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경훈 Aug 08. 2022

월급 루팡이면 뭐 어때? 먹고는 살아야지..

월급루팡이 될 충분한 자격?

용선배의 전화, "내 코가 석자야.."


좌천지, 군포 미래사업연구소는 내게는 수련회장 같았다.

학창 시절 극기훈련과 참선으로 끈기와 인내를 배우던 수련회장 말이다.


사실 끈기와 인내에 대해선 통달했다고 생각했다. 군인 시절과 사회 초년생 때 상당한 부침을 극복하면서 내공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혼자와의 싸움에는 이골이 났다. 어떤 상황도 쉽게 견딜 수 있다고 단언해왔다. 하지만, 다시 겪어보니 아니다.


역시 자신과의 싸움은 언제나 어렵다.



마음이 심약하다. 아침과 점심, 오후, 저녁의 심정에 극심한 변화가 찾아왔다. 거기엔 누구의 입김도 영향도 없다. 그저 내 안의 긍정과 부정이 엎치락뒤치락 싸움을 한 결과다. 그런 일상이 끝없이 반복됐다. 결국 그런 패턴이 루틴화 되었다.


아침엔 의지와 희망이 자리한다. 점심은 침울과 좌절이다. 그리고 오후엔 무기력과 포기가 그 자릴 차지한다. 결국, 저녁엔 번아웃되어 정신줄을 내려 논다.


나도 야심 차게 직장 탈출 계획을 실행 중이긴 했다. 처음엔 그 일에 희망을 갖고 조금만 버텨 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긴 호흡의 일이라 가시적인 성과는 한참 멀었다.


아내의 도움으로 밤새 머리와 가슴을 깨끗이 비운다. 아침엔 희망과 의지로 가득 채운 채 집을 나선다. 하지만, 유배된 자로서의 일상은 금세 현실의 곤궁함으로 가득 차 버린다. 어느 순간 버텨야 한다는 생각조차 잊었다. 그냥 습관처럼, 기계적으로 버티고 있었다.




어느 날, 용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랫동안 우리 연구소에서 나와 함께 근무하였던 전임 연구소장이다. 앞서 나와 파트너십이 좋았다던 바로 그 양반이다.


사실 용 선배도 얼마 전 해고를 당했다. 내가 군포 좌천지로 발령이 났던 바로 그날.


그는 연구소장을 하다 중국 공장으로 발령이나 해외에 나갔었다. 그리고 작년에 복귀하면서 우리 자회사의 대표이사로 갔다. 그리고 올해 초부터 또 다른 자회사 대표이사로 다시 전근 발령이 났다. 그곳에서 근무를 하던 중, 갑자기 해고를 당했다.



갑작스러운 조치였다. 같은 날 해고를 당한 사람이 많았다. 우리 회사에선 3명의 임원 선배가 해고를 당했다. 관계사에서도 연구소장이 갑작스러운 해고를 당했다. 모두 50대 초중반이었다. 임원은 임시직원의 줄임 말이라는 얘기가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갑작스러운 해고를 당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용 선배는 사실 R&D에 특화된 사람이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대표이사로 갔다. 준비가 안된 채 경영을 하다 보니 실적이 그리 좋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전화를 받자, 용 선배가 다짜고짜 말을 했다.


“경훈아, 어떻게 하다 거기에 가있냐..?”

“네.. 그러게요. 어쩌다 그렇게 그리 되었을까요..”

“너는 참.. 의외다. 생각도 못했는데 거기로 밀려났냐.. 심정이 좀 어떠냐? 계획이 뭐야.. 어떻게 할 거냐?”


“심정이요.. 죽을 맛이지요. 계획은 계속 바뀌고 있어요. 아침저녁으로.. 아침에는 어찌 됐든지 살아야 하니 열심히 해보자.. 했다가 오후 되면 어떻게 그만둘지 고민하고 있고요. 다음날도 매일 반복해서 마찬가지예요.”


용선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을 했다.


"경훈아, 그럴 때일수록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어서 마음을 굳혀야 해. 목표를 빨리 잡아. 남을 건지. 떠날 건지."


선배 말을 정리해보면 이렇다.

일단 현실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과거를 개탄하며 멍 때리고 있으면 안 된다. 회사에서 재기를 목표로 할 것인지, 퇴사 후 다른 일을 할 것인지를 정해야지 제대로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정해지면 자신이 코치를 해주겠다고 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 중에 하나란다. 두 가지 전략이 다르니 방향부터 정하란 말이다.

첫째는 버텨서 살아남을 전략이고, 두 번째는 버티면서 준비해서 이직을 할 전략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두 가지 다 지금 당장 할 일은 '버티는 것'이란 말이니까.



나는 웃음을 삼키며, 조만간 결심이 서면 상담을 요청드리겠다고 하며 말을 돌렸다.

나도 나지만 용 선배가 더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대표님은 어떻게 지내세요..?”

“나야.. 잘 지내지. 하는 일은 없는데 이상하게 바쁘네..”

“근데 나는 솔직히 이게 뭔 일인가 싶다. 아니.. 지들이 저쪽으로 가라 해서 갔다가. 요쪽으로 가라 해서 또 갔는데, 갑자기 이쪽으로 가라 해서 또 가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그냥 집에 가라고 해서.. 집에 왔다.”


헉.. 웃지 못할 웃음이 나왔다. 선배는 자신이 당한 일을 수긍할 수 없는 듯했다. 당연했다.


" 너도 걱정이지만, 솔직히 내 코가 석자다."

요새 이력서를 써서 몇 군데 넣어보고 있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고 했다.


나는 쉽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선배도 자동차 엔진 기술 엔지니어다. 사실 엔진 기술 경력자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시장에서는 전기차 부품을 목표로 하는 전동화 관련 기술자만 찾는 상황이다. 아무리 대기업 출신이라도 채용하려고 하는 곳이 없는 게 현실이다.


용 선배의 솔직한 심경 같은 게, 너무 듣고 싶었다.

그런데 요동치는 마음 때문에 더 들을 수가 없었다. 일단 무너진 내 자존감부터 회복해야 했다.


“너는 지금 딱 내가 제일 필요하다. 나랑 얘기를 하는 게 너한테 큰 도움일 될 것 같으니 시간을 빨리 내“

용 선배는 오늘이라도 만나자고 했다.


나는 용 선배와 더 자세히 얘기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 처지에 대해 말하다 보면, 자신감이 더 저하될 게 분명했다. 다음에 전화드리고 찾아갈 테니 술 한잔 사주시라고 하고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래, 그래. 아무튼, 딴생각 말고 일단 무조건 버텨라잉."


전화를 끊고 나자, 내 머리는 또다시 '자신과의 싸움' 모드로 들어갔다.

뭔가 공허하고 씁쓸하였다.



사실 그 뒤의 일에 대해서 말을 하자면, 용선배는 거의 1년 가까이 휴식 기간을 갖는 중이다.


물론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용선배의 장점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할 일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점이다.


재취업을 목표로 한 그는 그 일에 몰두했다. 몇 개월간 쉬엄쉬엄 이력서를 내보다 반응이 없자, 헤드헌터 쪽에 취업 알선을 의뢰했다. 소개받는 곳마다 매칭이 잘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한 단계 더 내려놨다.


그는 작은 회사였지만, 매출액 200억, 600억의 두 개 회사에서 대표이사까지 지낸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허울 좋은 명예나 자존심보다는 현실적인 판단을 했다. 취준생처럼 취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2개월 간 영어공부를 하면서 토익 시험을 준비했다. 원하는 점수를 확보 하자, 이번엔 이력서를 최신으로 꾸며 보고자 마음먹었다.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 시에서 운영하는 '중장년 재취업 이력서 작성' 무료특강을 열심히 듣고 있다고 한다.


나는 누울 자리인지 판단이 서야 다리를 뻗는 스타일이다. 정황상 토익이나 이력서 작성요령이 용선배 정도의 급의 재취업에 영향을 줄 일은 거의 없다. 나 같으면 아예 그런 준비도, 시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다르다.


여전히 재취업의 기미는 없고, 시간을 계속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을 내려놓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의 태도는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내게 자꾸 이직 준비를 해야 한다고 설득한다. 잘리기 전에 지금부터 빨리 준비하란다. 영어공부도 하고, 써먹을 수 있는 책을 계속 읽어야 한단다. 마케팅 전략, 공장 운영기법, 기획 관련 서적을 꾸준히 읽으란다. 내가 가고 있는 방향 하고는 전혀 다른 조언이지만, 그의 진심에 감동을 받았다.)




동생의 선배, "월급 루팡이면 어때? 먹고는 살아야지.."



용 선배와의 통화가 내게 영향을 주긴 했다. 용선배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냉정하게 봤다. 나보다 한참 선배인데도, 새로 할 일을 끝없이 찾아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러나 나는 좌천당한 그날의 배신감과 모욕감, 그리고 억울한 감정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다. 마음을 억누르려 해도 증오심과 복수심이 커져갔다.


다른 한편으론, 일이 전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회사에서의 업무,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흥미는 당연하고, 의지가 없었다. 맡은 일 중에는 특별히 내게 중요한 게 없었다.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시간이 가자, 본능적으로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혹시 회사와 내 주변에 피해를 주진 않을까 자꾸 둘러보게 되면서 주눅이 들었다.




그러던 즈음, 추석을 앞두고 벌초 때문에 대전 본가에 내려갔다.


어머니와 동생네, 누나네 식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술을 한잔했다.


동생은 그날 회사에서 승진을 했다고 한다. 가장 젊고 빠른 승진이었다. 나처럼 직장에서의 고민이 없어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워낙 성실하고 붙임성이 좋아 앞으로도 걱정할 일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술을 한 잔 하면서 얘기를 듣다 보니, 직장에서 있었던 이 일 저 일을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참 열심히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의욕이 넘쳐 앞만 보고 달리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럴 때일수록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순간 내가 좌천당했고, 곧 회사를 그만둘 것 같다는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생생한 '반면교사' 사례일 테다.


최대한 담담하게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타이밍을 기다렸다.

별일 아닌 듯 '최대한 담담하게..'


그때 갑자기 동생이 좀 더 깊은 속내를 털어놨다. 앞날이 걱정이 되긴 한단다. 어차피 평생 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정년까지 일해도 그 후가 걱정이라고 했다. 어쩌면 정년까지 못 가고, 그 안에라도 그만둬야 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일들은 언제든 갑작스럽게 일어난다는 것이다. 잘 나가던 선배들이 보직을 내려놓거나, 조기 퇴직을 하는 경우를 보면 남일 같지 않단다.


그 선배들 얘기할 땐, 마치 내 얘기를 하는 듯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리며 붉어졌다. 내가 당한 꼴을 들킬까 싶어 더욱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동생이 내게 질문을 했다.


"형, 월급 루팡이라고 알아?"


평생 처음 듣는 말이다. 내가 고개를 저으며, 들어본 적 없는 말이라고 하자 설명을 해준다.

회사에서 하는 일없이 월급만 축내는 직원을 일컫는 신조어란다. 자기 회사에서도 '월급루팡' 형님들이 꽤 있다고 했다.


젊을 때 성실이 일해서 현장관리자로 잘 나가던 선배들 중에도 50세 정도에 직책을 내려놓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한다. 그렇게 보직에서 밀려나면 퇴직 때까지 특별한 중요 보직 없이 쉬엄쉬엄 일을 한단다.


나는 정말 내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민망했다. 노쇠하여 제 몫을 하지도 못하면서 음식만 축내는 늙은 말이 떠올랐다.



내가 월급 도둑이 됐다니.. 

나는 입을 꾹 담은 채 듣기만 하다가 사람들이 월급 루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졌다. 분명 젊은 사람끼리 뒤에서 험담을 하며, 일도 제대로 안 하면서 월급만 꼬박꼬박 받아 간다고 욕할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 월급 도둑에 대해서 뭐라고 안 그래? "

"형. 월급 도둑 아니고, 월급루팡."

"아.. 그래. 아무튼, 뒤에서 얼굴 찡그리며 욕할 거 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하냐?"

"아이고.. 무슨 소리야. 그 반대야. 그 형님들이 옛날에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는데.. 후배들도 나중에 똑같이 될 수도 있는데, 욕하면 안 되지.."


동생 반응이 부정이 아니라 긍정 쪽이란 느낌이 들자, 불편했던 내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도, 일을 놀면서 하면 그만큼 한 사람 몫을 다른 사람이 해야 하잖아? 후배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으려면, 알아서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놓고 동생의 반응을 살폈다. 동생은 펄쩍 뛰면서 무슨 소리냐는 반응을 보였다.


"월급 루팡이면 어때? 먹고는 살아야지.."


회사에서 불가피하게 나가 달라고 할 때까지 당연히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든 그 나이 쯤되면 회사를 그만두고는 다른 일을 찾을 수 없단다. 재취업은 당연하고 따로 자영업이나 사업을 할 마땅한 자금도 경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형님들 대단하신 분들이야. 지금은 비록 후배들한테 밀려났지만, 한평생 회사에서 중요한 일 도맡아서 하던 분들이야. 솔직히 그 형님들이 회사에 돈 벌어다 준 공로로 치면 지금 받아 가는 월급은 아무것도 아니지 뭐."


어..? 맞다. 맞는 말이다. 

그 말을 듣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따져보면, 나도 그런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동생 말소리를 뒤로하고, 허공을 보면서 잠시 혼자 생각에 빠졌다.




그간 해마다 수천억씩 매출을 내고 있는 그 제품들.


대부분 내가 핵심 개발자였잖아. 세상에 없던 기술과 제품을 내 아이디어와 손, 발로 만들어낸 게 얼마나 많은데... 그것들 설계도 내가 다하고, 직접 만들어서 시험도 하고. R&D 중요한 고객 대응도 내가 다했어. 맞아.. 특허도 수십 개씩 냈잖아.


회사에 기여한 바로 치면, 나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거 맞잖아. 매출 50억짜리 회사를 지금 수천억짜리로 키우는데 내가 기여한 게 얼만데.. 이건 정말이야. 자아도취해서 하는 생각이 아니야.


회사도 인정했잖아. 그 공로 때문에 수많은 상장과 상패들을 받았고, 거듭해서 특진을 했던 거야. 그게 모두 다 그 증거잖아. 역사 상 나보다 포상 많이 받은 사람도, 이른 나이에 초고속 승진을 한 사람도 없잖아. 그래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그 간의 그 수조 원어치 누적된 매출의 최대 공로자 중 한 명이야.


이 정도면 나도 '월급루팡'할 자격은 충분히 있는 거 아니야?'




나도 모르게 허공을 보며 미소를 실룩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동생이 말했다.


"아주 해결사야. 해결사... 응? 형!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흠칫 놀라, 정신을 차렸다. 동생은 그 월급루팡 형님들이 현장 노하우가 엄청나다는 얘기를 하던 중이었다. 슬렁슬렁하다가도 현장에 문제 생기면, 어려운 건 그 형님들이 다 해결한다며 존경스럽단 얘기를 했던 것이다.


내 표정이 한 껏 밝아졌다. 동생에게 맞장구를 치며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네 말이 맞네. 월급 루팡이면 뭐 어때? 먹고는 살아야지.."

"그리고, 그 정도면 월급루팡 할 자격 충분하다. 야."


내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거실 벽에 부딪힌 뒤 허공을 타고 내 귀로 돌아왔다.

마치 누군가가 지친 나를 위해, 위로해 주는 말 같았다.





어머니의 만류, "아들아, 20년은 채워야지.."



다음날, 나는 어머니에게만 따로 드릴 말씀이 있다며 말을 꺼냈다.


회사에서의 곤궁한 내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젠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는 마땅치 않으신 표정이셨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 와도 회사는 절대 그만 두면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어머니께서 지나치게 걱정하실까 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건물을 사서 건물주가 되면, 일 없이도 임대수입으로 먹고살 수 있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위험한 일은 하지 말라며 걱정하셨다. 그냥 죽어도 살아도 회사에 붙어 있어야 한다고 하신다. 회사는 절대 그만두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노파심이다.



그러시면서 조심스럽게 절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셨다. 스님께서 올해 큰 아들 운세가 매우 좋다고 했단다. 분명 승진을 할 운세라고 말씀하셨단다.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승진이라니……


‘승진은커녕 좌천돼서 자리에서 쫓겨났는데.. 스님이 많이 잘 못 짚으셨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회사원에서 건물주 자본가로 승진한다는 의미였을까?’


어쩐지 추진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설마 이러다 연말에 임원으로 승진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20년은 꼭 채워야 한다.’


어머니께서 거듭 강조하신 말씀이다. 노후에는 국민연금이 아주 중요한데, 20년은 꼭 채워야 혜택이 많아진다. 절대 만 20년이 되기 전에는 그만두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추가 납부도 해도 된다 했지만, 어머니께서는 사람일은 모르는 거다. 무조건 만 20년은 꼭 채워야 한다. 거듭해서 말씀하셨다.


내년 20년을 채우고 나서도 그만둬야 될 것 같으면 다른 일을 소개해 주겠다고 하셨다. 어머니 친구분이 하시던 주류 유통업을 말씀하신다. 그 만 두시고 쉬시려고 한다고 하니 그게 어떻겠냐고 하셨다. 수입이 꽤 좋은 일이라 남 주긴 아깝단다.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신다.


내가 꿈꾸는 일하고는 거리가 멀다. 내가 해본 적도 없는 그런 일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했다. 나는 재빨리 화두를 돌렸다.


어머니랑 계속 대화를 하다 보니, 머릿속이 저절로 정리됐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 만 20년은 채워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다음 해 2월 1일이 내 퇴사 목표일이 되었다. 5개월 정도만 참고 견디면 되는 상황이었다. 일단 해보자는 생각을 하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차례를 다 지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어머니는 같은 말씀을 하신다.

회사 다니는 것만큼 안전하고 좋은 일이 없다. 만 20년은 무조건 채워야 한다. 절대 퇴사하지 말아라. 세뇌를 시키 듯 재차, 삼차 말씀하셨다.




나는 20년 직장 생활 중 최대 고비의 순간에 서 있었다. 갈팡질팡 고민만 깊어질 뿐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리고 내 퇴직과 관련된 정답을 알만한 다섯 명의 생각을 들었다.


전형과 용선배는 일단 무조건 버티라는 말을 한다. 동생은 월급루팡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어머니는 회사를 그만두면 큰 일 난다는 생각뿐이시다. 결론은 모두 제 발로 나가선 절대 안 된다는 말이다.


유일하게 한 사람만이 '당장 그만두라' 말했다. 아내다.

그녀는 일단 그곳에서 벗어나서, 정신부터 차려야 한다. 둘이 함께 하면 무엇이든 먹고살 길이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내가 믿고 물을 만한 사람들의 의견에 왜 차이가 있을까..? 모두 나를 위해 진심으로 해준 말이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 나는 그 정답을 정확히 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누구 말을 따르는 게 옳았을까?


(계속..)



이전 13화 묻지 마, 나도 권고사직은 처음이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