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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은 과학을 기다리는 거야 - <구덩이>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153번.

by 이태연






러시아의 '조지 오웰'로 불리는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디스토피아 소설입니다. 엄마를 잃고 노동자들이 집을 짓고 있는 곳으로 온 소녀 나스탸는, 사회주의의 집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인민의 희망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모든 희망을 담았던 구덩이가 나스탸의 무덤이 된 것은,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으나 결국 러시아에 기아와 황폐함을 가져다 준 스탈린의 집단화 정책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습니다.



<< 작가의 시선 >> - 첫 번째 등장인물인 보셰프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인물입니다. 직장에서 해고당한 후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게 되고, 무산계급 인민이 모두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주의의 집을 짓는 '구덩이'의 현장에 도착하게 됩니다.


* "보셰프 동무, 행복은 물질주의에서 생기는 것이지 의미에서 생기는 게 아니오. 우리는 동무를 옹호해 줄 수 없소." (···) 보셰프는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가장 하찮은 일이라도 부탁하고 싶었다. 생각은 작업 외 시간에 할 작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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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꾼들은 진지하게 씹기 시작하여 의무적으로 음식을 섭취했으나, 즐기지는 않았다. (···) 진실을 자기 안에 간직하고도 기뻐하지 못하고 슬프게 살아가는 이 남자들을, 보셰프는 미약한 희망과 상실의 두려움을 느끼며 바라보았다.


* 땅은 오직 파는 사람의 힘과 참을성에만 응답하며 삽 아래서 계속 깊어만 갔다. 보셰프는 때때로 몸을 굽혀 조약돌이나 흙덩이를 주워 간직하기 위해 작업복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진흙 속, 축적된 어둠 속에 있는 거의 영원한 조약돌의 존재가 기쁘면서도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것은 조약돌이 거기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고, 그러므로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더 큰 이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 "당신들은 세상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하더군요." 보셰프가 말했다. "하지만 당신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땅을 파고 자는 것밖에 없소! 난 당신들을 떠나서 협동농장을 떠돌며 구걸이라도 하는 편이 낫겠소. 진실 없이 살기란 내겐 어차피 부끄러운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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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이면 여러 가지 꿈이 노동하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 그러나 낮 시간에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허리를 구부리고 살아간다. 참을성 있는 육체로 대지를 파괴할 수 없는 건축물의 영구적인 뿌리가 신선하고 깊은 구덩이에 놓일 수 있도록.


* 짐승은 거의 삶의 의미를 느끼는 것처럼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그 자신은 가만히 서서 미래로 가는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보셰프는 슬퍼졌다. 결국, 저 밖에는 정말 뭔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 오두막에서 잠을 자던 어린 소녀들과 청소년들은 이제 깨어 있었다. (···) 가정의 가난도 그들은 특별히 주의하지 않고 견뎌 냈는데, 아직 대답 없는 행복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의지하여 살았기 때문이고, 그 행복은 어쨌든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 집단농장 사람들은 그를 따라와 멈추고 사방을 파고 있었다. 빈농과 중농 모두 그토록 삶의 열정을 가지고 일해서, 마치 구덩이의 심연 속에서 영원히 구원을 찾고자 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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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체프의 말 >> - 다리가 없는 불구의 몸을 수레에 싣고 다니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들이받아 버립니다. 도시를 향해 기어간 후 다시 구덩이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 더 발달된 과학을 성취하면 썩어 버린 사람들을 부활시킬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 마르크스주의는 뭐든지 할 수 있어. 아니면 어째서 레닌이 멀쩡한 몸으로 모스크바에 누워 있겠어? 레닌은 과학을 기다리는 거야. 부활하고 싶은 거란 말이야. 나도 레닌에게 할 일을 찾아 줄 거야. 레닌에게 추가로 한두 방 얻어맞아야 하는 게 누군지 가르쳐 줄 거라고! 어쨌든 난 첫눈에 기생충을 알아볼 수 있거든!"


* 이 빌어먹을 혁명! 제일 잘났다는 그 혁명은 어딨어? 이리 와, 불구자 병사한테 한번 당해 봐라!






















<페이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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