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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훈 Aug 01. 2022

인생 2막 직장생활의 끝, 출구전략이 뭐야?

내게 맞는 재테크 방법 찾기

내게 맞는 재테크 방법 찾기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했다. 비록 내 돈은 아니지만, 언제든 필요하면 사용할 수 있는 돈 '1억'이 준비되었다.


돈만 있으면 뭐라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막상 직접 뭔가를 시도해 보려고 하자, 겁이 났다.


매스컴과 유튜브에서 갖가지 투자 방법으로 성공한 사람들을 봐 왔다. 때문에 그중에 뭐라도 하나 하면 될 것 같았다.


정작 좀 더 구체적으로 접근하자 불확실한 것 투성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핵심을 파악해서 리스크를 피해가야 할 텐데.. 그러기에는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뭔가 하려고 한발 나아가면 갈수록 머리가 아파졌다. 섣불리 시도하다 빚을 낸 돈을 다 날릴 수도 있다.


'그냥 무모한 헛짓거리 말고 하던 대로 살까...'


그러면 평생 일만 하다 죽어야 하는데, 일단 평생 일을 할 자신이 없다. 회사에선 언제 잘릴지 모르는데, 다른 일은 할 줄 아는 게 전혀 없다.


고민이 깊어졌다. 머릿속에서 전쟁이 일어난 것 같았다. 상반되는 생각이 엎치락뒤치락 돌림 노래처럼 반복되었다. 어떻게든 결론을 내리고 싶었지만, 끝없이 갈등하였다.




근로소득에서 고정 생계비를 제외하고 저축을 한다는 생각을 하면 앞날이 암울해진다. 지금보다 지출을 작정하고 줄일 생각을 해봤다. 1년에 1천만 원씩 모아도 10년 후에야 1억이다. 우리 집 사정에 극단적으로 아껴도 2천만 원. 10년에 2억이라..


그런 식으론 부유한 노후는 턱도 없다. 열심히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무언가 다른 방안이 필요하다.

무조건 투자를 해야 한다. 무엇에 투자를 할지 모르겠다. 몇 가지 투자처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분명 각각의 방법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나라고 못할 일 없지 않나.. 그렇지만 실패해서 전 재산을 날린 사례도 많다. 일단 공부가 필요하다.




결국 결론을 내렸다.

일단 공부부터 제대로 해보자.




처음은 경매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엔 경매 수익률의 매력에 유혹을 당했다. 시세보다 20% 이상 저렴한 물건, 심지어 반값인 매물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1개월 동안 동영상 강의 및 유튜브 사례를 죽어라 공부했다. 왠지 더는 공부할 게 없어 보였다. 하지만 실전으로 나서서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거기서 막혔다.

회사 다니는 직장인이 하기에는 시간이 녹녹하지 않았다.

특히나 내 입장에서는 몇 개월에 한 번 연차를 쓰는 것도 눈치가 보였으니, 엄두가 안 났다.


결정적으로 경매는 감정가 대비 많이 싸게 물건을 살 수 있기는 하지만, 좋은 물건을 싸게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미 경매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에 괜찮은 물건에는 사람이 몰렸다.


그리고 감정평가액보다 지나치게 싼 물건은 노출이 안돼서 경쟁률이 작은 것이 아니다. 그 문제 되는 이유가 있어서 사람들이 입찰하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기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처분 못할 골칫덩어리가 될 확률도 높았다.


경매는 초보자가 열심히 발 품을 팔아서 신중히 결정해도 낙찰만으로 수익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낙찰 후 수리하거나 리모델링을 통해 재 임대를 놓거나 재 매매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요리할지 계획이 있어야 했다.


나 같은 초보자에게는 시간을 들이는 것 대비 위험부담도 크고 많은 경험이 필요하였다.


결국 다음 기회로 미뤘다.


(그렇지만, 당신에겐 경매 공부를 추천한다. 이론과 절차, 실제 사례를 충분히 공부하면 크게 얻는 것이 있다. 실전까지 가보면 더 좋고, 그 직전까지 라도 푹 빠져서 공부하면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다. 당신의 투자에 대한 세계관을 새로 열어주는 역할로 충분히 매력적인 가치가 있다.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만을 기다리던 당신에게, 세상에는 온갖 돈 벌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코 앞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그 순간,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절박함. 투자에 대한 동기부여는 확실히 된다. )





이어서 주식을 공부했다.



정규 입문서부터 갖가지 기법까지 공부하였다. 나름의 방식으로 규칙성을 찾기 위해 몰두했다.


유투버들의 온갖 방법도 습득하여 적용 테스트를 해보았다. 제법 그럴듯한 기법이 많았다. 그렇지만 8개월을 공부하고 검증한 결과 답을 찾지 못했다.


사실 처음에는 인생을 바꿀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했다. 몇 가지 아이디어를 응용하면 반복적으로 수익을 낼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년만 하면, 복리의 마법으로 수천억 부자도 될 것 같았다. 장이 없는 토요일, 일요일에 그럴듯한 방법을 찾아내면 월요일에 실전으로 시도해 보기 전까지 상상의 나래를 폈다. 실제 얻은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상상만으로 행복했다.


월요일 아침 뭔지 모를 설렘에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장이 시작하는 9시까지 심장이 두근거렸다. 거래를 시작해서 주문 버튼을 누를 때는 손이 심하게 떨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헛 꿈이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참 동안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다른 일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만할 만도 했는데, 주식을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나면 기운이 빠졌다. 내 인생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아니라면 뭐가 남지 싶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다시 주식 대박의 희망 회로가 가동되었다.


그런 일을 수개월 동안 수십 번을 반복했다.


단타 위주의 스킬과 노하우는 5번 수익을 내도 1~2번의 손실만으로도 수익률이 망가졌다. 한두 번의 폭락만으로 정신적인 밸런스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장기 투자는 기간을 알 수 없는 깜깜이 방식이라서 돈이 묶여 버리기 때문에 시드머니가 적은 경우에는 매력이 없었다.


나중에 10억 이상 투자할 자금이 있다면 미국 주식의 ETF 상품에 넣어놓고 수익 난 금액을 월급처럼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렇지만 노동소득을 대체할 만큼 수익을 높이려면 시드머니가 많이 필요했기에 지금은 충분한 자금이 없었다.


주식은 확실한 방법으로 여유 자산을 만들기 전까진 절대 하지 말자. 그렇게 다음으로 미뤘다.





최고의 선택,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



아무래도 부동산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차에 공인중개사 시험 공고가 뜬 것을 보았다. 시험까지 2달밖에 남지 않았지만 도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오랜만에 해보는 공부라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더욱이 누군가에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비밀리에 공부하였는데 교재도 없이 인터넷 정보와 유튜브 만으로 공부하려니 쉽지가 않았다.


심지어 같은 침대를 쓰는 아내에게까지 비밀로 하려다 보니 공부할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평일에는 모두 퇴근한 늦은 시간에 공부를 하였고, 주말에 회사에 출근하여 공부를 하였다. 아내는 회사가 너무 바빠 사람을 혹사시킨다고 투덜대었다.



시험은 생각보다 많이 어려웠다. 다행히 1, 2차를 동차로 치러 합격하였다.


합격증이 등기로 날아온 날, 큰 아들 녀석이 우편물을 보고는 지 엄마에게 건네며 이게 뭐냐 고 했다. 아내는 합격증을 들어보고는 눈이 휘둥그래 해져서 나를 다급히 불러내었다.


'당신 대단하다.' 연방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끊임없이 어떻게 한 거냐고 물었다. 신기해하는 아내와 아이들 덕에 기분이 좋았다.


자본소득의 시기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를 어찌해야 할지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전처럼 걱정만 하고 막연한 고민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확실했다. 인생 제3막을 시작하는데 확실하게 도움이 되고, 자신감을 남겨줄 실체가 있는 것이 필요했다.


사실 공인중개사 공부는 내게 보이지 않게 많은 것을 남겨주었다. 부동산 전문 지식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부동산 거래의 실상이 내 앞에 현실로 더 다가온 듯했다. 평소에도 부동산에 관심이 많았음에도 미처 알지 못한 것들도 많았고 잘 못 알고 있던 것도 많았다.


공인중개사 공부를 한 덕에 부동산 투자에 관련된 세세한 많은 것들을 배웠다.





아파트에 얼마 안 되는 전 재산을 투자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한 뒤 눈에 띄게 자신감이 붙었다.

본격적인 투자를 위해 아파트를 추가로 매입하기로 했다.


전에도 아파트는 많이 사보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지금까진 실거주가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투자 실패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 이번엔 실거주 보단 본격적인 투자 목적이라서 걱정도 좀 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처럼 관망하듯 경제활동을 하면, 안전할진 모르겠지만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부동산으로 손해를 보아봤자 인생이 망가질 정도는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손해를 보지만 않으면 된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니 정확히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월급으로 대출이자를 감당할 수 있다면 오를 때까지 장기로 보유할 생각도 했다.


당시 평택 부동산은 이상할 정도로 하락하고 있었다. 미분양이 속출하고 심지어는 2~4천만 원 마이너스 피가 붙는 등 심하게 침체되었다. 나는 공급물량이 많다지만 지나치게 저 평가받는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들 평택은 앞으로 10년 간은 공급폭탄이 계속되어서 절대 오를 리 없다고들 하였다.


평택에 집이 있는 회사 동료들도 모두들 곡소리를 냈다. 내게 절대 평택엔 투자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아파트 짓는 원가가 있는데, 언제까지고 떨어질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비밀로 했다. 모든 사람들이 내뿜는 냉소주의를 극복할 자신이 없었다.


겨우 용기 내어 투자하려 결정한 내 입장에서는 반대자들의 불길한 예언조차 넘기 힘든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몇 개월간 계속 주요 아파트들 매물 시세를 모니터링했다. 아내와 함께 주말마다 부동산에 들러 저가 매물을 알아보면서 시장 분위기와 시세를 묻곤 했다.


그즈음 조금씩 회복되는 조짐이 보였다. 딱하고 느껴졌다. 계속해서 관심을 두고 있다 보니 '바로 지금'이 상승이 시작되는 타이밍이라는 감이 확실히 왔다.


‘이 때다.’ 확신했다.



과감한 투자가 필요했다.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붙은 아파트 분양권을 알아보았다. 계속 알아보다 보니 마이너스 프리미엄은 신기한 물건이었다. 앞의 소유자가 자기 돈으로 2천만 원을 내게 얹어주며 사가라는 상황이었다. 적은 돈으로도 아파트 분양권을 살 수 있었다.


돈이 남았다. 한 채를 더하고 싶었다. 빌라에 사시던 장모님께 말씀드려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 설득하여, 장모님 명의로 분양권을 한 채 더 샀다.


아파트가 세 채인 상태로 시간을 보내며 오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분명 저평가 상태라고 확신이 있었는데, 점차 확실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8개월 뒤 입주 시점에는 1억 이상이 올라 있었다. 그리고 몇 개월 지나자 갑자기 행운이 겹쳐 왔다. COVID19로 저금리 정책이 가속화되자, 시중에 풀린 자금의 유동성이 최고조에 달하기 시작했다.


부동산에 아마추어인 정부가 이곳저곳 옮겨 다니면서 짜깁기하듯 규제를 강화하며 눌러대자, 제대로 펌프질을 탄 전국 집값에 상승 붐이 일었다. 불 난 집 부채질은 비할 데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역대 최악의 무능한 아마추어 정부를 만났지만, 내겐 큰 행운이었다.


결론적으로 다음 해에 아파트 가격이 전례 없이 상승하였다. 수원에 살고 있던 기존주택은 2억 정도가 올랐고, 두 번째 평택 아파트는 4억이 마지막으로 투자한 아파트는 3.5억 정도가 내 매입 당시보다 상승하였다. 순식간에 보유 자산이 5배로 불어 났다. 새로운 눈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자본은 시작일 뿐, 소득을 낳도록 바꿔야 한다.



목표했던 대로 준비가 되어 간다는 생각에 고무적이었다. 근로 20년이 되기 전에 인생 제3막인 자본소득의 시기로 넘어가는 것 말이다.


하지만 나에겐 그게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내 계획의 끝엔 자본소득이 있었다.

자본은 시작일 뿐이다. 자본으로부터의 끊임없이 나오는 소득이 내 목표였다.


소위 파이프라인을 만들어 잠자는 동안에도, 끊기지 않고 수입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심지어 내가 사라져도 가족들이 생계 걱정 없이 평생 먹고살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놔야 한다.


그즈음부터 건물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다가구주택, 오피스텔, 레지던스 고시텔, 상가빌딩 등 목 좋은 자리 위주로 알아보며 건물주의 꿈을 키웠다. 바야흐로 제3막 자본소득으로 넘어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는 생각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아무리 집 값 시세가 올라도 팔아야 내 돈이다. 팔기 전까진 아무 의미 없는 숫자로만 존재하는 상상 속의 돈이다. 세금을 고려해 아직 1~2년은 기다려야 했다.


그때가 되면 아파트도 모두 처분하고, 그 돈으로 매월 임대료가 나오는 작은 건물을 사고 싶었다. 매물로 나온 건물 100개를 돌아봐서 라도, 제대로 된 알짜배기 건물을 골라야 한다. 그런 거 하나 있으면, '평생 굶어 죽을 걱정은 없겠다' 싶었다.


'이대로 2년만 버티면 안정권이다. 지난 20년 세월도 문제없이 잘 버텨왔잖아.'


지금까지 처럼, 정신줄만 놓지 않으면 된다.

2년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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