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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May 15. 2024

잘못된 것은 삶보다는 당신이다 - <월든>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95번. 





  월든 호숫가에서의 생활은 소로에게 '자기 탐구의 시간'이 되어줍니다. 이 작품은 경쟁 사회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유롭고 행복한 삶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는 쉼표 같은 책입니다.  작가는 나무의 나이테를 관찰하다 오랫동안 앓아 온 폐결핵이 악화되어,  "낙엽은 우리에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라는 말을 남기고 마흔다섯 살 나이에 숨을 거두게 됩니다.  



 【 콩밭 】


  *  고대의 시와 신화를 보면 적어도 농사가 한때는 성스러운 예술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 농업의 거룩한 기원을 환기하는 축제나 행렬이나 의식 같은 것도 없다.  기껏해야 가축 품평회나 추수감사절 정도만 남아 있을 뿐이다.  농부의 마음을 유혹하는 것은 가욋돈이나 진탕 먹고 마시는 잔치뿐이다. 


  *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보살핀 넓은 밭은 경작자인 나한테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나보다는 자기한테 더 친절하게 영향을 주는 것,  즉 자기에게 물을 주고 자기를 푸르게 하는 자연에 의지한다. 









【 마을 】


 *  오전에 김을 매거나 글을 읽고 쓴 다음에 나는 대개 호수에서 미역을 감고 만처럼 후미진 곳을 가로질러 헤엄치며 몸에 붙은 노동의 먼지를 씻어 내거나 공부로 인해 생긴 주름살을 폈다.  그리고 오후에는 완전한 자유인이 되었다.  나는 매일 또는 하루걸러 마을로 천천히 걸어가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  원고를 넣어 둔 책상 말고는  (···) 밤이든 낮이든 문을 잠근 적이 없었다.  며칠 집을 비울 때도 그랬다.  이듬해 가을 메인주의 숲속에서 보름을 보냈을 때에도 문을 잠그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집은 호위병들이 에워싼 궁궐보다 더 존중을 받았다.  숲을 산책하다 지친 사람은 내 집 난롯가에 앉아 몸을 녹이면서 쉴 수 있었고,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탁자에 놓인 몇 권의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으며,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찬장을 열어 내가 점심에 무엇을 먹고 남겼는지,  저녁 식사로는 무엇을 먹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온갖 부류의 많은 사람이 집 앞의 길을 통해 호수로 갔는데도 그들로 인해 불편을 겪은 적은 없었다. 









【 호수 】

 

  *  월든의 경치는 아름답지만 다른 호수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라 웅장함과는 거리가 있다.  (···) 대략 길이가 800미터에 둘레가 2.8킬로미터이며, 면적은 약 25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맑고 깊은 초록빛 샘이다.  이 호수는 소나무와 떡갈나무가 우거진 숲 한복판에 자리 잡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으로 (···) 똑같은 지점에서 바라보는데도 어떤 때는 푸른색이고 어떤 때는 초록색이다.  


  *  먼 옛날 인디언들이 이곳의 언덕에 모여 의식을 치렀는데,  그 언덕은 지금의 호수가 땅속으로 함몰된 깊이만큼 하늘로 높이 솟아 있었다.   (···) 의식이 한창 진행될 때 언덕이 심하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내려앉았다.  '월든'이라는 노파만 간신히 도망쳐 목숨을 건졌고,  그때부터 노파의 이름을 따서 호수를 월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언덕이 흔들릴 때 돌멩이들이 비탈을 굴러 내려와 지금의 호수 기슭을 이루었다고 했다.  


  *  청명한 날에 월든 호수는 숲의 완벽한 거울이다.  그 가장자리를 장식한 돌들이 내 눈에는 더 희귀하거나 드문 값진 보석처럼 보인다. 호수처럼 아름답고 순수하며 동시에 거대한 것이 지구상에 또 있을까.  하늘을 담은 물,  여기에는 울타리도 필요 없다.  수많은 종족이 찾아왔다가 돌아갔지만 호수를 더럽히지 못했다.  호수는 어떤 돌로도 깨뜨릴 수 없는 거울이다.   









 *   비록 돈은 없었지만 햇빛 찬란하게 빛나는 시간과 여름날을 마음껏 누리고 아낌없이 썼다는 점에서 나는 부자였다. 그런데 내가 호숫가를 떠난 뒤로  (···) 호수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통나무와 낡은 카누,  그리고 호수를 에워쌌던 울창한 숲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  내가 아는 월든의 모든 특성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된 것은 순수성이 아닌가 싶다.  (···) 벌목꾼들이 맨 먼저 기슭 이곳저곳을 벌거숭이로 만들었고,  아일랜드 사람들이 호숫가에 돼지우리 같은 지저분한 집을 지었고,   철도가 호수의 경계를 침식했고,  한때 얼음 장수들이 얼음을 걷어 가기도 했는데 호수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내가 젊어서 보았던 호수 그대로다.  변한 것이 있다면 나 자신뿐이다.  호수에는 늘 잔물결이 일었지만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주름살은 단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월든은 영원히 젊다.


  *  인간은 자연의 품에 살면서도 자연의 가치를 인정하거나 고맙게 여길 줄 모른다.  










【 이 높은 법률 】


  *   상상력에 방해되지 않는 소박하고 정결한 음식을 준비하고 요리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육체를 위해서만 먹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위해서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육체와 상상력이 같은 식탁에 함께 앉아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  음식을 먹거나 마시든,  다른 사람과 함께 살든,  잠을 자든 어떻든 육체적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모든 행위는 결국 똑같다.  모두 하나의 욕망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이 얼마나 욕망에 젖어 사는지를 알려면 그가 그 같은 행위들 가운데 한 가지를 어떻게 하는지 눈여겨보면 된다.  불순한 사람은 순수하게 설 줄도 앉을 줄도 모른다.  (···)  순결하고 싶으면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순결이란 무엇인가?  자신이 순결한지 어떻게 확신하겠는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우리는 순결의 미덕에 대해 수없이 들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저 주워들은 소문에 다라 이러쿵저러쿵 멋대로 떠들 뿐이다.  지혜와 순결은 노력에서 나온다.  게으르면 무지와 육체적 욕망에 휩쓸리게 된다. 


  *  우리는 모두 조각가이자 화가이고,  우리가 쓰는 재료는 우리 자신의 살과 피와 뼈다.  고결함은 인간의 용모에 품위를 더하고,  천박함이나 감각적인 욕망은 그것을 짐승처럼 바꾸어 놓는다. 










【 봄 】


  *  폭풍이 몰아치는 겨울이 화창하고 온화한 날씨로 바뀌고, 어둡고 무기력한 시간이 밝고 탄력 있는 시간으로 바뀌는 시점에서 만물은 중대한 선언을 한다.  변화의 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찾아온다.  (···)  한 차례 가랑비만 내려도 풀은 몇 배 더 푸르러진다. 


  *  아무리 작은 이슬방울이 떨어져도 그 힘을 인정하는 풀잎처럼 주어진 모든 일을 유익한 방향으로 이용한다면 우리는 보다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미 봄이 와 있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겨울에 머문 채 뭉그적거린다.  상쾌한 봄날 아침에는 누구든 죄를 용서받는다.  그런 날은 악과도 휴전한다. (···)  우리가 스스로 순수를 회복하면 이웃의 순수도 알아본다. 


  *  내가 숲에서 보낸 첫해의 삶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이듬해도 비슷했다.  1847년 9월 6일 나는 마침내 월든을 떠났다.  










【 맺음말 】


 *  나는 숲에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숲을 떠났다.  내가 살아야 할 삶이 몇 가지 더 남아서 숲속 생활에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던 것이 그 이유다.  우리는 신기할 정도로 아주 쉽게,  그리고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우연히 어떤 길을 걸었다가 그 길을 자주 다녀서 일종의 관례처럼 고착화한다.  


  *  내가 숲속에서 생활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내 집 문 앞에서 호숫가까지 몇 차례 왔다갔다 하자 길이 생겼다.  (···) 땅의 표면은 아주 부드러워서 사람이 밟으면 자국이 남기 마련이다.  마음이 다니는 길도 마찬가지로 자국이 남는다.  그렇다면 세상의 간선 도로들은 얼마나 닳았고,  얼마나 먼지투성이이겠는가?  전통과 순응의 바큇자국은 또 얼마나 깊이 새겨졌겠는가?  나는 선실에 편안히 앉아 여행하기보다 세상의 돛대 앞과 갑판 위에 서 있고 싶었다.  그곳에서는 산과 산 사이를 비추는 달빛을 가장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삶을 단순화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우주의 법칙도 간결해져 고독은 더 이상 고독이 아니고,  가난은 가난이 아니며,  약점 또한 약점이 아니게 될 것이다. 


  *  왜 우리는 성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서두르고 쓸데없는 일에 덤벼드는가?   (···)  대체로 사람들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엉뚱한 곳에 있다.  (···) 아무리 삶이 초라해도 받아들이고, 또 살아라.  외면하지 말고 욕하지 말아라. 잘못된 것은 삶보다는 당신이다. 


  *  우리가 깨어 있는 날이어야만 동트는 새벽이 찾아온다. 앞으로 더 많은 새벽을 맞이할 수 있다.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페이지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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