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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훈 Aug 05. 2022

다시는 본사로 돌아올 생각 마라!

이번 판 역할놀이에 너무 깊이 몰입해 있는 게 아닐까?

끈 떨어진 신발


시간은 내 사정 따위와는 상관없이 여느 때처럼 정확하게 흘러갔다.

9일간의 하계휴가도 예외 없이 끝이 났다.

그렇게 마지막 일요일을 보내고 월요일이 왔다.


휴가 후 첫 출근을 했다.


먼저 근무해오던 사무실로 출근하였다. 후배들은 내게 인사만 할 뿐 다가와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다. 모두들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하나같이 착하고 내게 진심으로 잘하던 후배들이다. 내가 속상해할까 봐 말을 못 붙이는 줄 잘 알고 있다.


이미 지치고 편협해진 내 마음은 이상해졌다.


'내가 끈 떨어진 신발이라서, 저들도 날 피하는 것인가..'



잠시 잊을 뻔한 내 처지가 떠올랐다. 길거리에 버려진 짝 없는 신발 하나처럼 처량하단 생각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괘씸하단 생각이 들어, 한마디 엄포 놓는 우스게 소리라도 할까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입을 움찔했으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내겐 그럴 기운조차 없다는 걸 이내 깨달았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한 내가 한심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영혼이 저 멀리 나가 있는 듯했다.


'헉,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렇게 눈치를 보다 하루를 그냥 보냈다. 다음 날부터는 군포로 출근했다.

군포 R&D 센터에선 아침부터 몇몇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고 아는 체를 하였다.


“어이고, 박 부장님. 어쩌다가 이렇게 되셨어요.. 그래..”


반가운 건지, 아쉬운 건지 큰 소리로 말하는 통에 내 처지가 어떻게 된 건지 피부로 와닿았다. 부끄러웠다. 그들이 알던 나로, 아무렇지 않게 호탕한 대꾸를 하고 싶었다. 생각하고는 다르게 우물쭈물 어색한 대꾸를 했다. 순간 스스로가 더 창피해지고 있었다.




좌천과 자존심의 내적 갈등



사실, 도저히 발령 난 군포 미래사업연구소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나에겐 정말 맞지 않는 곳이었다. 그 해 초에 만들어진 그곳을 8개월간 유심히 지켜봐 왔다. 과거에 비슷하게 생겼다 사라졌던 숱한 선행연구 조직과 다르지 않았다. 실상은 뭔가 새로운 실적을 만들어낼 목적이 그곳엔 없었다. 그 저 신사업에 대한 활동과 명목,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거품 같은 조직으로 보였다. 한마디로 보여주기용 말이다.


각사 대표이사와 연구소장들에게는 미래 먹거리에 대한 화살받이로 그곳이 필요했을 뿐이다. 각 사 연구소가 받아야 할 신사업의 부담을 몰아서 떠안은 조직.


사실 대부분의 연구소장과 간부사원들은 조직 창설부터 그런 조직이 필요하다고는 말했다. 미래를 위한 투자니, 전담 인력이 그 일만 해야 뭔가 실적이 나온다든지의 입에 발린 소리를 했다. 영혼은 없었지만, 각자의 의견을 내라는 최고경영층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은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이었다.


정작 신설 후엔 제대로 출발도 하기 전부터 험담을 서슴없이 자행하기 시작했다. 제 각각 조직 구성과 운영의 문제점들에 대한 비난을 쏟아냈다. 그리곤 업무적으로도 자신들과 철저히 분리해 내려고 수작을 폈다.


협업해서 진행하던 일을 어느 쪽이든 한쪽에서 알아서 하자는 게 골자다. 함께 일이 엮이는 걸 회피했다. 책임도 엮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장들은 각사별 수십 명의 인력 중 한 두 명을 보내는 것만으로 책임을 다했다.


그리곤 철저히 분리한 채로, 숙제를 떠 안겼으면서도 '제대로 일을 하는 게 없다'는 말을 덧붙여 '불필요한 조직'이란 취급을 했다. 물론 뒤에 숨은 채 험담으로만 말이다.



내가 아이러니하게 생각한 것은 그 소속 조직원들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이었다. 그 들에겐 죄가 없다. 그 조직을 만들자고 한 사람 중에도, 그 조직을 실제 만들어낸 사람 중에도 직접 그곳으로 간 사람은 없다.


그 조직원 대부분이 원치 않은 급조된 발령의 피해자들이다.


연구소장들은 그 조직과 조직원에 대한 존재 자체를 비관적으로 생각했다. 한번 자리 잡은 그런 생각은 고정관념이 되어갔다. 집요하고도 냉정했다. 그곳엔 그룹 내 각사에서 파견 나온 8명의 조직원이 있었다. 절반 이상은 근속 년수가 25년이 넘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각사 연구소에서 팀장을 하였던 사람이다. 심지어 내년에 정년퇴직이신 분도 계셨다.


나는 그간 네댓 번 비슷한 조직이 만들어졌던 과정을 봐왔다. 실속 없이 멘땅에 헤딩만 하다 아무런 실효적 실적 없이 사라진 것을 명확히 알고 있다. 이번 조직도 정확히 그런 경우였고, 나는 그 근처에도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나처럼 20년 이상 장기근속한 사람이라면, 더욱 확실한 의미의 시그널이라고 생각했다.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왜 내가 사직서를 낼지언정 그곳엔 가지 않겠다고 했는지 알 것이다.


예전에 어떤 대기업 팀장을 하던 분이 해준 이야기가 있다. 그분도 갑자기 후배에게 자리를 주고 팀장 보직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자존심이 너무 상했지만 당장의 생계를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텨봤다. 정말 꿋꿋이 참으면,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겠지 싶었단다.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그 모욕감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참다 참다, 조기 은퇴를 해버렸다.

그가 결국 조기 은퇴해다는 사실 보다, 내가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따로 있다.

그 시간까지 고작 2주 걸렸단 것이다.


그 말을 들을 땐 그 심정을 제대로 몰랐다.

그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어느새 사내 최고참 부장이었다. 내 입장에서 임원 승진은커녕, 그쪽으로 발령이 난다는 것 자체가 다른 의미가 있다. 그날로 회사를 그만두라는 의미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내가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자존심이나 굴욕감뿐만은 아니었다. 그 별동부대 같은 조직의 업무 운영 방식이 나와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래 버틸 수 없으리라 확신했다.




20년 만에 다시 말단 직원 업무를..



통합연구소 사장의 독단적인 조직 운영은 내가 살아온 방식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그분의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다는 부분은 나도 어느 정도 인정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고 부하직원은 조수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이 눈에 거슬렸다. 대기업 출신답게 실적에만 안달하는 스타일이다.


유 불리에 따라서 어떤 사안에 대한 입장이 수시로 변한다잘 풀리는 일은 본인의 업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끌어 안지만, 잘 풀리지 않는 것에는 태도가 달라졌다. 실무자의 무능으로 밀어낸다. 알아서 처리하라며 손을 떼 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8명의 개개 조직원들과 다이렉트로 업무를 본다. 자신의 눈에 띄는 아이템들을 숙제로 뿌려 준다.

조직원을 문서 만드는 기계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특히 수평조직이란 명목 하에 5년 남짓 한 대리급 사원이나 20~30년이 넘은 부장급 사원이나 완벽히 똑같은 취급을 당한다.


모두 똑같은 일을 시키면서 오랜 경험과 기득권이 무의미하게 퇴색된다.

한마디로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각자도생 하는 조직이었다.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부분은 이런 일상을 상상할 때다.


그분이 메모한 종이를 받아 타이핑을 쳐 보고서를 작성한다. 어차피 문구 하나 토씨 하나 본인이 작성한다. 그냥 대필가이다.


또 그가 시키는 데로 복사나 하고 스캔해서 파일을 전달한다. 샘플에 태그를 붙여 업무 볼 수 있도록 갖다 드린다.


그런 일들이 20년 경력의 엔지니어로서 경륜을 발휘할 중요한 일은 아니다. 알다시피, 난 33명의 직속 팀원을 관리하던 총괄팀장이었다. 무엇보다도 같이 일할 부하직원 없이 말단 직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혼자서 무슨 신규 먹거리를 발굴해서 사업화를 한단 말인가? 이건 거의 말장난 수준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15년쯤 전으로 직장생활의 경력이 퇴보한 것 같아 암울하였다. 그렇다고 전처럼 실무에 골머리 썩을 만큼의 의욕도 동기부여도 전혀 없었다.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게 어떤 건지, 당하기 전까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냥 아예 그쪽으로는 출근하지 말고곧바로 사직서를 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아쉽게도 굳은 각오가 항상 현실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나도 현실의 냉혹함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다. 처자식의 생계를 두고, 자유로운 영혼 따위를 꿈꿀 수 있는 배포는 없었다.


시간이 지나 보니 군포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군포 출근 첫날에는 새로운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을 했다.

사람들은 그저 자기 일들에만 관심이 있을 뿐 남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다만, 통합연구소 사장만이 내게 뭔가를 기대하는 듯한 말을 하며 잘해보자고 했다.


포지션을 바꾼 후배와 업무 인수인계를 했다. 하나같이 내가 반대하던 프로젝트들이었다. 그것들을 내가 담당이 되어 추진해야 한다니 답답한 생각이 들었다.


오후가 되자 벌써 정신이 지쳐옴을 느꼈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이 부동산 계약 건이 있어서 연차를 써야 했다. 연차 보고를 하자, 사장이 노골적으로 못 마땅해했다.


파견 자 신분이기 때문에 본사의 조직에 연차 계를 올려야 했다.

사실상 후배와 포지션을 바꿨기 때문에 이젠 내가 후배에게 결재를 올려야 할 판이었다. 차마 그것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전처럼 임원에게 결재를 올리기 위해 그 직속 상사에게 전화를 했다.

통화를 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다. 그의 모든 말이 비아냥으로 들렸다. 박 부장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박 책임이라고 부르는 것조차도 못 마땅했다.


영원히 그와는 통화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본사로 돌아올 생각 마라!’



군포 미래사업연구소, 좌천지에서의 생활은 답답함에 연속이다.


연구소 사장은 끊임없이 신규 아이템을 찾아내어, 최고 경영층에 보고하면서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사업성이 불충분한 프로젝트를 자꾸 보고하였고, 한번 보고한 것은 아니다 싶은 상황이 되어서도 접을 생각을 안 했다. 질질 끌면서 실무자에게 불필요한 숙제를 계속 던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인수인계받은 프로젝트들에 대해 그만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연구소 사장은 부정적인 의견을 낸다고 불만을 표출하였다. 지극히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날이 갈수록 냉랭해져 갔다.


나는 프로젝트들을 다 정리하여 명확히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맺고 끊는 게 없이 일을 질질 끌고 가게끔 자꾸 여지를 남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일 처리가 늘어진다고 질책하였다.


대화를 시도하여 마무리를 하고 싶었으나 내 이야기를 잘 들으려 하지 않았다. 말을 채 하기도 전에 끊고 본인 말만 하고 돌아서기 일수였다.


정말 황당할 정도로 사람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세상에 저런 인성의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인간으로서 괘씸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사장과 대면해서 대화를 하는 게 짜증이 나고 싫었다.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져 있는 내 자존감을 위해서라도 가능하면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였다.


솔직히 처음에는 가장 친한 측근이 되어서 식사도 같이하고 편하게 이런저런 의견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함께 활발하고 신박하게 아이디어를 발굴해 내면, 혹시 나의 제2의 전성기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하였다.


역시나 그것은 나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지시일변도의 스타일이라서 대화를 하면 기초적인 기술적 훈계와 지적에 인간적으로 무시받는 느낌만 들었다.


대화 끝에는 항상 쓸데없는 조사와 보고 거리의 숙제만 남을 뿐이었다.




어느 날, 본사 대표이사가 다른 일로 군포를 방문하였다.


좌천 발령을 낸 날, 충격에 넋이 빠졌던 내게 말장난을 걸었던 이후로 처음이었다. 다음 약속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나를 불러내었다. 무려 3시간을 붙잡아 놓고 이야기를 했다. 계속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의 본심이 나오기 시작했다.


“경훈아, 네 연봉 8천 넘지? 네 연봉에 조금만 보태면 10년 된 전동화 경력자를 두 명은 더 뽑을 수 있겠다. 기존 제품만 쪼물딱 거리던 애들 잔뜩 데리고 무슨 일을 하겠냐? 너도 본사로는 못 돌아오는 줄 알고 있어. 어차피 너도 길어야 3년이야.


그의 말에는 듣는 이에 대한 배려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의사는 정확했다.

다시는 본사로 돌아올 생각은 하지 말아라. 나 있을 때까진, 네 자리는 없는 거다.


알아서 나가라는 소리로 들렸다.





전기차 시대의 폐족



폐족이란 말이 떠올랐다.


예전에 정치인들이 ‘친노는 폐족’이란 말을 해서 뉴스에 나오던 때가 있었다. 한때 세상을 호령할 듯 잘 나가던 조상이 대역죄를 지으면 그 업보 때문에 그 후손도 재기가 불가능한 삶을 살아야 했기에 ‘폐족’이라 불렀다고 한다.


내게는 새로운 시대를 방해하는, 구시대의 ‘엔진 기술 엔지니어’라는 굴레가 씌워졌다. 그들에겐 나 같은 희생양이 필요했다.

새 시대를 위한 제물이 꼭 필요하다. 내가 살아나면 제단이 엉망이 되고, 부정을 탄다.


당연히 재기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환골탈태하여 새롭게 태어나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이다. 화려했던 과거의 역사를 이제는 부정당했다. 한평생 모든 것을 바쳤던 나의 청춘을, 그들은 대체해야 할 구태와 악습의 전형처럼 여겼다.


나야 말로, 재기가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버린 전기차 시대의 ‘폐족’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 이번 판 역할놀이에 너무 깊이 몰입해 있는 게 아닐까?



그들은 직원을 헌신짝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모두들 전기차 폭풍으로 인해 업종 전환이 시급한 상황은 이해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설득하고 양해를 구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도 않았다. 굳이 꼭 그렇게 몰래 자기들끼리 쿵짝쿵짝 작당해서 통보해야만 했을까? 어쩔 수없었을 것이라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용서가 안 되는 것이 있다.


그들의 그 비아냥거리는 태도와 언행이다. 한솥밥을 먹던 사람을 뒤통수치는 짓을 꼭 해야만 했었을까?


나는 아직도 그때 등에 꽂힌 칼을 뽑지도 못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이를 ‘악’ 다문 채 억지웃음을 지며 듣고 있는 내 심정.


그들은 잘 모르는 듯했다. 너무도 쉽고 태연하게 아픈 말을 내뱉었다.



어차피 내가 보기엔 길어야 3년인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대표이사나 직속 상사도 모두 비자발적 은퇴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정확하게는 기도한다.)

길었던 직장생활의 끝에 와서, 스스로 아무렇지 않게 한 행동의 의미를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어떤 후배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게 될 자신 모습을 잘 모르는 듯하다.


“젊은 날 수 십 년 함께 고생한 보고 싶은 선배”가 아니라 “등에 칼 꽂은 야비했던 배신자”로 말이다.


우리 관계는 영원히 그 기억에서 멈출 것이다.


(그들이 마음대로 해도 다 받아들이는 졸개나 하수인처럼 나를 대했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다. 내가 칼 꽂은 그들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굴욕적인 장문의 메시지를 보낼 때.. 그때 날 굴복시켰다고 만족해했을 모습이 연상될 때면 치가 떨린다.)


“난 프로이기 때문에 감성적이 않게 냉정하게 결정하는 거야. 그게 나만의 숨겨진 장점이야. 나 만큼 냉정하게 인원 정리를 잘하는 사람 없을 걸?”


내게 자신들의 특별한 역량을 자랑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역시 그 안에서는 알 수가 없는 모양이다.


이 사람들, 이번 판 역할놀이에 너무 깊이 몰입해 있는 게 아닐까?



(계속..)



한편으로 아쉽다는 생각도 한다.

2년 전쯤으로 기억을 되돌려 본다. 그때 그냥 20년 절친 정도로, 그렇게 헤어졌다면 어땠을까?

한평생 직장생활 중 가장 가까웠던 선배와 존경했던 사수로 두 사람을 기억했을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얼굴을 보는 것도, 너무 아프다. 심지어 같은 건물에 와 있다는 소리만 들어도 짜증과 증오가 인다. 그들이 참석하는 회의엔 무단 불참을 한다. 그들이 있는 평택 본사 근처에는 아예 가지도 않는다. 그들이 참석하는 어떤 모임이나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그런 일 때문이라면, 당장 잘려도 좋다.


나는 여전히 내가 갖는 증오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 주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마 그들이 한평생 만났을 사람 중 자신에게 가장 큰 원한을 품게 된 자가 누군지 궁금하다면, 그 정답은 내가 알고 있다. 그 사람은 극명하게 나다.


내게도 그들이 그렇다. 내 인생에서 누구를 가장 증오했냐고 한다면, 그 또한 극명하기 때문이다.


남은 평생 내 삶 어디에서도 없는 존재이길 바란다. 깨끗이 지워져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이 되는 것도 좋겠다.

사실 나는 이 글들을 공들여 써내려 가는 것이 너무 괴롭다. 여전히 고통 속을 헤매는 느낌이다.


언젠간 이 글을 그들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긴 시간을 투자하여 집요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니까. 이 글을 보게 되면, 스스로 했던 행동에 대해서 잠깐이나마 다시 떠올려 볼 것이다. 그렇다고 반성을 기대하진 않는다. 나도 이미 그들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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