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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무 Sep 10. 2022

스크래치 난 반지가 꽤나 멋지게 느껴졌다

예민한 나를 달래는 방법

 나는 언니와 4살 차이가 난다. 동생이라면 흔히들 그러겠지만 언니가 하는 건 항상 예뻐 보이고, 더 좋아 보였다. 언니가 성년의 날 선물로 엄마와 종로에 가서 금반지를 사서 끼고 왔을 때 나는 그게 그렇게 부러웠고 뭔가 의미가 잔뜩 담긴 선물 같았다. 나는 언니의 금반지가 엄마가 언니에게만 준 특별하고 큰 마음이 담긴 물건이라 느껴졌다. 어린 마음에 나도 가지고 싶다고 떼를 썼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너도 성년의 날에 사달라고 해."라는 말이었다. 분하고 억울하지만 나도 그때가 되면 얻을 수 있겠지 싶었다.

 내가 첫 성년의 날을 맞이했을 때 엄마가 여러 일로 이래저래 바쁘셨다. 그래서 난 언니가 성년의 날에 받은 그 특별하고 소중한 금반지를 '선물'받지 못한 것이 꽤나 오래 섭섭했다. 결국 몇 번을 울고 서운함을 표현한 뒤 엄마와 종로에 가서 금반지를 얻어냈다.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달리 과정이 순탄치는 못했지만 나도 우리 엄마가 '선물'해준 '나의 금반지'가 생겼다는 것이 참 행복했다.

 그렇게 금반지를 왼손 검지에 끼고 나서 괜히 자신감이 생겼다. 엄마가 준 특별한 반지를 낀 내가 너무 좋았다. 물건을 특별히 잃어버리는 성격도 아니라 몇 년을 그렇게 잘 끼다가, 일이 생겼다.

 

 지구과학 수업으로 건물 옥상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달을 관측하던 날이었다. 그 날 처음으로 망원경을 통해 본 달은 생각보다 더 밝았다.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보이는 달에 나와 친구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서 옥상 난간을 손으로 잡다가 옥상  시멘트에 반지가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나 다를까 반지 한쪽이 거친 시멘트 면에 긁혀 깊게 스크래치가 났다. 정말 짜증 났다.


 나는 좀 내 물건에 예민한 편이었는데 설명하자면 이런 모습이었다.

문제집을 절대 구기거나 접지 않고 끝까지 풀었다. 친구들이 일부러 장난처럼 내 종이를 접으려고 한 적도 여러 번 있다. 물건을 새로 살 때는 진열되어 있는 모든 물건을 살펴보고 가장 깨끗한지, 실밥이 빠져나와있지 않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구입했다. 전자제품에 흠집이 생기면 내 마음도 흠집난 것처럼 아팠다. 내 필기노트에는 내 글씨만 적혀야 하고, 낙서하는 것은 용납이 안됐다.

 

 그러던   소중한 반지에 생긴 스크래치는 순식간에  마음을 바닥으로 던져버리는데 충분했다. 옆에 있던 친구에게 바로 속상함을 이야기하고 반지를 만져보다가 갑자기, 진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달을 보면서 생긴 스크래치..?"

 다른 것도 아니고 달을 보면서 생긴 스크래치라니. 좀 멋있었다. 그래서 반지의 흠집을 계속 만지는 것 대신에 내 마음을 달래기로 결정했다. '달을 보다가 소중한 반지에 생긴 스크래치는 좋은 의미일 거야. 내가 언제 또 달을 보겠어? 달을 보던 날을 기념하려고 반지에 각인 새긴 걸로 할까?'

 

 이 날을 시작으로 나는 예민한 나를 달래는 방법을 찾았다. 예전처럼 흠집이나 더러운 자국에 스트레스받는 대신, 그 순간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방향을 틀었다.

 새로 산 아이폰에 있던 흠집, 이케아에서 데려온 코끼리 인형 코에 실밥이 풀려있던 것, 언니가 사준 비싼 지갑의 얼룩들 모두 내 물건임을 알려주는 추억이자 표식인 것으로.

 그래서 이제는 금방 마음이 괜찮아진다. 새로 산 물건에 흠집이 있어도, 소중한 물건이 조금 더러워지거나 어딘가 깨지더라도.

 물건보다 내 마음이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을 이제는 안다. 언젠가 성묘를 갔다 오며 내 손가락에서 쑥 빠져 사라진 스크래치 난 그 반지처럼. 잃어버림 또한 소중한 기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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