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233번.
정상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페널티킥 앞의 골키퍼처럼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이 내보이는 불안의 단면들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무질서한 이야기 전개, 강박적인 말놀이 등은 소통 불가능한 현대 사회의 불안을 그대로 드러내줍니다. "문학은 언어가 가리키는 사물이 아니라 언어 그 자체"라고 말한 페터 한트케는 해고와 살인이라는 사건이 아니라, 소외와 불안이라는 심상으로 작품을 이끌어갑니다.
<< 요제프 블로흐의 시선 >> - 주인공으로 유명한 전직 골키퍼로 건축 공사장에서 일합니다. 지각을 한 날 자신을 보는 감독의 눈길을 해고의 표시로 지레짐작하고 공사장을 떠납니다. 친구들이나 전처와도 소통이 단절된 상태로 도심을 배회하던 중 극장 판매대 여직원과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나 "일하러 가지 않냐?"는 질문에 그녀를 살해하고 경찰의 추적을 피해 국경 마을로 도피합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과 축구 경기를 관람하게 됩니다.
* 화창한 10월 어느 날이었다. (···)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 되도록 많은 걸 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극장 안으로 들어와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 " 오늘 일하러 가지 않으세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갑자기 그는 그녀의 목을 졸랐다. 너무 세게 졸랐기 때문에 장난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바깥 복도에서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공포심으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 블로흐는 죽은 여자 매표원 곁에서 5센트짜리 미국 동전이 발견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 (···) 그 밖에도 대화 도중 틈틈이 끼적거린 것 같은 글씨가 신문 가장자리 여백에서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 글씨는 매표원이 쓴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 글씨가 방문자에 대한 단서가 될 수 있을 듯해 조사중이라고 했다.
* 그는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보다 골키퍼가 더 적극적이라고 설명했다.
* 그에게는 부분들이 문패처럼 생각되었다. '조명 문자 광고'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귀걸이를 한 여종업원의 귀를 모든 사람을 위한 신호로 보았다.
* 그가 바라보는 모든 것은 실제로 그의 관심을 끌었다. 풍경들은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를 위해서 특별하게 만들어진 것 같았다. 어딘가에 유용하게 사용되기 위해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았다. 그가 바라보는 주위 풍경들은 글자의 형상으로 그의 눈에 확 들어와 박혔다. '호출 부호 같군.' 하고 블로흐는 생각했다. 지시문 같은!
* 학교 일꾼이 (···) 아이들이 학교를 떠날 때까지 말 한마디 제대로 못 배운다는 사실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마지막까지 진정한 자신만의 문장을 한 마디도 말할 수 없고, 거의 모두가 몇몇 단어들로만 이야기할 뿐이라고 했다. 그들이 배운 것은 그저 특별한 논제를 줄줄 외워서 기계적으로 암송하는 것뿐이고, 그걸 넘어 완전한 문장으로 이야기할 능력은 바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 "마주 서 있을 때는." 하고 세관원이 계속했다. "상대방의 눈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가 달아나기 전에 두 눈이 보는 쪽은 그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암시합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두 발을 주시하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쪽 발로 서 있는가? 서 있는 발의 방향으로 뛰어가기 마련이죠. 그러나 속이고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려면, 달리기 전에 서 있던 발의 방향을 바꾸어야 하고, 그러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사이 그를 붙잡을 수 있는 거죠."
* "공격수나 공으로 부터 시선을 돌려 골키퍼만 바라보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죠." 하고 블로흐가 말했다. "공에서 시선을 돌리는 것은 정말 부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그는 사람들이 공 대신, 양손을 허벅지에 대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가 뒤로 뛰어들어 왔다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자기편 수비수들에게 고함을 지르는 골키퍼를 쳐다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골문을 향해 슈팅이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골키퍼를 보게 되죠."
* 페널티킥이 선언되었다. 관중들은 골문 뒤로 달려갔다. (···) 페널티킥을 찰 선수는 슛 지점에 공을 갖다 놓았다. 그런 다음 그도 뒷걸음질로 페널티에어리어 밖으로 나갔다. "공을 차기 위해 키커가 달려 나오면, 골키퍼는 무의식적으로 슈팅도 되기 전에 이미 키커가 공을 찰 방향으로 몸을 움직이게 됩니다." 하고 블로흐가 말했다. "골키퍼에게 한 줄기 지푸라기로 문을 막으려는 것과 똑같아요." 키커가 맹렬히 달려왔다. 환한 노란색 스웨터를 입은 골키퍼는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페널티 키커는 그의 두 손을 향해 공을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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