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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훈 Aug 04. 2022

여보, 회사 당장 그만둬!

대한민국 아빠의 청춘

대한민국 아빠의 청춘


집에 어떻게 왔는지 모르게 도착해 있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주차까지 마친 상태였다. 차의 시동을 껐지만, 도저히 그대로 집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모든 움직임을 멈춘 채 생각에 잠겼다.


아내에게 이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창피하기도 하였지만, 가족들이 심각한 걱정에 빠지게 되는 게 더 싫었다.


아내는 뭐라고 할까?

당장의 위태로운 생계 때문이라도 불안해할 것이다.




생각해보니 내게 회사는 온종일 집중해서 쌓아 올린 공들인 성냥 탑과 같았다. 한층 한층 삐뚤어지지 않도록 식음을 전폐한 채 지나치게 몰두하였다. 그 때문에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성냥탑에 대한 내 진심을 알고 있다.


정말 멋지게 지붕을 완성해 가는데,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무너뜨렸다. 처음부터 모든 걸 지켜봐 오며 손뼉 치던 식구들이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하고도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라고 말하면, 더 민망해하고 애틋해할 것 같았다.


승승장구하던 직장에서의 내 모습은 나 자신뿐 아니라, 아내나 아이들 심지어 처가와 친가 식구들에게까지도 자부심이었다. 그들에 직장에서 무능력으로 낙인찍혀 도태되었다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언제까지고 자랑스러운 남편, 아빠, 자식, 사위로 남고 싶었다.


이제 와서 직장에서 좌천당한 것 따위는 별 것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대수롭지 않은 척 하기에는 그동안 너무 진심이었다. 그들 모두 잘 알고 있다.


예전부터 아빠들은 왜 회사에서 잘리고도 식구들에게 말을 못 했을까? 이제야 제대로 알 거 같다. 갈 곳도 없으면서 하루 종일 밖을 서성이다 퇴근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가는지..


왜 날 버린 회사를 제대로 원망도 못하고, 여전히 우리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고마운 곳인 척 연기를 해야 했는지 말이다.


배신의 충격과 분노를 가족들에게 위로를 받으면 안 되는 걸까? 가족들이 받을 충격과 무능한 가장으로서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먼저인 건가?




생각에 빠진 채 삼십 분을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왜 이리 오래 걸리냐?"며 아내에게 전화가 와서야 정신을 차렸다. 황급히 집으로 올라갔다.




"여보, 당장 회사 그만둬!"



아파트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처제가 왔는지 시끌벅적 하다.


가족들에게 간단히 억지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나눈 채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조용히 따라 들어왔다. 굳어있는 내 표정을 보고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나는 순간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망설였다.


별일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재차 아내가 묻자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간단히 말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잃은 듯 침울하였으나, 아내의 반응은 의외였다.



"여보, 당장 회사 그만둬!"


아내는 내가 지난 20년간 너무나 열심히 일하였고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만큼 했으면 충분하다고 말하였다. 산입에 거미줄 안친다면서 걱정 말라고 했다.


회사에는 당장 그만두겠다고 말하라고 하였다.

아내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 큰 위안이 되었다.


그 날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잠이 도저히 오지 않았다.


긴 세월 내 청춘을 모두 바쳐 내 가정과 나 자신을 포기하다시피 일하였고 누구보다도 성과와 실적이 좋았었다. 내가 이런 꼴을 당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


과거에 회사에서 좋았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뒤로 날 비웃으며 비아냥 거리던 그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가 없다. 계속해서 떠올랐다.


억울하고 원통하였다.

너무 황당하고 모욕적이었다.


밤새 사라지지 않는 비웃음 가득한 그들의 얼굴.

괘씸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자존심이 너무 상해 정말 당장 그만두겠다고 하고 싶었다.


“니들끼리 잘 살아봐라”라고 외치며, 상사 앞에 사표를 던지고 싶었다.





굴욕 따윈 상관없어..



하지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걱정이 몰려왔다. 갑자기 그만둬서 다음 달부터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보니 참담하였다.


사실 매달 가계부를 관리하면서, 단돈 십만 원을 아껴 보려 해도 잘되지 않았다. 그 많은 월급은 이미 지출처가 정해져 있었다. 고정비로 나가는 것으로 500만 원이 넘는 돈이 순식간에 사라지기 일수였다.


연봉 8천만 원이 넘는 집에서 어떻게 지출이 수입보다 더 클 수가 있냐.. 아껴 써야 한다고 했다가 아내하고 자주 다투었던 생각도 났다. 도저히 안될 일이었다.


당장 월급이 들어오지 않으면 생계가 막막했다.

전에도 여러 차례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쌓이면 사표를 내고 회사를 관둘까 생각해 보았다.


만일 모욕적인 일을 당하면 언제든 큰소리치며 관둘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정말 막연한 생각이었다. 현실은 그보다 훨씬 냉엄하였다. 당장 먹고살 것을 걱정해야 했다. 등골이 오싹하고 정신이 몽롱하였다.


밤을 새우는 고뇌 속에 새벽녘이 되어서야 직속 상사에게 다시 매달려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러져 부서져 버릴지언정, 그에게만은 굽히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한참을 생각해보니 그건 그냥 내 자존심일 뿐이었다. 그 딴 게 처자식보다 중요하진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늦었다는 생각도 했지만, 오늘이 지나면 아예 더 늦어버릴 것만 같았다.

가족의 생계가 걸렸다 생각하니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잡아보고 싶었다.


장문의 메시지를 썼다. 긴 고민 끝이라 그런지 지극히 감성적이었고 간절함이 묻어나 있었다.


단어 하나 조사하나 토씨 하나수십 번을 수정해서 다 써놓고 보니 전송 버튼을 누르는 것이 망설여졌다.


삼십 분 동안 손가락을 전송 버튼 위에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망설이다 눈을 지그시 감고 버튼을 눌렀다.


눈을 감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한참 만에 답이 왔다. 지금 필드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고 했다.

칼 맞은 누군가는 생사를 오가는 공포와 고통으로 범벅이 된 그 시간, 찔러 넣은 사람은 골프장에서 한가로이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선배로서 조치하기에는 착잡한 마음은 들지만…… 휴가 동안 생각 좀 해보고 나중에 얘기합시다’고 했다. 존댓말이었다. 형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내가 쓴 메시지를 보았다.

너무 굴욕적인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의 머리를 때리며 바보 같은..이라고 자신에게 욕을 했다. 괜한 짓을 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휴가 중에 짐을 챙기러 회사에 갔을 때, 만난 직속 상사는 전혀 아무렇지 않은 상태였다. 나의 일은 잊고 있었던 사람같이 보였다. 내가 다시 기회를 주면 열심히 해보겠다는 취지로 말하자, 이미 늦었다고 했다. 인사 공고를 다시 낼 수 없으니 가서 잘 버텨 보라고 했다.


"거기 가서 나중에 센터장 하면 되잖아"


불가능한 얘기다. 센터장은 그룹 연구소를 총괄하는 사장 자리다. 나는 부하직원 한 명 없는 말단직으로 발령이 났다. 그의 비아냥에 자존심이 무너졌다.


필요한 짐만 간단히 싸기로 생각하고 정리를 하였다. 그간 받았던 상장과 상패, 포상 기념사진들이 생각보다도 더 많았다. 그 순간들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하였다. 그런 것들.. 아무 의미가 없었다. 모두 버렸다. 노트북만 챙겨서 집으로 왔다.


20년을 일한 흔적이 이것밖에 없다니.. 허무하였다.



사실 사회 초년생부터 목표로 하였던 자본가의 꿈은 앞 선 부동산 투자로 그 발판을 마련해 놓았다고 생각해왔다. 퇴직하는 선배들의 모습이나 은퇴자의 사회문제를 이슈로 다룬 영상들을 볼 때면, 나만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토록 많이 보아온 비참한 직장생활의 말로가 내게 찾아온다 해도 우스운 꼴은 당하지 않겠다고 생각해 왔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아무런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막상 당장 사표를 쓰려니 비굴해졌다.


20년이 지나는 내년 초부터는 인생 제3막인 자본소득의 시기로 넘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파트의 양도소득세 비과세를 위해서 내년 10월까지는 집을 팔지 못해 자금이 묶여 있었다.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없었다. 그러니, 당장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집에 있는 동안에 온통 며칠 사이 나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생각하느라 넋이 나가 있었다. 객관적으로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생각해 보려 했지만, 그저 경쟁에서 밀려나 도태된 패배자로만 생각되었다.





심각한 트라우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9일간의 휴가가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일주일간 거의 잠을 자지 못하였고, 식사도 거의 할 수가 없었다. 속이 답답하여 도대체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 짧은 기간에 몸무게가 10kg가 빠졌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뼈아픈 배신의 충격, 순식간에 폐인이 되고 있었다.



심각함을 인지한 아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 보자고 하였다.


평소 같으면 무시했을 말이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도 너무 고통스러웠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제발.. 고통이 멈추길 바랐다. 이런 악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누군가 도와줄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중2인 큰 아이가 코로나로 인해 사회관계가 단절되면서 찾아온 우울증 등의 이유로 치료를 받던 정신과 병원이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사춘기와 코로나 상황이 겹쳐 그런 것이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 정신과를 왜 가느냐, 그런 것에 의지하면 나약해지니 가지 말라고 했었다.


참 웃긴 일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무시하던 정신과 병원에 나 스스로 찾아가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의사에게 내 모든 상황을 설명하였다. 의사가 그런 경우가 꽤 있다고 이해해 주었다. 속이 좀 풀리는 듯했다. 약을 처방받아 왔다. 무슨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약을 먹자 뭔가 안정이 되는 듯하였다.





아내는 위기의 순간에 더욱 빛이 났다.



휴가 내내 우리 가족의 앞날에 대해 아내와 끊임없이 대화했다.


그녀는 상처받은 나를 안심시키고 보살피면서도, '어떻게 먹고살지?' 생계를 위한 일거리를 찾고 있었다.

아내가 자기가 일자리를 알아볼 테니 당신은 당분간 쉬면서 안정을 취하라는 말을 하였다.


결혼 15년 동안 집안일밖에 해 본 적 없는 당신이 무슨 일을 할 거냐고 하자, 공장에라도 나가겠다고 했다.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했다.


'아.. 내가 마누라를 공장에 내보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상태가 된 건가?'

정말.. 놀랐다. 현실의 황망함을 다시 느꼈다.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고 평생 잊을 수 없는 9일간의 악몽의 휴가를 보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간이 우리 부부에게는 평생 가장 중요한 경험과 결정을 내린 일주일이 되었다. 나는 평생을 걸쳐 어느 때보다도 패닉에 빠져 좌절하고 있었지만, 아내는 내가 본 어느 때보다도 영민하고 기민하였다.


아내는 내가 더 이상 의기소침해지지 않도록 자존감을 북돋는 말과 행동을 통해 정신을 놓지 않도록 애썼다. 그리고는 즉시즉시 판단해서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을 풀어내었다. 나를 이끌고 정신과 병원에 갔다. 부동산 사무실을 얻으러도 갔다. 건물을 매입하러 이곳저곳도 돌아다녔다. 끊임없이 할 일을 찾아내고,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우린 결혼 생활 15년 동안 줄곳 외벌이 가정이었다. 전적으로 내 직장 월급에 생계를 의지해왔다.

그렇지만, 단언한다. 15년간 내가 가정을 위해 했던 경제활동. 그것을 다 합한 것보다 아내의 이번 실행력이 더 가치가 크다고 본다.

(지금 아내가 보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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