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환자의 근황 소회하기.
병원에 다녀왔다.
2주에 한 번씩 다니던 병원은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 내원을 하고 있다.
임신을 준비 중이라 배란기 때는 약을 먹지 않는다.
그렇게 2주를 기다리다 생리가 시작되면 푸록틴의 최소 용량인 10mg을 아침에 한 알씩 배란기가 오기 전까지 먹으라는 처방을 받았다.
집에는 주말에 술을 마시느라 걸렀던 푸록틴이 쌓여 있어 따로 약 처방을 해주시진 않았다.
너무나 평온하게 일상이 흘러가고 있고 딱히 문제 될 것도 없다고 말씀을 드렸다.
일이 짐이 되지 않고 오히려 덤이 된 느낌이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빙그레 웃어주셨다.
9월이 오면 끝날 이 행복에 대해서도 조금은 담담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것대로 즐겨도 괜찮다던 선생님의 말씀에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선생님은 5월에 만나기로 약속.
작년에 급격하게 빠졌던 살이 다시 차올라 요새는 61-62kg 대를 오가고 있다.
쪘던 살들은 빠지지 않는다.
행복한 고경표와 살을 잃고 불행한 고경표처럼 살과 우울은 반비례의 관계를 지녔나 보다.
요즘은 내가 너무 건강하게 지내다 보니 조금의 우울을 지녀보는 건 어떻냐고 남편이 농담조로 이야기를 할 정도다. 사진에 찍힌 내 얼굴은 터질 것만 같다.
정확하게 1년 전에 54kg까지 빠졌던 것 같은데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갔나.
요즘의 가장 큰 고민은 다이어트와 임신 정도겠다.
그래도 건강히 먹고 술을 줄이고 단 걸 줄이면서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 중.
글을 쓰는 것을 잊고, 블로그를 미루고, 학교에 집중할 만큼 나는 잘 지내고 있다.
잠도 잘 자고 먹기도 잘 자고, 까무러치게 하던 위산도 잠잠하고 못 먹어서 생겼던 끔찍했던 변비도 사라졌다.
원래 시댁이나 친정이나 늘 나에게 잘해주셔서 문제가 없고 남편과의 관계도 최고조인 상태이다.
심지어 일도 즐거우니 지금 내 삶에서 거칠 것이 없다.
그래서 문득 '완치'라는 말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 우울증은 언제 완치 판정을 받을까.
병원은 이제 언제쯤 그만 다니게 될까.
언제쯤 완벽하게 단약을 하게 될까.
그런 걸 생각하니 이제 조금은 착잡해진다. 우울증은 우울을 먹고 자란다. 힘들었던 시기에는 '우울증 약'이나 '우울증 완치', '우울증 퇴사' 등을 하루종일 검색어에 치곤 했다. 그렇게 크고 작은 우울을 가진 사람들의 고통에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으며 지난한 시간을 버텨오곤 했다.
불에 덴 상처처럼 내 마음에는 우울이 지져버린 상흔이 남아 있다.
뽀얗게 새살이 올라오면 좋으련만 요런 상처에는 답이 없다.
그저 문득문득 얼룩덜룩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게 조심하는 수밖에.
잘 지내고 있고, 또 조심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이제는 우울증 완치 같은 걸 검색하진 않지만 그냥 누가 '넌 이제 완벽하게 나았단다.'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다.
완벽하게 낫는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그런 소망을 품어도 되는 걸까.
너무나 잘 지내고 있지만 동은이가 불에 덴 흔적을 더듬거리듯 나도 내 마음을 더듬어보는 중.
개인적인 이유로 시작한 이 글도 언젠가는 끝을 내야 하는데, 현생은 너무 정신이 없고 글쓰기의 동력이 되던 우울도 바닥을 보인다.
그래서 가끔, 가끔, 쓰고 있다.
한 단어라도, 한 줄이라도 쓰고 나면 내가 한 걸음 나아간 기분이 든다.
느리게 가도 좋으니 멈추지는 말자.
그렇게 위로하며 지내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