력과 삶이 있으니 살아가는 시간들. 그때 이 소설을 읽었다.  


 

염승숙그리고 남겨진 것들

블루(blue)의 시대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고독사도 증가하고 있다. 언론은 더 이상 고독사란 단어를 노년층에게만 쓰지 않는다. 이는 그만큼 사회 전 연령층에 사회와 단절된 사람의 수가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바뀐 사람들 상황에 맞추어 사회도 마땅히 바뀌어야 하나, 여전하다. 과거 신자유주의가 대두하던 때부터 지속되어 온 무한 경쟁 분위기는 이러한 개인들을 더욱 고독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염승숙의 「그리고 남겨진 것들」에서는 이러한 현대를 ‘블루의 시대’라고 표현한다. 모두가 푸르른, 우울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염승숙은 인간을 사물로 표현해 현대 사회 안 우울한 개인들을 이야기하고 독자들에게 고립된 존재에 대한 질의를 던진다.




  ‘나’는 자동차 부품 조립 공장에 근무하는 중년 남성으로 기계가 언젠가 자신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지 않을까 늘 불안함을 느낀다. 이러한 불안으로 비만, 우울증을 가지게 ‘나’는 아내의 권유로 치료를 위해 병원을 다닌다. 점차 상담을 통해 상태가 호전되던 중 아내는 우린 너무 다르다며 이별을 고하고 떠난다. 그렇게 홀로 남은 ‘나’는 우울증이 악화되어 고독사 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벽돌이 되어있었다.

  ‘나’는 벽돌이 되어 다른 벽돌들과 대화하고 그들에게 어째서 벽돌이 세상에 이렇게 많은 건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길을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그중에는 자신의 아내도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나’는 비로소 푸르른 벽돌에서 붉은 고벽돌이 된다.     

     



벽돌과 벽 


  외톨이가 되었군(중략

확실하진 않지만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한 이들만이 벽돌이 된다고 들었네.” -66p


  벽돌은 소설 안 가장 중심이 되는 사물이다. ‘나’의 오른쪽 벽돌인 ‘오른편’이는 외톨이인 사람들이 죽으면 벽돌이 된다고 알려준다. 벽돌은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물체이다. 이러한 사물을 외톨이로 배치했다는 것은 곧 우울함을 지닌 현대인들이 벽돌처럼 사회 어느 곳이든 존재함을 의미한다.


가만 보니 벽돌이란 건각각의 입장에서는 수평으로 놓인 것뿐이어서

서로를 바라보기가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57p


  벽돌은 대부분 쌓여 벽이 되며, ‘나’ 또한 벽에 붙어있다. ‘나’는 처음에 주위 다른 벽돌들 사이에 끼어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들에게 조언을 받으며 심리적으로 위로를 받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에서 우리는 사람들 간 관계의 양면성을 떠올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다 보면 다른 이의 존재는 나를 불편하게 하기도 하지만 때론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작가는 벽돌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지만 동시에 벽돌을 지지해주는 벽의 특성을 제시해 인간관계의 고통과 장점을 자연스럽게 내보였다.


  다른 이를 직시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은 주인공이 살아있을 때와 비교하면 더 잘 드러난다. 주인공은 생전 회사를 다닐 때, 자신의 자리가 기계로 대체될까 두려워했다. 벽돌이 되어서도 그의 처지는 마찬가지이다. 그 또한 누군가의 빈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온 벽돌이며 벽 앞의 보도블록이 갈아엎어지는 것을 보며 자신도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상황 안 ‘나’의 태도는 다르다. 앞의 경우 극심한 불안함에 우울증까지 겪었지만, 벽이 돼서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우울증을 이겨냈다. 똑같은 상황에도 그가 불안함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주위에 다른 벽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둘의 차이는 동질감에서 오는 위로를 생각하게 한다. 생전 아내가 그를 떠났던 이유는 아내는 ‘나’의 우울을 바라보았으나 ‘나’는 아내의 우울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나’가 그때 아내의 우울을 바라보며 함께했다면 아내는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우울하고 고독한 개인에게 또 다른 개인은 함께 있기만 해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유독한 사회


  세계적으로오늘날의 이 사회가 얼마나 유독(有毒)합니까안 그래요

“빙글 대며 웃는 의사 앞에서 나는 절망했다이 세계가 내게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그리고 이 사회가 나에게 행하는 가해(加害)의 정체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아차릴 수가 없다는 혼란만을 느꼈다.”-70p


  해나 독을 끼친다는 의미의 유독(遺毒)의 '유'는 본래 ‘남길 유’이다. 그러나 소설 안에서 의사가 ‘나’에게 하는 말에는 ‘있을 유’를 쓴다. 사회의 독함이 누군가가 남기고 간 것이 아니란 말이다. 사회의 독함은 누군가의 잘못도 아니다. 이러한 재난 같은 독함에서 사람들이 우울하고 고통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임을 정신과 의사는 ‘블루의 시대’ ‘우울증은 질병이 아니다’라는 말로 여러 번 강조한다.     


대체되지 않는  


  대체된다는 것대체되었다는 그 사실 자체로 맥이 탁 풀렸나 봐요… 

나 자신이 하나이고고유하며단일한 생물체이자 인격체다인간은 누구나 제각각 대체 불가능한 존재다하는 명제에 어느 순간 슬쩍 금이 가서 자꾸만 빗물이 새어들고축축해져 마르지 않고” -73p


  ‘나’는 단순 반복 노동을 하면서 자신이 사물화 되는 것 같다 느낀다. 동시에 회사가 기계를 들이는 행위에 자신이 대체될까 불안감을 느낀다. 현대 사회의 업무 중 대체 불가능한 일은 없다. 사람을 두고 자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자리를 두고 사람을 뽑아 그곳에 끼워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인간의 사물화는 자연히 따라오는 현상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한 불안을 공유하고 있다. 소설은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벽돌들을 통해 대체에 대한 새로운 사고의 계기를 제공한다.


  소설 안에서 찾을 수 있는 대체되지 않는 방법은 개인과 개인의 교류이다. 소설 안 벽돌은 교류를 통해 대체할 수 없는 대상이 된다. 


  ‘나’가 있는 벽의 벽돌들은 모두 똑같다. 선거철만 되면 부수어지지 않은 길의 벽돌도 파내어 새로운 벽돌을 끼워 넣는다. 벽돌은 사람일 때 보다 더 대체되기 쉬운 상황이며, ‘나’또한 ‘형님’이라는 벽돌 대신 그 자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벽돌들은 기억된다. 자신 옆에 있는 벽돌들에 의하여. 왼편은 그 형님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고 추억한다. 그리고 ‘나’ 또한 위 편이 부수어지게 되고 다른 새로운 벽돌이 들어오자 위 편을 생각한다. 위 편은 ‘나’에게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사람은 벽돌을 갈 때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 벽돌이나 새 벽돌이나 대체할 수 있는 똑같은 벽돌일 뿐이다. 하지만 그 벽 벽돌들은 알 것이다. 어느 벽돌이 사라지고 어느 벽돌이 새로 들어왔는지. 사람도 같다. 회사는 사람을 내보내고 새로 뽑을 때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 주변인들은 그 사람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남겨진 것들 


  외로운 이는 그리운 곳으로 돌아오게 돼 있는 걸까.” -77p


  소설의 제목 안 남겨진 것들은 두 종류가 존재한다. 누군가 그들을 두고 떠나 외톨이가 된 사람들, 그리고 외톨이인 사람이 죽고 남겨진 것들. 벽돌이 된 사람들은 모두 자신은 외톨이라 생각하며 죽었다. 그래서 그들은 죽은 후에도 남긴 것이 없다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모두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남겼다. 작중 ‘형님’ 벽돌을 부순 ‘형님’의 아들도 그렇고 과거 데이트하던 카페에 와 멍하니 추억하던 ‘나’의 아내도 그렇다. 위 문장은 그리워하는 장소 벽에 박힌 벽돌들에게만 통용되는 문장이 아니다.     



 

물론 언젠가는 닳고깨져나가겠지만

 그래도 어깨에 힘을 빼고단단히 쌓여 있지 않으면 안 돼.” -64p


  사람일 때는 대체 가능한 사람으로 묘사되다 모두가 똑같은 벽돌이 되어서 누군가에게 대체할 수 없는 이가 되는 전개는 읽는 이에게 아이러니함을 느끼게 한다. 외로운 사람이 죽어서 벽돌이 된다는 특이한 설정은 처음에는 사람을 당황하게 하고, 그다음에는 사람의 존재는 어디에서 오는가를 오래 골몰해 보게 한다. 특히 죽으면 끝이라는 일반론에 반하는 ‘죽어서도 존재란 건 참 위태로워’라는 부분은 존재에 대한 사람의 강한 욕망을 드러낸다. 벽돌들은 죽으면 또 다른 무언가가 되겠거니 짐작해도 벽돌로써의 삶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작가는 이러한 죽어서도 존재하고자 노력하는 벽돌을 통해 사람은 영원하지 않고 언제든 대체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함께하지 않아선 안 된다고 우리에게 조언한다.      




* 참고 문헌

-염승숙,『그리고 남겨진 것들』, 「그리고 남겨진 것들」, 문학동네, 2014

-권오헌. (2018). 고독의 역사사회학 -한국인의 고독, 그 구조변동과 감정 동학-. 한민족 문화연구, 64(0), 119-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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