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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무 Jun 07. 2022

친구가 써 준 생일 편지에 눈물이 났다

존경하는, 믿음직스러운, 사랑하는 평생 친구에게

여름을 알리는 덥고도 시원한 냄새가 시작될 때쯤, 내 생일이 돌아온다.


매년 시끌벅적하게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친구들이 있어 올해도 행복한 6월을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원래 주목받는 것을 꽤 즐기는 편이고, 사람들의 앞에 서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우연히 만나게 되는 자리가 있으면 '아가, 나가봐!' 하는 엄마의 은근한 기대심 때문이었는지, 애초에 나는 타고나길 이런 사람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여러 명이 모이는 모임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자리도 전혀 어렵지 않다. 학생 때는 친구의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 생일 당일에 케이크를 7개 받아 집에 들고 갔던 기억도 있다. 당연히 지금의 친구들은 그 정도는 아니다. 좁은 대신 깊어진 느낌.


그런데 이런 내가 조금 힘들어하는 자리가 있는데, 바로 내 생일파티다. 행복한 6월을 보냈다는 말과 너무 모순되지만 나는 내 생일파티가 항상 어렵다. 다른 친구의 생일파티라면 목이 쉬도록 떠들고 누구보다 신나게 놀며 생일을 맞은 사람을 누구보다 신나게 만들어 줄 자신이 있는데, 내 생일에는 그게 어렵다. 나를 위해 모인 이 사람들에게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고, 내가 이 정도의 사랑을 받아도 되나 싶기도 하다. 그 약간의 민망함으로 나는 평소만큼 마음 놓고 신나게 놀지 못한다.


어제는 나의 '큼직하게는' 3번째, '작게는' 6번째 정도 생일파티였다. 내 사랑스러운 친구들은 파티룸을 빌려 해피벌쓰데이 풍선, 내 사진이 큼지막하게 들어간 현수막을 벽에 붙이고, 풍선도 불고, 나와 친구들 얼굴이 들어간 티셔츠까지 맞춰서 왔다. 밥도 맛있게 먹고 스냅 촬영 부럽지 않게 열심히 포즈도 취했다. 그러던 와중에 공실이라는 친구가 말했다.

"너 생일날 기 빨리는 스타일이지. 너 작년에도 이 표정이었어!"


드디어 들켜버렸다.

내가 힘들다는 걸 공실이가 눈치채 버린 순간이었다. 숨기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생일파티를 민망해하는 나의 모습이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 웃으며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너무 고맙고 즐겁지만 사실 이런 주인공 자리가 민망하고 부끄럽다고.

결국 나는 어제도 정말 즐겁게 놀았다. 생일파티의 마지막 단계인 케이크까지 다 먹고 나니 나는 다시 에너지가 차올라서 원래의 텐션으로 놀 수 있었다.


공실이는 나를 아주 잘 아는 친구다. 그래서 내 표정을 보고 내가 어떤 상태인지 들켜버린 것 같았다.

집에 와서 공실이가 써준 편지를 읽고 나는 또 눈물이 났다.


어찌 됐든 나는 네가 지금 행복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더라고. 그리고 너의 선택을 믿어!

그러니 난 언제나 널 응원하고 너의 얘기를 들어주고 같이 호들갑 떨어주는 사람이 될게! 지금까지 너에게 배운 것도 받은 것도 정말 많다. 네가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나도 너에게 의미 있는, 힘이 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언제나 고마워.

존경하는, 믿음직스러운, 사랑하는 평생 친구에게


생일은 참 좋다. 평소에 쉽게 듣지 못했던 따뜻한 고백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이번 생일에는 용기 내어 부모님께 이야기했다. 진심을 담아 이 말을 뱉기까지 만으로 27년이 걸렸다.

"엄마 아빠,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모범 답안이 돌아왔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다.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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