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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훈 Aug 06. 2022

묻지 마, 나도 권고사직은 처음이라..

회사에게 인간적이길 기대해서는 안됐었다.


순진한 전형의 마지막 '돌파 덫'



전형으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다.



그때 나는 좌천지에 온 지 3개월째 였다.

처음 발령 땐 모욕감에 당장 그만 둘 생각을 했지만, 아직도 갈팡질팡 앞날에 대한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날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만 버티자' 주술처럼 되뇌며 하루를 시작했다. 저녁 퇴근길에는 '내일은 또 어떻게든 되겠지' 되뇌며 머릿속을 의식적으로 비웠다. 내 삶이 하루살이 인생 같다는 생각도 했지만, 뾰족이 다른 방법도 없었다.


전형이 깜짝 놀랄만한 말을 했다.

며칠 전 회사의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당진공장의 제조부서로 이동하라는 것이다. 그도 어느 정도 예견했던 일이라고 했다.


대리 시절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처음엔 나보다 2년 정도 직급 선배였었다.

중간에 스스로 잠깐 퇴사를 했다 돌아오는 바람에, 진급 연차가 나보다 한 두해 늦었다. 하지만, 전형도 지금은 고참 부장이다. 어느새 52세를 넘어서면서 적지 않은 나이가 됐다.


전형의 상황도 나와 비슷하다.


전형은 해외 고객사를 대상으로 영업활동을 하는 업무를 해왔다. 전형의 업무는 과거에는 약간의 특수직으로 대우를 받았다. 회사는 해외진출을 항상 경영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해외업무를 볼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했다.


해외 비즈니스 문화나 영업스킬을 제대로 알아야 하고, 영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해야 했다. 대체할 인원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에 그의 자리는 튼튼해 보였다. 하지만, 근래 코로나19와 전기차 폭풍으로 대고객 업무가 거의 전무하다 싶게 줄어버렸다. 그 뒤론 장기간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전형이 그간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하자, 대화가 길어졌다. 통화 시간이 무려 2시간에 육박했다.




전형 얘기를 들어보니 회사의 구조조정 방향은 명확했다. 연봉이 높은 부장 급부터 정리해 나가려는 듯했다.


그 첫 번째째가 나였던 것이다. 나를 군포로 유배를 보낸 이후에도 한 명씩 다음 타깃을 정해 작업을 치고 있는 모양이다.


얼마 전 생관에 이 부장을 전주에 있는 자회사로 내려 보냈다. 이번엔 전형에게도 작업을 펼치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어딘가로 험지로 멀리 보내 버리곤 알아서 나가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계속 주는 방식이다. 보낼 곳은 널려 있다. 공장 및 자회사만 8군데가 있다. 그룹 전체로 보면 제조 부분만 30군데가 넘으니, 당사자에게 충격을 줄 곳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사직서에 사인할 만한 공포 유발용 충격 말이다.


전형은 의외로 담대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전형도 그간 실적이 없는 상태에서의 무언의 압박에 고통스러운 일상을 보냈다고 한다.


사실 그간 그의 고초도 이해는 되었다. 한순간 해외 관련된 모든 업무가 사라졌다.


고객사에서도 처음엔 잠시만 보류하자는 말로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세상이 바뀌었다. 전기차 폭풍으로 엔진 관련 신규 프로젝트는 모두 사라졌다. 그나마 남은 기 개발 모델의 양산마저도 코로나 사태로 현지 업체 우선 정책으로 바뀐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모든 해외 고객사의 부품 개발에서 우리는 배제되었다.



전형도 일이 없어 좌불안석인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스스로 부서이동이나 타업무로의 전환을 요청하는 건 시도할 수조차 없었다. 해외 진출을 망친 원죄자가 도망가는 모습으로 비칠까 두려웠을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이,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는 환경 변화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스스로는 어찌해 볼 방법이 없었다.


전형은 당진공장 제조로 가라는 회사의 통보가 오히려 난관을 피해 갈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회사가 속 깊게 배려해 준 것 같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어느 부서를 가더라도 여기에서 이렇게 일상을 무기력하게 맞닥뜨리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던 참이었다.

당진공장이든 어디든, 또 제조든 품질이든 어떤 보직에 업무를 맡더라도 다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는 스멀스멀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으로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

'저게 혹시 이쪽을 덮치면 어떻게 피하지?' 생각만 했다고 한다.


폭풍우가 다가와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진작에 돌담을 쌓았어야 하는데... 아니 다른 곳으로 피하기라도 해 볼까.. 이젠 어쩌지?' 생각만 했다.


결국 태풍의 눈이 그 자리를 집어삼켜가고 있는 지금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더는 못 버티겠는데, 이젠 어쩌지?' 생각만 했다.



눈만 동그랗게 뜬 고라니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야간 주행 중이던 차량의 헤드라이트 불 빛에 놀라 그대로 멈춰버린 로드킬 직전의 그 고라니 말이다.


그는 간절히 바랐다. 누구든지 이 난관을 빠져나갈 돌파구를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그의 신께 기도도 드렸다.


시간이 또각또각 지나면서, 궁지에 몰린 처지가 더욱 위태로워 졌다. 침을 꼴깍꼴깍 삼킬 정도로 애간장이 녹았다.


그 때다. 딱 그때쯤이다.

간절할 때로 간절해진 그의 처지에 회사는 당진공장 제조로 자리를 옮기겠느냐고 제안을 했다.


그는 이 것이 자신이 기다려온 돌파구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때쯤 그와 통화를 했다. 총무의 제안을 들은 다음 날이었다. 어떻게든 다시 살아나갈 방안을 찾았다는 듯, 그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이상했다. 누가 보아도 그를 집으로 보내기 위한 덫이었다.


그는 고위직 외국인 고객들을 주로 상대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그런 그를 지방의 공장으로 보내는 것이면, 누구라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게다가 고객을 상대하는 품질도 아닌 그냥 열심히 생산만 하는 제조로 보낸다. 부장인 그가 갈 자리는 팀장도 아닌 말단 보직이다.


그 자신만 몰랐다. 그처럼 눈치가 빠르고, 주 업무로 인간관계를 다루던 사람도 정작 자신의 일엔 장님이 되었다.

그가 그때 맞닥뜨린 건, 아마 순간적인 착시였을 것이다. 지극히 간절한 바람으로 돌파구를 찾고자 소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갈증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간 자의 눈에 보이는 착시현상처럼 말이다.


그건 신기루 일뿐 오아시스가 아니었다.



그날 그가 본 것도 당연히 돌파구가 아니었다. 자발적 퇴사를 유도하기 위한 덫일 뿐이었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출구인 '돌파구'.

그 출구를 따라 나가면,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는 확실한 덫이 있다.


심약해진 마음에 그가 택한 건 '돌파구'가 아닌 '돌파 덫'이다.


그가 그걸 스스로 깨닫는데, 3일이 걸렸다.




권고사직을 접하는 회사와 직원의 미숙함.



며칠 뒤 전형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그냥 퇴사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며칠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궁금했다.

당진으로 갈 거라더니, 갑자기 왜 변화가 있었는지 물었다.


그냥 어저께 '이게 뭔 짓인가?' 싶어서, 결심이 섰다는 말을 했다. 도저히 당진으로 가서 생활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전형이 제대로 알아보니, 모욕적인 상황이었단다. 회사는 그가 정말 당진으로 가길 원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그의 자발적 퇴사를 원했던 것이다. 설마 그가 넙죽 당진 제조 말단 직원으로 가겠다고 말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전형은 뒤늦게 깨달았다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회사에게 인간적이길 기대해서는 안됐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면담 중 총무는 당진으로 진짜 가실 거면,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연봉을 깎는 조치도 할 수 있으니 유의하라고 했단다. 어떻게 연봉을 마음대로 깎는 게 가능하냐고 코웃음 치며 항의하자, 돌아온 대답이 더 가관이다. 그런 방법은 조금만 확인해 보면, 널리고 널려있단다. 전형은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는 말인가 싶어 순간적으로 움찔했단다.


결국, 그는 적절한 합의 후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퇴직위로금으로 6개월 치 월급과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주는 조건이다.


전형의 얘기를 듣고서야, 그런 순간에 정신 바짝 차리는 게 중요하단 걸 알게 됐다.


그건 협상이기 때문에 총무가 제시하는 조건에 생각 없이 예스를 하면 안 된다. 우선 뜸을 들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총무가 당혹스러울 정도의 역제안을 해야 한단다. 그래야 제대로 긴 세월 함께 일한 직원으로서의 대우를 받는단다.


총무는 3개월치 월급을 제안했지만, 전형은 2년 치를 줘야 나가겠다고 했단다. 물론 진짜 받을 수 있을 걸로 생각한 건 아니다. 결국 몇 차례 양쪽 제안이 반복되면서 그 간격이 좁아졌다. 그렇게 연봉의 6개월치로 합의했다. 회사에는 적절한 사례는 없었지만, 그룹 내 타사의 사례는 거의 3개월치가 기본인 모양이었다.


(그런 자리에 가기 전엔, 미리 공부 좀 해놓는 게 좋겠다. 총무가 물었단다. '통상임금의 6개월치는 아니시죠?, 연봉의 6개월치 드리면 되는 거죠?' 당신이었다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전형의 경우는 그런대로 괜찮은 수준이다. 사실 대기업에서는 명예퇴직 조건으로 몇 년치 연봉을 주고 내보내는 경우가 많다지만, 우리 같은 중견기업에서는 그 정도 명예퇴직 조건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개개인에게는 갑자기 직업을 잃는다는 것은 가족의 생계가 걸린 중차대한 일임이 분명하다. 당장의 생계를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해주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냥 사지로 몰아넣고 압박하고 모욕을 주면 알아서 나간다는 발상.

수십 년 회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지옥 같은 일상을 맛보게 하여 결국 스스로 나가게 하는 것.


그 딴 걸 구조조정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니 참담하다.

20~30년 전, 우리 모회사에선 사업 존폐 위기가 닥쳤다. 급박했던 그 시절 당시 사장과 임원들이 했던 뼈아픈 조치가 있었다.


그 모습을 멀찍이서 보고 주워 들었던 하급 사원들이 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그들이 대표이사와 임원이 됐고, 그 머릿속엔 흐릿한 기억이 어렴풋 남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왜곡된 기억을 재소환한 후, 냉혈한 짓거리를 자행한다. 그리곤 나름 경험 많은 전문가인 척 이렇게 합리화해서 말하는 것 같다.


"괜찮아. 원래 다 그렇게 하는 거야."


명확한 건, 당사자에겐 평생 상처로 남을 트라우마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다. 과정이다.

얼마나 치졸한 방법인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크게 보면, 누구든 각기 다른 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다. 그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겪는 비인간적인 배신과 모욕. 특히, 그들의 놀잇감이 되었다는 사실은 깊은 상처로 남는다. 사람을 못 믿고 피하는 대인기피증과 답답한 공간을 견딜 수 없는 공황 증상, 불쑥불쑥 아무 때나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화병이 평생을 따라다닌다. 오랫동안 모든 일상이 망가질 수밖에 없다.



전형도 당진 공장으로 내려가 끝까지 버텨보려 했다면, 하루하루 사라져 가는 자존감 때문에.. 정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지난번 언급한 임 부장의 사례처럼, 아무리 강단 있는 사람도 긴 시간 동안 '모욕주기 수법'에 걸려들면 겁먹은 7살 아이처럼 변해간다. 무능력을 넘어 바보가 되어가는 사람들. 심지어 그중엔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생기니까.


그나마, 전형은 회사에서는 전례가 없는 퇴직 조건을 받게 되어 나름 만족해했다.

첫 번째 선례가 되었으니, 다음 차례에는 참고가 될 만한 사건으로 남게 됐다.


전형이 말했다.


"경훈, 넌 운 좋은 줄 알아. 꼭 그거 이상으로만 받으소. 그리고 내가 먼저 개척했으니까, 술 한잔 사!"




묻지 마, 나도 권고사직은 처음이라..



나는 전형에게 나의 경우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느냐고 떠보듯 물었다.

전형은 약간 뜸을 들이다 이렇게 말했다.


"묻지 마. 나도 권고사직은 처음이라.."


권고사직을 당하는 것에 전문가가 있을까? 하다 못해 2번 당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권고사직은 우리 모두 처음이었다.


“경훈, 너는 그냥 열심히 다녀… 월급 또박또박 나오는데 뭐가 문제야. 끝까지 버텨~


전형은 공식적으로 잘릴 때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버티라고 말하였다. 나는 전형에게 내 사정도 만만치 않음을 말하였다.


“전 부장님, 나도 고통스러우니까 그러지… 월급도 문제지만 사람 병신 되는 게 더 문제 아니야. 하루하루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잖아? 이대로 있다 간 돌아버릴 것 같아…”


전형은 그 마음 내가 잘 안다고 하면서 내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묻자, 전형이 그간 해온 일을 꺼내 놨다.




초반엔 그도 해외 바이어와의 왕래가 끊어지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작은 실적이라도 만들어보려고 용을 썼단다.

그러다 ‘이건 노력한다고 되는 상황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인터넷으로 이 것 저 것 조사해보고 동향을 살피는 일을 하는 것도 점점 힘들어졌다고 한다.


새로운 정보나 기사가 뜨는 것이 본인이 읽는 속도보다 한 참 느리니,

읽은 것 또 읽다가 질려 버렸단다.



이렇게 있는 것보다 뭐라도 스스로를 위한 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찾아낸 것이 ‘사회복지’ 쪽 공부였다.

방송통신대학에 등록하여 ‘사회복지’ 쪽 공부를 시작했고, 벌써 몇 개월째 진행 중이라고 했다.


나는 그 공부가 끝나면 뭐가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요양병원도 차릴 수 있고, 사회복지사도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여러 가지 분야가 있는데, 그건 나중에 고민해 볼 것이다. 일단 시간을 허송으로 보내는 것보다는 그 공부래도 하는 게 훨씬 낫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러면서 내게도 뭔가를 짧게 라도 도전할 자신만의 목표를 정해서 추진해 보라고 했다.


시간이 잘 가지 않고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다는 얘기였다. 시간을 즐겁고 빠르게 보낼 수 있고, 나중에 퇴직 후에 뭐라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일석이조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에 충분히 공감했다.


좀 더 진지하게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다. 전형은 한 숨을 내쉬었다. 아직 정하진 못 했는데, 공무원 시험을 봐 볼까도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50대가 훌쩍 넘었는데 무슨 공무원 시험이냐, 2~3년 공부하고 합격해도 몇 년 못하고 정년퇴직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전형은 공무원에 연령제한이 없고, 몇 년이라도 공무원을 하면 그게 어디냐고 했다.


나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 같다고 했다. 전형은 더 받은 월급과 실업급여, 퇴직금이 있으니 그래도 한 2년은 먹고 살 돈은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한 두 달 정도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쉰 다음에 천천히 고민해 보라고 했다.


사실 나는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갑작스러운 퇴사 후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그를 더 붙잡고 있을 순 없었다. 너무 오래 통화한 듯하여 전화를 끊었다. 그는 나중에 시간을 내서 용 선배와 함께 셋이서 술 한잔 하자고 했다. 좋은 생각이라며 시간 잡히면 연락하라고 했다.


전화를 끊으려는데, 그가 마지막 말을 했다.


"경훈, 너는 끝까지 버텨"


전화를 끊고서야 주변이 조용하다는 걸 알았다. 그대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마지막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누구 권고사직당할 준비된 사람 봤어?



전형의 이번 퇴직은 회사의 모두에게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모두들 이 사건을 계기로 회사에서 정리 해고하는 인원이 더 늘 것으로 내다보았다. 각자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끼리끼리 모여 한숨 어린 이야기들을 하는 듯했다.



생각이 깊어지는 하루를 보냈다.

나도 비슷한 일을 당했고, 지금도 서서히 진행 중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노골적인 회사 차원의 협상이나 압박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어찌 보면 유배지로 좌천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사각지대라 눈에 띄지 않을 수 있다. 견딜 수 없는 모욕감이나 수치심으로 스스로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눈앞에 걸리적거리지 않는 관계로 경영층이나 인사노무 쪽의 관심을 덜 받을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구태의 적폐로 몰려, 마녀사냥을 당했다. 그렇게 가장 먼저 쫓겨났지만, 멀리 돌아 등잔 밑에 들어와 앉아 있었던 꼴이다.


오히려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있다. 퇴사할 준비를 차분히 끝낼 시간을 번 것이고, 퇴사 시점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봐야 했다.


전형의 경우처럼, 퇴사에 대한 협상이 끝나면, 그날로 즉시 사직처리가 될 것이다. 그 자리에서 바로 짐을 싸서 집으로 가게 된다.


사실 이런 급한 처리가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잘 모르겠다.

먼저 잘린 임원 선배들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정말 순식간에 처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사자는 허를 찔린 듯 아무 생각이 안 든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출근할 시간이 되어서야 어찌 된 것인지 느껴지기 시작한다.


회사에 대한 배신감이나 무너지는 자존감 때문에 우울증에 걸릴 때는 이미 그들과는 남남이 된 상태다. 그땐 원망할 상대도 없어지므로, 혼자만 죽니 사니 궁상을 떨게 된다는 것이다. 왜 그 많은 선배들이 하루아침에 버림받고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났는지, 회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요하기만 했는지 알 거 같았다.




사실 전형도 지난 세월 동안의 회한의 말을 했다. 긴 시간 수 없는 프로젝트를 개발해서 양산시켰다. 정말 많은 일들을 해왔는데, 그 과정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와서 불필요한 사람 취급을 받은 것이 더 착잡하다고 했다.


전형은 외국인을 상대하는 업무적 특성도 있었지만, 특유의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갖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종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때문에 사내에서 평판이 그리 좋진 않았지만, 어찌 보면 내 입장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역할을 하면서 나름대로 한 시절을 열심히 살았다는 것. 그리고 본인의 의지로는 극복하기 힘든 급변한 환경과 주변관계에 영향을 크게 받은 부분이 매우 비슷하였다.


"권고사직 말이야. 많은 사람들이 겪었고 앞으로도 누군가는 또 겪을 것이 분명하잖아. 그런데 그 수많은 사례에도 불구하고, 왜 항상 당사자에게는 충격적인 일이 돼버릴까?"


내가 사뭇 진지하게 묻자, 그가 답했다.



"대한민국 직장인은 다 똑같아. 자기 발로 회사를 먼저 나가지 않는 한, 언제가 됐든 마지막은 원치 않는 퇴직이 기다릴 뿐이야."

"정말 그러네.."

"그렇지만, 대한민국에 권고사직당할 준비된 사람 봤어?"


그랬다. 어찌 보면 답은 정해져 있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두렵고 억울한 상황에 놓였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또 앞으로도 더 많은 우리 후배들이 비슷한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집에 가라고 압박을 해야 하는 일이 불가피한 것이었을까? 좀 더 유연하게 처리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오래 동안 똑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다.




회사에서는 전형이 해고를 당한 이후 생각이 많아졌다.


대표이사나 직속 상사 등 경영층에서 보았을 때 전형 사건 이후로 부장급으로는 내가 걸리적거릴게 분명하였다. 조만간 내게도 어떤 핑곗거리나 빌미를 잡아 비슷한 퇴사 요구를 해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게 언제가 될까. 천천히 내년 초쯤에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지만, 아마 그렇게 까지 오래 기다려 주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분명 숙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보여주기를 좋아하는 그들이 그렇게 오래 시간 끌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하기 전에 선수를 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조기 은퇴 자금과 지속 가능한 파이프라인, 아직 준비가 다 안됐다. 조금 더 속도를 내야 한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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