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282번.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음. 엄청난 불운을 상속받음." 이 소설을 구상하며 호손이 자신의 작업 공책에 메모했던 내용입니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탐욕에 대해 경고하는 이야기로, 일곱 박공의 집이라고 불리는 집은, 하나의 등장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 작가의 시선 >> - 노처녀 헵지바는 상류층임에도 생계를 위해 가게를 열지만 무능력합니다. 감옥에서 나온 오빠 클리퍼드 역시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어느 날 땅문서를 찾아 이들을 협박하던 핀천 판사는 자신의 선조인 핀천 대령처럼 저택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맙니다. 이에 남매는 일곱 박공의 집을 떠나게 되고, 클리퍼드는 초상화 뒤에 숨겨진 재산에 대해 기억해냅니다.
* 삶이란 대리석과 진흙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넘어서는 포괄적인 공감에 대한 깊은 믿음이 없다면, 운명의 냉혹한 얼굴에 서리는 누그러지지 않는 찌푸린 인상과 모욕적인 비웃음만을 알아차리게 될 수도 있다. 시적 통찰력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이것저것 뒤죽박죽 섞인 이러한 영역에서, 지저분한 옷을 입을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과 위엄을 선별해 내는 재능인 것이다.
* 헵지바는 평생 무척이나 아름답고 세련되었던 한 백 년 전쯤의 엘리스 핀천이라는 인물에 대해 다소 모호하면서도 아주 장황하게 얘기했다. (···)이 사랑스러운 엘리스는 어떤 엄청나고도 불가사의한 재난을 만나 창백해지고 여워어 가더니 점차로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도 그녀는 일곱 박공의 집에, 그것도 아주 여러 번 나타났다고 하는데, 특히 핀천 가문의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려 할 때 슬프고도 아름답게 하프시코드를 연주한다고 한다.
* 그가 상당히 분명하게 힘을 주어 외쳤다. "왜 저 밉상스러운 그림을 벽에다 계속 붙여 놓는 거지? (···)대체 왜 이 음침한 집에서 살아야 하는 거야?"
* 가련한 헵지바의 타고난 기질에는 고귀하고 관대하며 고결한 무언가가 있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고 다만 자신이 너무나 사랑하는 오라버니, 과거의 모습이든 될 수도 있었을 모습이든 너무나 경탄해 마지않는 오라버니, 그리고 온 세상에서 홀로 전적으로, 전혀 흔들림 없이, 어느 순간에나 평생토록 믿어 왔던 오라버니를 위해 정성을 다할 기회만을 원했다.
* 일곱 박공의 뾰족지붕 위에서 햇빛이 사라지자 클리퍼드의 눈에서도 생기가 사라졌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잃어버린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더욱 간절하게 그것을 원하는 듯이 슬픔에 차서 멍하니 주변을 둘러 보았다. "난 행복을 원해!" 마침내 그가 단어를 뭉뚱그리며 쉰 목소리로 불분명하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 왔는데! 너무 늦었어! 너무 늦었다고! 행복을 원하는데!"
* 운명의 여신은 당신을 위해 행복을 마련해 놓지 않았다. 대대로 내려오는 가옥에 마련된 조용한 집과 피비와 함께하는 긴 여름날 오후, 그리고 일요일에 베너 아저씨와 은판 사진사와 더불어 즐기는 이 축제가 행복이라고 불릴 만하지 않다면 말이다! 왜 행복이 아니겠는가? 딱 그것이라고 할 수 없을지 몰라도 놀랍도록 그와 유사하고, 너무 자세히 따지다 보면 모두 사라져 버릴 만큼 형체도 없고 잡을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러하다. 그러니까 할 수 있을 때 그 행복을 잡아라. 투덜대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최대한 누려라!
* 일곱 박공의 집에서는 무겁고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며칠이 지나갔다. (···)동쪽에서 태풍이 몰려와 지치는 기색도 없이 낡은 집의 거무스레한 지붕과 벽을 전보다 더욱 쓸쓸하게 만드는 데 열심이었다. 하지만 그 내부는 쓸쓸하기가 바깥 모양에 비할 바 아니었다.
* 헵지바는 냉혹한 친척의 불길한 방문 때문에 불쌍한 오빠가 완전히 미쳐 버린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또한 클리퍼드가 이렇게 정신 나간 듯한 증상을 보이는 동안 판사가 가만히 있는 이유를, 그가 교활하게 지켜보기 때문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었다. (···)"우리를 압박하던 것이 사라졌어, 헵지바. 이 오래되어 지친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 그녀는 정신없이 부들부들 떨면서 두려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뭔가를 물어보듯 오빠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뚫어지게 보았다. (···)"가자!" 클리퍼드가 평소 모습과는 너무나 다르게 순식간에 결정을 내리는 말투로 말했다. "여기 너무 오래 있었어! 이 오래된 집은 채프리 사촌에게 줘 버리자고! 걔가 잘 관리하겠지!"
* 핀천 판사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옛집에 혼자 앉은 채 내버려 두고 남매는 그렇게 집을 떠났다. (···)핀천 판사의 방문까지 포함해 지난 사건들 중 어느 것도 실제일 리 없다는 생각에 여전히 사로잡힌 일곱 박공의 집의 은둔자는 오빠의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 "클리퍼드 오라버니! 이게 꿈은 아닌 거죠?"
* "우린 여기 세상 속에 있잖아, 헵지바. 삶의 한가운데에! 동료 인간들의 무리 속에! 행복해지자고! " (···)헵지바가 생각했다. '행복이라니! 오라버니는 이미 미쳐 버린 게야. 하긴 한 번이라도 내가 완전히 잠이 깬 제정신이라고 느낀다면 나 역시 미쳐 버리겠지!'
* "제 머리에 자꾸 일곱 박공의 저택이 떠오를 때마다, (···)셔츠 앞자락에 볼썽사나운 핏자국을 묻힌 채 떡갈나무 안락의자에 앉아 죽어 있는, 완전히 달리 냉엄한 표정을 지닌 나이 지긋한 사람의 환영이랄까 그런 모습이 곧바로 떠오릅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가 집 전체를 오염시켜요. 그래서 거기서는 성공할 수도 없고 행복할 수도 없고 신이 내게 행하고 즐기라고 지정해 준 일을 할 수도 없고 즐길 수도 없다니까요!" (···)노신사가 클리퍼드를 진지하면서도 약간 걱정스럽게 응시하며 말했다.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있다면 그럴 수도 없겠지요!"
* 그는 노신사 쪽으로 몸을 돌려 대화를 다시 시작했다. "토대를 보강한 지지대 아래 죽은 시체를 누이고 인상을 찡그린 초상화를 벽에 걸며, 그렇게 스스로 불행한 운명으로 변해 버리고서 몇 대 후손들까지 거기서 행복하기를 바라다니요! 황당무계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내 마음속에서 그런 집을 보고 있거든요."
* "여기 찍은 지 삼십 분이 안 된, 같은 얼굴이 있어요." 그녀에게 다른 사진을 내밀려 그가 말했다. (···)"이건 죽은 사람이잖아요!"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며 피비가 부들부들 떨었다. "핀천 판사가 죽었어요!"
* 핀천 판사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은 클리퍼드에게 항시적으로 기운을 북돋으면서 궁극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낳았다. 강하고 육중한 그 남자는 지금까지 내내 클리퍼드의 악몽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운명이 바뀌자마자 곧 클리퍼드와 헵지바, 그리고 어린 피비는 예술가의 찬동을 얻어 음울하고 낡은 일곱 박공의 집을 떠나 작고한 핀천 판사의 우아한 시골 별장에 잠시 동안 자리를 잡기로 결정했다.
* "저 초상화!" 그 냉엄한 시선에 움츠러드는 듯 클리퍼드가 말했다. "저걸 볼 때마다 언제나 확실히 잡히지는 않으면서도 계속 떠오르는 아주 오래되고 어렴풋한 기억이 있어. 재산이야.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 엄청난 재산! (···)비밀 용수철!" 클리퍼드가 외쳤다.
* 홀그레이브가 누르는 힘으로 인해 초상화는 액자와 모든 것이 함께 있던 자리에서 갑자기 뚝 떨어져 바닥에 엎어졌다. 그러자 벽 안쪽에 우묵하게 들어간 공간이 나타났고, 거기에는 어떤 물건이 놓여있었는데 한 세기의 먼지를 오롯이 뒤집어 쓴 탓에 접힌 양피지 문서임을 얼른 분간할 수 없었다. (···)거기에는 핀천 대령과 그의 후손에게 동쪽 지역의 어마어마하게 넓은 땅을 영원히 넘겨 준다는 내용과 함께 몇몇 아메리가 원주민 추장의 그림문자 서명이 담겨 있었다.
* 클리퍼드와 헵지바는 조상 대대로 살던 집에 마지막 작별 인사를 고했는데, (···)몰의 우물은 홀로 남겨졌음에도 만화경 같은 그림을 계속해서 뽀글뽀글 뿜어 올렸는데, 선견지명을 지닌 눈이라면 그 속에서 헵지바와 클리퍼드, 그리고 이야기 속 마법사의 후손과 그가 마법으로 사랑의 거미줄을 친 시골 처녀의 운명이 예견되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 홀그레이브의 말 >> - 일곱 박공 집에 세들어 살고 있는 청년으로 은판 사진사로 피비와 결혼하게 됩니다. 현재를 짓누르고 지배하는 전통이나 과거야말로 모든 해악의 근원이라고 주장합니다.
* 과거는 마치 거대한 시체처럼 현재 위에 얹혀 있어요. 그건 마치 젊은 거인이, 죽은 지 한참 된 할아버지 거인의 시체를 그저 품격 있게 장례를 치르기 위해 옮기느라 모든 힘을 낭비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경우예요. 잠깐만 생각을 해 봐요.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지나간 시대의 노예 노릇을 하는지 알고 놀랄 거예요.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죽음에 대한 노예죠!
* 망자의 책을 읽고 있는 거라고요! 망자의 농담에 웃고 망자의 비애감에 울고! 육체적으로든 도덕적으로든 망자의 병을 앓고, 죽은 의사들이 자기 환자들을 죽게 만든 똑같은 치료법 때문에 죽게 되죠! 살아 있는 신을 망자들의 형식과 교리에 따라 숭배하고요! (···)우리가 또한 망자의 집에서 살고 있다고도 얘기해야겠죠. 예를 들면 이 일곱 박공의 집이 그렇잖아요!
* 한 집안을 뿌리내리다니! 인간들이 저지르는 대부분의 잘못과 해악이 바로 이 생각에서 비롯된다고요. 그러나 한 집안은 길어야 반세기마다 한 번씩 그보다 더 큰 오묘한 인류 집단으로 합쳐져 들어가 그 조상에 대해서는 모두 잊어야 해요. 인간의 핏줄이 건강함을 지키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흐름을 따라 흘러가야 하는 거예요.
* 어쨌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얼마나 좋은 곳인지!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운지! 정말로 썩어 버렸거나 벌레 먹은 것이라고는 없이 또한 얼마나 젊고 기운찬지! (···)헵지바 아주머니는 사회로부터 스스로 고립되어 사회와의 진정한 관계를 모두 상실했고, 사실상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 이런 방식의 죽음은 과거 세대부터 계속 그 집안의 특이성이었어요. (···)대개 핀천 판사의 나이 정도에 보통 어떤 정신적인 위기로 인한 긴장이나 격렬한 분노에 휩싸인 사람에게 나타나요. 그 옛날 몰의 예언은 아마도 핀천 가문의 이러한 신체적 질병의 소질을 알았던 데서 나왔을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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