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경훈 Aug 09. 2022

직장생활, 버티면 성공할 수 있을까?

그들이 있는 한 재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더 오래 남는 수밖에

선택해야 한다. 버틸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고민이 많다.

"버틸 것인가, 그만둘 것인가?"


결정이 어렵다. 표현은 단순하지만, 의미가 복잡하다.



이 고민이 갖고 있는 진짜 의미는 좀 미묘하다.


사실, 한 마디로 표현할 적절한 문구를 찾지 못했다. 겨우 찾아낸 엇비슷한 문구라서 중의적으로 느껴지는 것 일수도 있다.


이 결정이 중요한 이유는, 결정 그 자체 보다도 그 이후의 행보에 있다.

결정의 순간, 그 이후의 변화에 대한 각오와 숙고가 선행돼 있어야 한다.


선택이란 짜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와 같은 그 결과가 명확한 결정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나고 나서 깨달을 뿐, 오히려 그 이후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 놓을 기로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나비효과처럼 내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조차 안되기도 하니까.



이 결정이 어려운 이유는 버티는 것이 힘들어서가 아니다.

그건 어찌 보면 쉽다. 내 안의 통증을 느끼는 기관에 스위치를 꺼버리면 된다. 그런 훈련은 잘 되어있다. 그게 육체의 영역이든, 감정의 영역이든 의외로 자유롭게 컨트롤할 수 있다. 인내의 순간이 고통으로 남을지언정, 아직까진 그 끝이 포기나 굴복인 경우는 없었다.


우리가 해야 할 버틸지 말지의 결정이 고민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이번 판이 도저히 살릴 수 없으니 포기하고 새판을 시작해야 할 상황인지.

기왕 여기까지 어렵게 왔는데, 엎어져 버린 위기를 수습하여 극적으로 극복해 낼 것인지.



선택과 몰입.

어떻게든 온 정신과 시간을 몰입하면,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끝까지 완수하여 승리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제대로 된 선택이다. 집중하고 몰입하는 일보다 몇 배는 중요하다. 결정의 순간이 찰나이고, 몰입과 실행이 수년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찰나의 선택이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이번 고민이 그렇다.




지난 20년 직장생활이 내게 알게 해 준 내 능력의 한계가 있다.


어떤 선택을 하면, 그 일에 몰입해야만 성과를 낸다. 한눈팔아가면서 잘 해낼 능력은 없었다. 온 시간과 영혼을 집중해야만 제대로 마칠 수 있다. 그 생각 때문에 그 외의 일에 아예 관심을 꺼버린다. 조금이라도 딴 것에 관심을 켜면 집중력이 금세 흐트러져 진도가 안 나간다. 성과가 바로 떨어진다. 일의 퀄리티도, 속도도 차이가 많이 나기 시작한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이상하다고 느낀다.

어찌 보면 멀티태스킹 능력이 떨어진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그래서 회사일과 그 외의 것에 적절한 안배를 하기가 힘들다.


A라는 일과 B라는 일이 있다고 해보자.

A에만 집중하면, A=100, B=0의 성과를 낸다. 그 100을 반으로 나눠 A, B를 골고루 성과를 내려고 시도도 해봤다. 기대한 바는 A=50, B=50이다.

시도 결과 중요한 걸 깨달았다. 같은 에너지를 써서는 A=10, B=10 밖에 안 나온다.


이번 경우엔 A가 버티는 것이고, B가 새 출발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버티는 것을 하면서, 동시에 새 출발을 준비할 수는 없다. 나는 그렇게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버티고 재기해서 성공하는 것을 목표로 삼되, 잘 안될 걸 대비해 Plan B로 다른 생계 거리도 준비해보자"

안타깝게도, 그런 건 내 선택지에는 없다.


타고난 능력의 한계인지, 요령의 부족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니,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아야 한다. 둘 다 잘하려고 하면, 둘 다 낙제점을 받을 것이다.



B를 선택하려면, A를 포기하는 건 당연하다.


단지, 적절한 연극으로 A를 버렸음이 노출될 때까지 최대한 시간을 벌뿐..


그렇다고 새 출발이 꼭 성공하리란 보장도 없다. 내 새 출발은 또 다른 직장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 이 시대에는 부장급 엔진 기술 엔지니어가 갈 곳은 없다.


전혀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본 직업 이외에는 내가 가진 경험이나, 기득권이 하나도 없다. 밑바닥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수밖에.. 대신 언제 잘릴 줄 모르는 기존 직업과는 분명 다른 게 될 것이다. 평생 소득이 보장될 일을 찾아야 한다.


그야말로 모험이다.

모든 걸 쏟아붓지 않고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 쉽지 않다.



반면,

버틴다는 의미는 명확하다. 시간을 번다는 의미가 아니다.

끝까지 간다는 의미다. 최후의 1인까지 말이다.


끝까지 가지 못하면 실패다. 대책 없는 폭망이다.

잘하다 중간에 떨어져 버리면 아무 의미 없다. 안 하니만 못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으니까.



준비 없이 거리로 내몰려 중장년 구직자가 될 것이다.

늙어서까지 몸과 시간을 축내는 일자리를 구걸하러 다닐 것이다.

일을 안 하니 좀이 쑤셔서 재미 삼아 일한다는 어쭙잖은 말을 하게 될 것이다.

거짓말이다. 돈 때문이다.


물론 과거, 내 미래는 장밋빛으로 보였다. 끝까지 살아남아 임원, 사장을 거쳐 부회장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어느 정도 가능성도 있었다. 5,000명 중에 1위였으니까. 그대로 가면 최후의 1인이 되어 오너 일가를 제외하고는 최고의 위치까지 갈 수도 있었다.


길게 살아남으면, 돈 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물론 신분계급이 다르니 그게 최선이다. 근로소득자 계급에선 그게 최고 등급이니까. 자산가 계급이 아닌 이상에야 그 정도면 성공한 것이다. 남은 노후를 떵떵거리며 살진 못해도 일 않고 놀러 다닐 수 있는 게 어디야?


그렇게 5,000대 1 경쟁을 뚫고, 부회장까지 버티면 대략 60대에 접어든다. 부회장으로 2년 내 잘리는 경우도 숱하게 봤지만, 잘하면 5년 이상도 버틸 수 있다. 그러면 성공이다.



그렇게 65세까지만 버티면 된다. 소득 크레바스 위기를 넘긴 것이다. 국민연금과 각종 복지기금들, 퇴직연금으로 남은 35년은 일 않고도 먹고살 수 있다. 필요하면 한 채뿐이지만 아파트가 있다. 자식에게 물려주면 좋겠지만, 당장 생활비가 부족하면 주택연금을 받으면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이 버텼을 때의 가장 좋은 미래다. 그렇게만 되면, 큰 부자는 못돼도 나쁘지 않은 인생이다.



그런데, 이 방향을 택했을 때 끝까지 갈 수는 있을까?


고민이 더 깊어진다.




버티는 걸 선택하면, 끝까지 성공할 수는 있을까?



선택을 해야 한다. 내 의지만으로 미룰 수는 없다.


버티는 것엔 가차가 없다. 방심하면 바로 노출되어 칼을 제대로 맞을 것이다.

버틸 것이면 하루빨리 진흙탕에 굴러야 한다. 발버둥 치며 존재감을 계속 드러내야 한다.


내가 아직 여기 살아 있다는 걸..

그래야 그나마 가능성이 유지된다. 죽을 만큼 노력하면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라.



아직 내겐 그간의 성과에 대한 이력이 남아있다.

인맥도 살아 있다.




사실 난 대단히 운이 좋은 인맥을 가졌다.


긴 세월 실세였던 직전 부회장님이 주니어 때부터 차기 연구소장으로 낙점하실 정도로 좋아했다.

지금 부회장님도 20년간 알고 지낸 내 동문 선배다. 그분도 날 차세대 리더로 생각해 오셨다.

내가 수차례 그룹 내 중요 포상을 받을 때마다 칭찬을 아끼시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수년간 오너 일가이신 회장님과 총괄사장님과도 독대 보고 횟수도 많았고, 이미지도 좋다.


이번에 내정된 차기 부회장님도 내 선배다. 한때는 수시로 허물없이 통화하던 사이다. 중국 사장 시절엔 날 데려가려 갖은 애를 쓰시기도 했다. 관계사 사장으로 승진해 귀국 후엔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더 좋아하셨다.


물론 알다시피, 우리 사장도 직속 상사 임원도 모두 내 동문 선배로 개인적인 친분도 인연도 깊다.


여기까지만 보면 수백, 수천 명의 직원들 중 나보다 운이 좋게 풀린 사람은 없어 보인다.


나 정도 말단 부장급에선 부회장급 이상의 고위급과 얼굴이나 이름을 아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1:1 대화나 통화조차도 해본 적 있는 사람이 몇 안될 테니까..



처음부터 그들이 사장, 부회장이 된 것은 아니다.


나를 아껴줄 땐 그들도 수백 명의 간부사원, 임원중 한 명이었다. 살다 보니 참 특이한 상황이 된 것이다. 소설같이 기가 막힌 일이다.


그러니 내겐 뜻밖의 행운이 찾아온 것이 맞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나는 그들이 인식하는 몇 안 되는 동문 후배 중 거의 유일한 막내다.

왜냐하면 나 이후에는 그룹 내 사조직으로 비화될 것을 염려하여 모임을 스스로 없앴기 때문이다. 난 동기도 없다. 나 이후의 후배들은 우린 알지도 못한다. 말 그대로 귀여움을 독차지할 막내쯤으로 볼 수 있겠다.



나는 경력사원도 아니다. 신입 공채로 입사해 이탈 한번 하지 않았다. 그것도 거의 회사 창립 멤버로 건국공신급이다.

누가 봐도 주류 중 주류였다. 웃긴 말로 성골이라면 제대로 성골이다.

(혼자 말해 놓고 보니.. 정치판 같다. 너무 저질스럽나.. 싶어서 이번 화는 지울까 고민도 된다.)




생각해 보면, 아직은 남은 저력이 있다.

그냥 포기해 버리기엔 20년 세월이 아깝다. 쌓아 올린 공적과 손잡아 줄 인맥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길게 보면, 조직에서의 상하관계가 일시적으로 꼬인 것일 수도 있다. 조직은 또다시 바뀔 것이다. 성공한 선배들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좌천되었다 살아난 경우도 많았다.


내가 그리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내게도 재기의 기회가 올 수도 있고, 그땐 자신 있게 치고 나가 보란 듯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는 불가능하다.


정말 아끼는 고급 볼펜도 똥통에 빠지면, 그냥 버린다. 주인이 떨어뜨렸고 볼펜은 잘못이 없지만, 주인에겐 더럽힌 기억이 남았다.


"참 아깝다." 고 수없이 말할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사용할 일은 없다.




직장이라는 정치판의 " 꼬리 자르기.."



내가 이런 식의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


내 좌천 사태가 다분히 정치적인 조치로 생각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도 내가 당한 것은 '꼬리 자르기'가 분명했다.



새로 부임한 사장에게 필요했던 건, 위기 극복의 리더십이다. 전기차로의 시장 변화 위기를 극복할 강단과 혁신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지켜보고 있는 오너와 그 주변을 포함한 만천하에 말이다.


그가 지나왔던, 과거 행적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자회사 세 곳의 대표이사를 거쳤다. 그때마다 그가 보여준 것은 모두들 놀라 주목할 만한 '물갈이 전법'이다. 그가 각 회사에 부임하자마자 했던 일들은 이렇다.


첫 번째 회사는 직원들을 동원해서 현장 환경을 갈아 없으려다 진도가 느리자. 현장 정리 전문업체에게 거액을 주고 일을 시켰다. 장비를 들어내고 라인을 완전히 정리해서 새로운 공장처럼 바꿔놓았다. 지금껏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 결과 관계사들의 견학 대상이 되었다.


거기서부터 생각이 명확해졌으리라. 모두 놀랄 만큼 자극적이어야 주목을 받는다고. 파격적인 조치가 경영능력을 보여주는 척도가 된다고 말이다.


두 번째 회사에 부임했을 때도 비슷한 현장 정리 조치를 했다. 이번엔 큰 효과를 못 보자. 추가로 다른 조치를 했다. 인원을 정리했다. 그 첫 번째가 몇몇 마음에 안 드는 직원 책상을 사무실에서 뺀 후 다른 휴게 공간으로 옮겨 버리는 것이었다. 모두 충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나름 효과를 봤다. 본보기가 무서웠던지 중앙집권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는 성공했다.


세 번째 회사에서는 한 단계 더 배포가 커졌다. 앞선 회사들에서 쏠쏠한 재미를 봤기 때문인지, 이번에 더 크게 움직였다. 2층에 연구소 사무실을 아예 없애 버렸다. 기술 부분 엔지니어들을 모두 1층 현장사무실로 내려 보냈다. 모두들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더 충격적인 조치를 했다. 본사의 젊은 현장 반장을 데려다 제조팀장을 맡겨 버렸다. 팀장이던 과차장급 기존 인원은 말단 직원 취급을 했다. 나가려면 나가란 의미였다. 온 천하에 기존 인원들이 모두 매너리즘에 빠진 구태임을 명확히 공표한 것이다.


회사의 혁신을 위해선 청산해야 할 대상처럼 만들어 버렸다. 자존감이 무너진 그들은, 6개월을 못 버티고 거의 모두가 퇴사를 했다.

함께 일하던 관련된 회사들의 실무자들은 아우성이었다. 작은 회사라서, 다행히 꾸역꾸역 정리는 되었다.


그는 그런 조치들이 내외부에 대단한 혁신으로 비친다 믿었다. 나아가 자신이 그것을 해낸 능력 있는 전문경영인으로 비친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 '회사의 절반을 집으로 보내버렸다'라고 내게도 자랑할 정도였으니, 그의 생각은 분명하다.



엔지니어들은 독자기술은 사라졌고, 현장관리만 남았다고 개탄했다. 그래 봐야,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이번에 내게 행한 조치가 판박이다.

부임하자마자 오너 일가와 부회장에게 부여받은 가장 어려운 숙제가 전기차시대 생존 전략 수립이었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 기존의 구태를 척산하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겠다는 혁신 안이다.


그 구태가 나였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작은 회사는 아니다. 이제 부임한 사장이 한 달만에 조직을 뒤집어엎어 놓기는 어려운 일이다. 웬만하면 기존의 담당 임원이 반대를 했을 것이다. 공교롭게 이번에 완벽히 거꾸로가 됐다. 날 지켜줄 방패막이가 됐어야 할 직속 상사는 그 일을 부추겼다.



내가 아니면 그였으니까. 명확하게는 지지부진한 신사업의 책임자는 분명 그였다. 게다가 직속 상사는 지난 3년간 연구소에서 내 색채를 지우려 갖은 노력을 했잖은가.. 이번이 기회였다. 일석이조였으리라..


아니.. 그보다는 실패하면 자신이 버려질 수도 있으니,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둘의 코드가 딱 맞아떨어졌다.


두 사람은 계속해서 내 좌천의 당위성에 대해서 서로 맞장구를 쳤을 것이다. 하루, 이틀, 사흘. 나의 잘못을 씹어대면서, 그들이 행할 인사조치의 당위성에 색칠을 했을 것이다. 그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아서 마음속에 있었을 찝찝함이나, 선배로서의 도리, 미안함 같은 것이 깔끔히 정리되었을 것이다.


"나는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야."라고 말이다.



그렇게 보면 이해가 되었다. 왜 그 두 사람 모두, 마지막 일주일 사이에 그런 태도를 보였는지 말이다.


지금 와서 보면, 그들의 마음속을 읽은 것도 아닌데 신기할 정도로 느껴졌었다. 둘 다 특별한 이유 없이 갑자기 냉랭했다. 눈을 잘 마주치지도 않았고 말수도 없어졌다. 게다가 지금은 정말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사소한 일들로 내게 집요하고 지나친 힐책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알겠다.

그 들이 왜 떳떳함을 넘어서, 인간적인 개무시를 하며 비아냥을 일삼았는지 말이다.


자신들의 비열한 행위에 명분과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내 처지가 똥통에 빠뜨린 볼펜보다 못하단 생각이 든다. 볼펜에게는 '참 아깝다.'라는 말이라도 남겨줬지 않았던가?




(정말 몰랐다. 나를 뽑아 가르치고 함께 일한 사수였던 그분이 대표이사로 돌아와 시행한 첫 조치가 나를 잘라내는 것이라니.. 왜 그랬을까? 그때 나에게 왜 그랬을까..? 아무리 고민해도 답을 못 찾았다. 과거에 뭐가 못마땅했던 게 있었을까?


20년 전 책상 서랍에 담배를 너무 많이 훔쳐 펴서..?

18년전 차를 빌려 타면서 가스를 한 번도 안 넣어줘서..?

15년전 우리 집에 벗어놓고 간 아끼던 팬티를 안 돌려줘서?

13년전 같이 술 먹고 갔던 마사지 샵에서 같은 안마사에게 안마를 받아서..? 그것도 내가 30분 일찍 받았기 때문인가..

11년전 우리 둘째 백일 날, 잔치도 안 하는데 20만 원을 지갑에서 꺼내 줬는데... 나는 그분 부친상에 10만 원만 내서...?

8년전 공장 운영하시느라 옛날 엔지니어 실력, 다 녹스셔서.. 칼이 무뎌졌다고 말한 것 때문에 삐지셨나..?

5년전 부산에서 자회사 대표 시절 아침마다 산책길에 찍어서 보내시던 풀꽃 사진들에.. 읽씸해서..?

3년전 자회사 대표 시절 방문했다, 둘이서 회사를 빙빙 돌 때... 2시간 동안 담배를 5개비나 얻어 펴서..? 돛대까지..

이번에 사장으로 부임한 다음 주에 냄새나서 여직원들이 싫어할 테니 사장실에서 담배 좀 피우지 말라고 말했다고..?


이것저것 생각해봐도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번에 정리하다 보니, 그런 것들이 아니란 걸 알겠다. 방향이 전혀 다르다.)




내게 버틴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가장 치욕스러웠던 일은 직속 상사의 치졸한 작태였다.


그는 자신이 내 목줄을 손아귀에 쥔 사람처럼 행동했다.


보통의 사회관계에서는 본 적도 없는 짜증과 무시, 훈계를 쏟아냈다. 좌천 사실을 전달하면서도 인간적인 안타까움은커녕 형식적인 위로도 없었다. 오직 비아냥과 조롱만 있었다.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머릿속에서 또렷이 남아있는 이미지가 있다. 허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무릎 꿇고 빌면서 내 발을 핥으면 죽이지는 않을게."



딱 그렇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내가 뼈 아픈 착각을 했다.

'아.. 이 사람이 내 생명줄을 쥐고 있구나.. 저걸 놓으면 낭떠러지로 떨어진다. '


버려지는 게 두려웠다. 그에게 매달렸다.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뭔가 여지가 있는 듯 말을 했다. 나는 더 절박해졌다. 그가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좀만 더해봐. 더 간절하게.. 더 조아리면서."


희망고문이다. 결국, 휴가 중 그가 출근하는 당번 일에 찾아가 직접 입으로 말했다. 한 번만 살려 달라고.

그는 대수롭지 않게 이미 늦었다고, 말하며 다른 일이 있다며 돌아섰다.


그에게 말하기 위해 3시간을 기다렸지만,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어디 한번 잘 버텨보라는 마지막 비아냥을 듣는데 까지..


한평생 가장 굴욕적인 순간이었다. 모욕감에 분노를 주체 못 한 탓에 눈물이 났다.


정신없이 매달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 목줄을 쥔 건 그가 아니다. 그는 그냥 자기 의견을 내는 게 고작인 위치다.

대표이사를 부추기고 그 뒤에 서서 호가호위했던 것이다. 마치 자기에게 그런 절대적인 권한이 있는 것처럼.



회장님께 의전하듯 자신을 대하라는 말을 하던 그때처럼. 자신이 권력자가 된 듯 우쭐했을 그를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는 경주마를 조련하는 기분으로 나를 대했을 것이다.

나를 손아귀에 넣고 장난을 친 것이다. 맘껏 즐겼을 그를 생각하면 손이 다 떨린다.


그 날일을 떠올리다 보면, 가슴이 애리는 고통 때문에 숨이 턱 막히곤 한다. 화병이다. 그럴 땐, 의식적으로 좋은 생각을 해본다..

처음 좌천 사실을 전달하는 과정에 조금만 성의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경훈아, 사장님도 고민 많으셨는데, 어쩔 수 없으시다고.. 미안해하시더라. 속상하지만, 좀 만 참고 있어. 잘 알듯이 기다리다 보면, 상황은 또 바뀌니까.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 말고 힘 내보자.'


이 정도 말이면, 내 원한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그 자리에서 받아들였을 것이다. 당연히 매달리는 일 따윈 하지도 않았다.



나는 평생 어떤 사람 하고도 3일 이상을 원망을 쌓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누구와 다툼이 있어도 바로 풀어버리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성격이다. 나 같은 성향의 인간에겐 누군가를 미워해야 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없다.


그들은 그런 내게 평생토록 지워지지 않을 원한을 남겼다.

어쩌면 그것이 좌천의 충격이나, 고용의 불안정 보다도 나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다.


가끔 겁이 난다.

어느 날 생계에 목이 멘 내가, 그들을 찾아갈까 봐.

그들 다리를 부여잡고, 아부를 떨면서 다시 밑으로 붙여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까 두렵다.



나도 모르게 고통을 털어내려고 본능적으로 애쓰고 있을 때가 있어서 놀란다. 자연 치유능력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몸이 자꾸 아픈 기억은 지우려 한다. 그럴 때마다 이를 악물며 하는 말이 있다.


"잊지 말자. 그날의 치욕. 절대로."




그들이 있는 한 재기란 불가능하다. 내가 더 오래 남는 수밖에..



그들이 있는 동안에는 재기란 불가능하다.


그들이 사라지면 내게 다시 기회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기가 멀면 안 된다.


너무 시간이 지나면, 내 공적과 인맥도 흐릿해질 것이다. 게다가 도태된 만년 부장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면 그 벽을 뚫진 못할 것이다.



생각보다 금세 녹슨 칼이 될 것이다.

그들이 사라질 그때가 올 것은 자명하다. 그 시간이 문제다.

얼마일지 모르나 임계치를 넘어서면, 녹슬어 무뎌진 내 칼로는 재기의 능력이 못 미칠 것이다.


어쨌든 그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재기에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확률이 작다.


그 마저 그 전제돼야 할 조건이 있다. 연구소 총괄 사장이 방어막 역할을 얼마나 제대로 해주느냐이다.


내가 지금 등잔 밑에 돌아와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좌천지인 미래사업연구소 말이다. 이곳의 유일한 장점은 별도 조직이라는 점이다. 운영하는 사장이 따로 있기 때문에, 본사 사장이나 직속 상사가 함부로 손댈 수가 없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곳에 조용히 자리 잡고 시간을 버틸 수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열이 흐트러져 권고사직의 손길이 뚫고 들어오면 어쩔 수 없다.

(유배만 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 것 말이다. 유배지에서 복귀 없이 바로 사약을 받는 경우도 있다.)


버틸지 말지를 단숨에 결정하기엔 변수가 많아 복잡하다.


이 혼탁한 상황에선 시세를 잘 읽고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

버텨서 재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있을지는 몇 가지 추이를 지켜보며 판단할 수밖에 없단 생각을 했다.



그 들이 그 자리에 오래 있을 것인가?


내가 예상한 대로 유배지 내 자리가 등잔 밑이라서, 정말 그들의 영향력이 못 미치는 곳인가?


그들보다 내가 먼저 권고사직을 당하진 않을까?


버텨서 '성공한 노후'를 맞을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인가? 새 출발을 위한 도전의 성공확률이 높을 것인가?



최소한 이 4가지 질문에 대한 근거 있는 예측이 필요하다.


얼마 간 지켜보며 다시 판단해 보기로 했다. 남은 인생을 좌우할 중요한 결정이니까.


(계속..)



이전 14화 월급 루팡이면 뭐 어때? 먹고는 살아야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