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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강 Mar 18. 2024

우울증에 좋은 약, 고양이!

고양이 똥을 치우기 위해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 동물을 키워 본 적이 없다.

9명의 대가족이 살았으니 더 이상의 털 달린 동물이 집에 있는다는 건 엄두도 못 낼 생각인 거다.

개나 고양이는 어림도 없었고 옛날에 집에 커다란 어항이 있었던 것만 어렴풋하게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게다가 동생이 어릴 적에 들개가 무서워 운 적이 있는데, 그를 찾으러 간 우리 할머니가 서둘러 나가는 사이에 사고가 생겨 다리가 부러지신 일이 있었다.

개가 짖자 할머니 다리가 부러지는(?) 오비이락 같은 일이 우리집에 일어났다. 어린 나에게 개는 다리를 부서뜨리는(?) 무서운 동물이 되었고 우리집에 인간 외의 동물은 영원히 허락되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하며 살게 된 충무로에는 오토바이숍과 펫숍이 나란히 있는 알 수 없는 골목이 있었다.

투명한 창을 벽처럼 두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강아지들을 볼 때마다 그때의 무서움은 사라졌지만 알 수 없는 무기력이 전염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그렇게 내 인생에 인연이 없던 동물이라는 존재.

내 삶에서 묘연(杳然) 해지는 듯하다가 결혼을 통해 묘연(猫然)이 이어지게 되었다.


원래도 고양이를 좋아했던 남편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고양이를 집에 들이기로 했다고 했다. 그 과정은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서울에 있던 남편이 경기도 의정부의 회룡이라는 곳까지 찾아가서 어린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가정 분양받아오는 것이 그 신중함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고양이랑 늙어 죽을 뻔했던 남편을 꼬셔서 내가 결혼이란 걸 하자고 했다. 남편이 결혼을 당하면서 고양이는 팔자에도 없던 웬 여자 사람이 자신의 영역에 침범함을 인지하게 된다.


고양이를 처음 만난 것은 그녀가 두 살 때의 일이었다. 어느 정도 숙녀로 자란 고양이에게 사람 어른 여자는 얼마나 낯설었을까. 어린 왕자와 여우가 서로를 길들이듯 우리도 그렇게 츄르로 서로의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면서 그녀와도 동거를 하게 되고, 나도 그녀의 참치 따개와 똥 치우개가 되었다. 건강 상의 이유로 간식을 자주 주지 않았던 남편 덕에 간식을 주는 나는 쉽게 그녀의 환심을 살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와 남편과 평화로운 생활을 이어가던 와중에 나에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 시절, 나는 스러져가는 나를 붙잡고 겨우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를 반복했다. 정말 아무런 에너지도 생각도 체력도 없었기 때문에 집에 오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가방만 던져둔 채 집에 고요히 누워있을 수밖에 없다.

에너지를 쥐어짜서 나를 응시하는 고양이를 들어 올린 뒤 내 배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그녀를 쓰다듬으며 호흡을 했다. 고양이가 무슨 무선충전기라도 되는 것처럼, 가만히 두 어 시간을 누워 있으면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생겼던 시절이었다. 퇴근을 하고 고양이를 안고 조용히 누워 있는 것. 우울증이 심하던 시절 퇴근 후 루틴은 그랬다.

우울증이 극심했던 2023년은 일어나는 것도 끔찍했다. 일어날 힘이 없었다. 일어날 수가 없었다. 출근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몸과 마음이 성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나를 일으켜야 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정신과를 다시 다니고 약을 먹어가며 겨우 일어날 힘을 만들기 시작했었다. 출근이 끔찍했던 나는 아침에 눈을 떠야 할 다른 이유가 필요했다.


그래서 아침에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가 자는 안방 화장실 쪽에 그녀의 작은 화장실이 놓여 있었다. 우리 집 고양이는 새벽 네시 반에서 다섯 시 사이에 꼭 소변을 본다. 그 작은 몸에서 오줌을 누는 소리는 얼마나 크게 나는지 모른다. 내 아침 모닝콜은 그녀의 오줌소리였다.

그녀의 모닝콜을 듣고 다시 잠이 들었다 새벽 여섯 시 반쯤에 눈을 뜬다. 일어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일어나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일어나면 꼭 해야 할, 작은 일들을 통해 삶을 회복해 나갔다.

눈을 뜨면 일어나서 암막 커튼을 걷고, 침대 이불을 정리하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웠다. 그녀가 새벽에 파묻어둔 이른바 '감자'라고 불리는 소변 덩어리들을 캐내었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고, 아침약을 먹고, 옷을 입고, 머리를 묶고, 나는 출근을 했다. 학교에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버텨보고 집으로 오자마자 고양이를 배 위에 두고 누워서 호흡을 했다. 그렇게 하루를 살고 이틀을 살아내니 어느덧 봄이다.


살아야 할 이유가 없어서 고양이 똥을 치우기 위해 살았다. 그런 하찮은 이유라도 살아는 졌다. 살아낼 수 있었다. 퇴근을 하고 고양이를 안고 조용히 나직였다. '오늘 하루도 다행히 보냈다. 언니가. 그래도 하루를 버틸 수 있었어.'라고.


우울증이 중증에 이르면 머릿속에 죽음만이 가득해져서 아마 고양이도 눈에 보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고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야 해서, 나는 그 작은 고양이에게 이유를 찾기로 했다. 물론 남편이 있지만 내가 죽으면 우리 고양이를 키워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 버렸다.

물론 우울증은 그런 이유마저 죽일 만큼 위험하고 어두운 병이지만 그 병과 싸워가며 이유를 세워야 한다. 그런 힘들이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아끼는 동물과 가족을 두고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마음이 참 아프다.


병을 낫기 위해 동물을 들이는 위험한 일을 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다만 내 주변의 작은 사소한 것들에게 작고 쓸데없는 이유들을 부여해 주는 건 어떨까. 저 식물에 매일 하루 물을 주기 위해서, 고양이 똥을 치우기 위해서, 출근 버스를 운전해 주시는 아저씨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 같은 것.


어떻게든 시간이 흘러서 다시 봄이 왔다. 또 무력하고 어떨 때는 벅차고 힘든 시간이겠다. 나는 또 묵묵히 아침마다 일어나서 고양이의 감자를 캐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래도 그 작은 일에 위대한 정신이 깃들 거라고 믿고, 또 믿고, 또 믿어보면서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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