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40번.
유대인 소년이 강제 수용소에 끌려가 고통받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홀로코스트 사건 자체보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이후의 삶에 더 집중합니다. 나치 군인들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도 하면서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아우슈비츠의 참혹상을 그려낸 점에서, 수용소의 아픔과 고통을 역사성에 근거해 주관적으로 기술한 기존의 다른 홀로 코스트 작품들과 차별화 됩니다. 작가는 2002년 노벨문학상 수상 인터뷰에서 "경제적으로 좀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밝혔을 정도로 쪼들리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 죄르지 쾨베시의 시선 >> - 열 네살 소년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노동 봉사 명령을 받고 어디론가 끌려가고, 자신도 아우슈비츠를 거쳐 차이츠 수용소로 가게 됩니다.
* 아저씨는 아빠가 떠나면 (···) 이제는 곧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 내가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이유인즉 내 운명이 지금까지처럼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 이 운명이란 유대인들이 순종과 희생으로 인내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지속된 박해라는 것이다.
* 눈물을 흘린 것은 결국 잘한 일이었다. 아빠가 눈물 흘리는 내 모습을 보고 흡족해한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 내 생각에 최소한 그날 하루만큼은 불쌍한 아빠가 좋은 기억을 가진 채 노동 수용소로 떠나게 한 듯 싶다.
* 나는 공문을 통해 "당신은 정규 직장에 배속되었습니다."라는 통지를 받았다. (···) '셸 정유회사'라는 이름이 붙은 주식회사였다. 원래 노란 별을 단 사람은 도시 경계 밖으로 나갈 수 없었지만 나는 이곳에서 일하게 된 덕에 일종의 특권을 부여받았다.
* 그들이 실제로 그 아이를 증오하거나 개인으로서의 그 아이를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유대인'이라는 개념 자체를 증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버스 기사와 몇몇 승객들이 내가 있는 뒤쪽을 향해 혹시 유대인이 타고 있으면 버스에서 내리라고 했다. (···) 그나마 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말은 우리 일을 내일 조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 후 헌병들을 향해 온 광장에서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그때까지 이 유대인 놈들을 그들에게 어울리는 마구간으로 끌고 가 밤새 가둬 두라고 명령했다.
*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보게 된 나는 깜짝 놀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가까이에서 줄무늬 늬죄수복에 머리를 빡빡 밀고 둥근 모자를 쓴 죄수들을 봤기 때문이다.
* 모든 새로운 일은 어디에서나 처음에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다. 심지어 강제 수용소에서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처음에는 착실한 죄수가 되는 데 만족했고 나머지 일은 어떻게든 되리라 생각했다. 이것이 대체로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것에 기초해 행동했다.
* 아우슈비츠에서도 지루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물론 특권을 받은 사람이라는 가정하에 말이다. 우리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 기다림은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지루함과 이상한 기다림, 나는 이 인상이 아우슈비츠의 진정한 실체를 대략적으로 표현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 관점에서 말이다.
* "점호!" 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전적으로 운에 달려 있다. 한 두 시간, 길어야 세 시간이 지나면 천막 안 좁은 길이 크게 혼잡해지는데 양쪽에는 이곳에서 '박스'라고 부르는, 잠자리로 사용하는 삼 층짜리 상자들이 줄지어 있다. 그러고 나서 잠시 후 천막 안이 어두컴컴해지면 속삭임이 시작되는데 과거와 미래와 자유에 대해 얘기 나누는 시간이다. 고국에서는 모두 전형적으로 행복한 사람들이었고 많은 이들이 부유했음을 알게 되었다.
* 어떤 고집이나 기도나 도피로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배고픔이었다. (···) 이곳에서는 내 몸이 망가지는 데 석 달이면 충분했다. 내 몸이 얼마나 망가져 가는지를 매일 반복해서 확인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만큼 고통스럽고 짜증나는 일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 나는 앞을 내다봤지만 겨우 내일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내일도 오늘과 같은 날이거나 아주 비슷한 날이다. 물론 그것고 운이 좋은 경우에 말이다.
* 솔직히 말해 나는 수용소에서 완전한 평안을 경험한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가능성이 없을 정도로 상황을 절망적으로 인식한 적도 없다. 물론 방법을 찾아보려 노력한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 저 아래 쪽에서 솥단지를 지고 가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어깨 위에 막대기를 멨고 막대기 위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단지가 올려져 막대기와 솥단지의 무게 때문에 끙끙댔다. (···) 이미 굳은 가슴속에서 파도가 밀려오듯 갑자기 강렬한 감정이 일었고 나는 차갑고 축축한 얼굴 위로 뜨거운 눈물을 쏟아 냈다. (···) 이때 가슴속에서 한 가지 욕망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그 욕망의 비합리성 때문에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더 끈질기게 욕망이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그것은 이 멋진 강제 수용소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는 욕망이었다.
* 나는 집을 떠났을 때와 대략 비슷한 계절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 시체들을 묻은 커다란 구덩이들 위에는 풀이 돋아나 있었다.
* 그는 자신을 신문 기자라고 소개했다. (···) 그는 우리의 "우연한 만남"을 "운 좋은 우연"으로 만들어 가자고 했다. 그러면서 기사를 써 보자고 제안했다. (···) "이 일은 더 이상 너만의 일이 아니야. 우리의 일이기도 하고 전 세계의 일이기도 해." 나는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 내가 말을 계속했다. "저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끔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러자 그들이 깜짝 놀라는 것 같았다. (···) 그때 나는 이른바 '고난의 시기'에 그들은 무엇을 하고 지냈느냐고 물었다. "글쎄······ 그냥 살아갔지." 한 노인이 대답했다. "살아남으려고 안간힘을 썼지."
* 주어진 하나의 운명을 버텨 냈다. 그것은 나의 운명이 아니었지만 나는 끝까지 살아 냈다.
* 운명이 있다면 자유란 없다. 그런데 만약 반대로 자유가 있다면 운명이란 없다. 그 말은 우리 자신이 곧 운명이라는 뜻이다.
* 그렇다 어찌 보면 그곳에서의 삶이 더 순수하고 단순했다.
* 내가 나아갈 길 저만치에 행복이 피해 갈 수 없는 덫처럼 숨어서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안다. 가스실 굴뚝 옆에서의 고통스러운 휴식 시간에도 행복과 비슷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내게 수용소에서의 역경과 끔찍한 일들에 대해서만 묻는다. 나에게는 이러한 경험들이 가장 기억할 만한 일들로 남아 있는데 말이다. 그래, 사람들이 나중에 묻는다면 그때는 강제 수용소의 행복에 대해 얘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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