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의존증의 가능성이 있다

약과 술 중에서 어떤 것을 고르시겠습니까?

by 김윤강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겠지만 성인 우울증 환자에게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술이 되겠다.

아, 나는 엄청난 술쟁이라고 믿고 있었다.

실제로도 엄청난 술쟁이였다.


일이 힘들었다.

나도 몰랐는데 일이 힘들어도 힘든지를 몰랐다.

싱글이었던 나는 엎어져서 코 닿을 데에 편의점이 있는 곳에 주로 살았다.

주말이 되면 편의점에서 네 캔에 만원인, 만원의 행복을 샀다.

그렇게 고생을 해서 버는 돈을 어디에 쓰겠나, 이 정도는 나에게 충분히 주어도 되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금요일 밤부터 무얼 볼 지, 뭘 마실지 고민하며 퇴근길에 맥주를 샀다.

집에 와선 파스타를 한 솥 만들거나 요리가 하기 귀찮은 날이면 편의점 닭강정을 사서 데웠다.

만원의 행복을 모두 위장에다 털어 넣고 술에 빙글빙글 취한 채로 잠이 들었다.

배는 부르고, 잠은 솔솔 오고, 하늘은 핑핑 돌고, 멋진 주말 밤이었다.


그렇게 5년을 살고 나중에 역류성 식도염을 얻었다만, 어쨌든.


정신과 선생님께 치료를 받던 초기에 술 이야기를 종종 했었다.


'주말엔 보통 무엇을 하나요?'

'결혼하기 전에도 주말이 되면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셨고 결혼 후에도 주말엔 맛있는 음식이랑 술을 몰아서 마셔요 남편과.'


그 주말이 엄청 기다려졌겠네요?


선생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던 계기는 저 한 마디였다.

불교에서 말하는 알아차림이 이렇게나 무섭다.


그렇다.

나도 모르게 주말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 주말이 오기 전까지 버티는 평일이 굉장히 힘들었다는 걸 깨달은 건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의 일이었다.


일을 하는 평일이 너무 힘들었다. 사실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

힘듦을 참고 또 참으며 월요일부터 금요일을 기다렸다.

주말이 되면 무엇과 술을 마실까 고민하며 음식을 시키고 폭음을 했다.

결혼을 하기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남편도 술을 잘 마셔서 술을 마시는 양이 늘었다는 점이다.

남편과 소주를 각 한 병씩 나눠 마셨다. 매콤하고 빠알간 안주처럼 남편의 얼굴이 붉어진다.

잠이 많은 남편이 먼저 잠들면 나 혼자서 맥주 네 캔을 마시고 영화를 보다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나면 숙취로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날들이 나이가 들어가며 늘어났다.


그래도 좋았다. 맥주가 맛있었다.

술에 취해 늘어지게 돌아가는 세상이 재밌고 좋았다.

힘이 쭉 빠지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국가가 나에게 허락한 유일한 마약.

술을 마시면 행복했다.

내일 뜰 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내일 갈 회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너무나 행복하고 좋았다.


그렇게 술에 찌들어갔다.




건강검진에서 늘 솔직하게 적으면 금주나 절주를 하라고 했던 걸 가볍게 무시해 본다.

무시의 대가는 처참하다.

알코올 분해가 엄청 뛰어나서 잘 마시는 건 줄 알았는데 딱히 그런 것도 아니더라.

유전자 검사 결과 알코올 대사량은 보통이었다.

그 보통의 몸뚱이에 나는 죽어라 술을 들이붓고 있었다.


스트레스를 푼답시고 발레를 하고 여러 가지 생쇼를 했지만 내가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방법은 음주였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행복을 얻고, 숙취를 얻고, 우울이 깊어졌다.


정신과를 다니면서 항우울제를 먹게 되니 주말에 자연스레 약 때문에 술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술을 먹을 수 없다니?!


무슨 시한부 선고를 받은 거 마냥 처음엔 절망적이었다.

술이 없는, 맛있는 안주만 있는 금요일 밤과 토요일 밤이 어색했다.

그래도 별 수 없이 견뎌보았다. 무알코올 맥주와 함께.

근데 또 웃겼던 점이 술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던 삶은 생각보다 너무나 잘 흘러갔다는 점이다.

금주한 지 석 달이 되던 시점에 자연스레 몸이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지내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술에 의존하고 있었는지, 술로 모든 걸 해결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주말을 보내면서 숙취로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머리가 맑은 토요일과 일요일.

술과 헤어지고 나서야 진짜, 더 활동적인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통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금주의 효과는 대단했다.


23년도에는 방만해져서 주말은 약을 거르고 술을 마시다 선생님에게 크게 혼이 난 적이 있었다.

대형 병원이었다면 크게 혼이 났을 거라고.

평소에 늘 따뜻하게 말씀해 주시던 선생님의 말씀이 유일하게 엄숙해졌던 순간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


나아진 지금 시점에서는 술은 1주나 2주에 한 번 정도로 마시고 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지만 알코올의존증과 알코올의존증의 가능성 어딘가에서 분투하고 있다.

그래도 뭔가를 잊으려고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 그 점에선 확실한 차이가 생겨 나는 나름의 성과를 얻었다고 느끼고 있다.

여전히 세네 캔의 맥주는 맛있다.

맥주를 마시고 나서의 그 빙글빙글한 세상이 좋지만, 조심스럽게 술을 대하고 있다.





'선생님 제가 혹시 알코올의존증일까요?'

'알코올의존증의 가능성이 있죠. 알코올의존증과 알코올의존증의 가능성이 있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우울한 기분과 우울증이 다른 것처럼요. 그 차이를 알고 조심해 주면 더욱 좋겠죠? 그리고 뭔가 술이 나에게 주는 보상, 선물의 의미와 결합이 되면 위험해져요. 술에다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약대신 주말 저녁마다 술을 마시고 난 후 선생님께 여쭤보았을 때, 선생님께서 저런 느낌으로 대답을 해 주셨던 것 같다.

평일에 힘들었던 나에게 주는 주말의 선물.

나는 술에게 보상과 선물이라는 과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술은 그냥 술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실제로 아픈 것과 아픈 것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

비슷하지만 큰 차이가 있는 어딘가의 경계에서 다들 불안을 잊거나 힘듦을 잊으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에게 술은 어떤 의미였을까.

술을 마시면 잊을 수 있다는 이유로 알코올의 늪에 나를 던져두어서는 안 된다.

그 늪에서 나를 건져내어 깨끗하게 닦아주고 돌보는 게 우선이다.

항우울제와 술 중에서 술을 골랐던 나를 반성해 본다.

여전히 알코올에 기대어 살고 있지만, 꼬부라진 혀와 뒤틀리는 걸음으로 세상을 비뚤게 걸어 나가기보다 잠시 주저앉아보기로 했다.

침잠의 과정을 거치고 두 발로 똑바로 서서 뚜벅뚜벅 세상으로 나아가보려 한다.

나를 해치는 거 말고, 진짜, 나를 살릴 수 있는 것들에 기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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