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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무 Aug 02. 2022

"그만해"와 "구만훼"

웃으며 받아줄 수 있는 농담에 대하여

나는 장난을 좋아한다.

많지는 않지만 점점 인생 경력이 쌓여갈수록 '말장난'을 더 사랑하게 된다. 왜 어른들이 '아재 개그'라고 부르는 시시콜콜한 언어유희를 공부하게 되는지 알 것 같다.

나는 원래 상대를 비하하거나 비방하는 식의 개그 스타일을 싫어하고, 그래서 방송에서 재미있다고 떠들어대는 연예인들이 종종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이유들에서 나는 내 최측근들을 사랑한다.

상대를 낮추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장난들에 배가 찢어지게 웃을 수 있다. 나는 나와 내 최측근들이 건강한 말장난으로 행복해하고 있음에 큰 자부심을 가진다.


초등학생 때부터 내 친구였던 뚜뚜는 나보고 유재석 같다고 했다. 마치 유재석이 친한 동료들에게 말장난을 하는 것처럼 내가 놀린다는 것이었다.

그 비유가 싫지 않았다. 유재석 씨가 방송에 나와 말장난들로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마저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친하게 지내던 동기들끼리도 이런 말장난이 심해졌는데, 어느 날은 문득 서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이런 내 농담이 기분 나쁠까? 장난 그만할까?"

친한 사이에 장난을 그만할까 하는 그 질문이 조금 낯간지러워서 우리끼리 약속을 만들었다.

"그만해? 구만훼?"

대답이 '그만해'라면 정말 장난을 멈추면 되고, 대답이 '구만훼'라면 '짜증은 나지만 나도 지금 너무 재미있으니까 더 놀려도 돼' 정도의 뜻이 된다.

(나를 놀리는 말들이 너무 짜증 나지만(빡치지만) 어이없고 너무 웃겨서 더 짜증 나. 그만하라고 말릴 수 없는 내 자신이 짜증 나. 근데 또 웃겨.)

'구만훼'는 그만해를 가장 개구지게 표현한 말이다. 짜증 나고 귀찮은 친구가 장난을 계속할 수 있도록 신호등의 역할을 해 준다.

우리는 이 규칙이 썩 마음에 들었다.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상대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유쾌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웃을 수 없는 장난일 수도 있다.

우리는 진중하거나 정중하지는 않지만 와글와글하고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생길 수 있는 무례함을 경계한다.

나는 지금도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그만해와 구만훼를 설명해준다.

적당한 선에서 서로 행복하게 웃기 위해서 귀여운 규칙을 세워본다.


사람들은 간혹 애매하고 아슬한 선을 넘는다. 장난이란 단어로 무례를 덮기에는 사람 마음이 참 어렵다.

앞으로도 나와 우리가 그만해와 구만훼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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