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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길에 요르단 국경에서

by 이스라엘 이영란 Feb 2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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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돌아오는 날에

어제 4명의 시신을 건네 받은 것에 대한 애도 항의 강한 저항 분노 등  많은 감정이 오고가는 것에 대한 표현이랄까  이스라엘로 들어가는 알렌비 국경이 어제 오늘 닫혔다. 이스라엘 국경에 전화하니 2분 후에 열린다는 정보를 준다. 하지만 요르단 쪽에서는 어제 와서 절차를 밟고 퍼미션을 받은 사람들 우선으로 지금 국경문을 들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오늘 온 사람들은 국경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어린 아이 2명과 함께한 엄마 그리고 가자지구의 환자들을 이스라엘로 넘겨주는 평화운동가 한명의 시신을 돌려받았다. 하지만 건네 받은 여성 시신은 그 아이들의 엄마가 아니었고 건네받은 관의 열쇠도 맞지 않아 죽은 자에대한 예우를 갖추지 않아 더 울분을 토하게 했다.


이스라엘은 깊은 애도 속에 묵비권을 행사하듯 침묵속에 말없이  요르단 알렌비 국경을 닫았다. 이 국경은 이스라엘인들은 이용하지.읺고 외교관들이 오고가는 길이다. 대체로 팔레스타인인이나 비자가 있는 관광객이 오고가는 길이라 팔레스타인에 대한 저항의 한 방법인 셈이다.


아 그래도 오늘 이스라엘 집에 들어가야하는데 .

이집트 여정을 마치고 어제 요르단 암만에 들어와 하루를 자고 새벽 6시반에 (이스라엘 시간으론 5시반) 에 일어나 새벽 택시를 불러 30 요르단 돈을 주고 (호텔 택시라 5 정도 더 불렀다 . 새벽이라 택시도 없었고 비가 오고 있다) 새벽같이 나왔다. 7시 반에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 일찍 넘어가기 위함이다. 왠일인지 이미 벌써부터 100명은 족히 국경 문앞에 모여있다. 이들도 한국인들처럼 일찍부터 오는구나 싶었다. 워낙 이스라엘 들어가기 쉽지 않기에 그런가보다 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국경 근처에는 넘어오는 사람들 들어가는 여행객들에게 구걸하는 아랍인들이 많다. 아이들 머리는 몇년을 감거나 빚지 않은 듯한 푸석한 머리에 쓰레기통을 뒤지는 아이들도 있다. 애잔한 마음에 뭐라도 주고 싶지만 그러면 동네 아이들이 다 몰려와 구걸하니 그도 어렵다. 대체로 아이들이 사람들에게 접근해 사돠라도 얻으면 그 하나는 엄마에게 가져다 주고 자기 하나 먹곤한다. 그런 사람들이 손을 내밀며 구걸하는 그런 곳이다 .


2시간을 기다린 끝에 우리는 어제 온 사람들만 보내주는 것을 보고는 여긴 안되겠다 싶어  다시 벳샨 국경에 전화해 2시까지 열린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9시반에나 되어서 동네 식당에서 치킨을 먹고 마음과 정신을 추수린후 택시를 잡아 벳샨으로 향했다. 1시간 반정도 걸리는 거리다. 택시비는 25 파운드를 주고 다시 벳샨으로 향했다.


벳샨 국경은 한산했다. 마침 한 택시가 도착하는데 그 후세인 국경에서 본 분이다. 25 파운드 적지 않은 돈이라 그래도 돈있는 사람들만 이곳으로 올수 있다. 점잖은 남성분이 짐을 들어주기도하며 우리를 도와준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라 더 크고 깨끗하다. 예전에 팀 데리고 넘어올때는 그렇게 후져보이던 곳이었는데 후세인 국경 생각하니 정말 좋아보인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살지만 산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산다고 하면 그 때부터 약간 질문이 길어진다.  투어리스트라고 얘기하는 것이 가장 정답이다. 시내산에서 3ㅔ여년을 사셨다는 한분의 말로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넘어올때 요르단에 간다고 말하고 요르단에서 이스라엘 들어올때는 이집트에 간다고 말한다. 그냥 이스라엘은 트랜짙하는 곳이니 그냥 통과해 달라는 얘기다. 요르단과 이집트는 이스라엘을 넘어가야 달수 있는 땅이다 보니 그러면 통과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얘나 지금이나 이스라엘은 지나가는 길이니 말이다. 우리도 왠만하면 그냥 그렇게 넘기는 편이다. 이스라엘 간다고하면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 껄끄러워하니 말이다.  


여튼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의 현대식 장비가 있는 국경 보안 시스템을 넘어 벳샨으로 넘어왔다. 에게드 971번 버스가 2시 15분에 있어 45분을 기다리며 점심도 먹고 이집트에서 사온 칩스도 까먹으며 버스를 기다렸다. 그저 집에 갈수 있다는 희망으로 기다림이 즐거웠다. 후세인 국경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다 뒷걸음칠 많은 아랍인들과 오전에 만난 프랑스 무슬림 여성이 떠오른다. 30대로 보이는 하얀 피부의 프랑스 관광객은 그저 요르단에 들렀다 잠시 예루살렘만 본다고 왔다가 100여명의 인파속에 묻혀 있다 돌아갔을 것이다 .


택시타고 오는 내내 잠자고 버스 타고 오는 중간 중간 피로감에 눈 붙히며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버스터미널이 집에서 15분 거리라 예루살렘의 유정이에게 전화하니 근처까지 와주었다. 공부로 바쁜 날들이라 픽업만 해주고 유정인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오자마자 빨래 빨고 자고 일어나니 남편이 케밥을 사왔다. 대여섯개 먹고 또 잠이 들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아침 6시다. 정말 고단한 하루였다. 그 사이 요르단의 현실과 이스라엘의 긴장감에 국경을 오가는 개인의 긴장감도 더  느껴지는 하루였다.


대담한 남편덕에 이렇게 오고가지만 다른 사람 같으면 아예 이런 여행 조차를 계획할수 없다. 30년 넘게 살아온 남편의 노하우덕에 한치 앞으로 내다볼수 없는 순간 순간. 초긴장의 여정이다. 택시 기사는 기사대로 어떻게 하면 이 손님에게서 돈을 더 받아낼수 있을까를 궁리하며 우리에게 친절을 베풀고. 주위 어디서는 돈과 지갑 가방을 빼앗아가려는 배고픔에 지친 사람들의 눈초리를 피해해하며  국경에선 국경대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시선들에게 우리의 정당함을 알려야한다. 외국 삶은 그래서 쉽지 않다. 외국 여행은 그래서 위험하다. 그래서 단체 여행을 하지만 그만한 보안을 위한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다.


이집트에서는 버스 기사와 가이드뿐아니라 일정을 함께하는 보안 요원이 차에 타기도 한다. 가는 곳마다 경찰의 검문을 받고  받을 때마다 돈을 쥐어주기도한다. 외국인을 태우고 가면 검문이 더 심하다며 우리에게 모자를 푹 뒤집어 쓰라고까지 했다. 한번은 고속도로로 가지 않고 후미진 곳으로 가기에 왜 그러냐고 하니 고속도로로 가면 검문을 많이 받아 이곳으로 간다고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늦어져서 경찰에 붙잡혔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경찰 호위 없이는 갈수 없다하여 2시간을 기다린 끝에 호위를 받으며 올라간 적도 있다.


고센지역에서는 이곳은 경찰 호위없이는 갈수 없다하여 버스 앞에서 계속 길을 열어주며 갈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사람들이 나쁜건 아니다. 단지 워낙 못사는 곳이라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고 헤코지할까봐 그러는것 뿐이다.


이번에 고센땅을 다시 다녀왔다. 가장 큰 시장을 들렀는데 사람들이 순했다. 물론 한 여성은 내 카메라를 훽 잡아 빼려했지만 그여성 빼고는 다 순했다. 오렌지 2키로에 1불 보금 넘었다. 정말 착한 가격이다.


바닥에 앉아 치즈를 파는 꼬마 아이가 마음이 쓰여 하나를 샀다. 65기니 다. 100기니를 주고 거스름 돈을 안받았더니 엄마와 딸이 우리를 계속 쳐다본다. 어느 분이 봉지를 주며 넣어준다. 아마 아버진가보다. 그 마음이 너무 따뜻해 감동할뻔했다. 그들도 그런 마음이었을께다. 전혀 그 마음에 관광객에서 더 돈을 받아내려는 마음이 없다. 그렇게 깨끗한 곳이다 .관광객에게 물들지 않은 곳이다.


그래맞다. 광광객들이 오면서 마을을 오염시키는 격이다.

그래서 이집트에는(다른 나라도 그렇지만) 현지가격과 관광객 가격이 있다. 특히 이집트는 워낙 낙후한 나라라 1불도 꽤 큰 돈이다. 5개에 1불하는 물도 관광객이 오면 2개1불이거나 1개1불로 판다. 현지 가격을 알면 관광객용 가격으로 살수가 없다. 관광객으로 다닐수가. 없다.


이 세상에 참 볼것도 많고 다닐 곳도 많다. 바울은 볼것 살것을 위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다녔다. 그는 돈도 많지 않았고 가는 곳마다 새로운 곳이었다. 우리처럼 차도 없고 지도도 없고 전화기도없다. 그가 말한 산의 위험 강의 위험 그리고 도시의 위험 .. 가장 어려운건 사람일수 있다. 알지못하는 사람들 .. 특히 국경과 도시에서 가장 어려움이 많다.


고후11: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한 목사님은 목회보다 힘들었다는 고백을 받으며 30여년의 남편의 사역을 칭찬해주기도 하신다. 이집트든 이스라엘이든 터키 그리스든 열흘을 같이 하는 사람들 마다 이 힘든 일을 어떻게 매번 하시냐며 감탄하기도하신다. 하지만 다들 다녀오고나면 그 매력에 평생을 그리워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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