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도 지지 않고>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욕심은 없이
결코 화내지 않으며 늘 조용히 웃고
하루에 현미 네 홉과 된장과 채소를 조금 먹고
모든 일에 자기 잇속을 따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들판 소나무 숲 그늘 아래 작은 초자집에 살고
동쪽에 아픈 아이 있으면 가서 돌보아 주고
서쪽에 지친 어머니 있으면 가서 볏단 지어 날라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말라 말하고
북쪽에 싸움이나 소송이 있으면 별거 아니니까 그만두라 말하고
가뭄 들면 눈물 흘리고
냉해 든 여름이면 허둥대고 걷고
모두에게 멍청이라고 불리는
칭진도 받지 않고 미움도 받지 않는
그러한 사람이 나는 되고 싶다
미야자와 겐지 <비에도 지지 않고>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고
이 문장에서 한참을 머물렀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잘' 보고 듣고 알고 그래서 잊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어떤 국가적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쏟아지는 자극적인 기사들 속에서 재미만을 찾고 있진 않았는가.
진정으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슬픔이 멎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는가.
여야를 막론하고 자기 잇속만을 따지고 있진 않은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매일 같이 뉴스 기사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갈등들.
층간소음,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키즈존….
우리는 모두가 갈등하고 반목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기사 속을 벗어나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 주위엔 아직
울고 있는 아이에게 따뜻하게 웃어 줄 어른이,
유아차를 끌고 건물에 들어가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고 기다려 주는 이웃이
키오스크 앞에서 서성이다 발걸음을 돌리는 노인에게 기꺼이 도움을 추는 청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선뜻 도움을 자처할 수 없는 사회적 이슈들도 많습니다.
남을 도우려다 되려 피해를 보는 일들도 종종 일어납니다.
그러한 나쁜 마음에 지지 않고 이웃에게 선뜻 손내밀 수 있는
함께 울고 웃는 연대하는 사회를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