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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강 Mar 04. 2024

분명히 선생님은 봄이 온다고 하셨는데.

왜 제 침대는 아직도 겨울인가요.

호기롭게 브런치에 월, 수요일 연재를 하겠다고 브런치와 약속을 해 놓고는 연재를 미루었다.

길게는 2주도 미뤘던 것 같다.

그동안은 쏟아내고 싶었던 글들을 마구 써 놓고, 팬트리에 라면을 쟁여두듯 작가의 서랍에 넘버링을 해 두고 저장을 해 두었다.

월요일과 수요일이 되면 작가의 서랍에서 차곡차곡 쌓아둔 글을 하나하나 꺼내는 것이다.

시기가 지나니 라면이 떨어지듯 글이 떨어진다.

나는 글을 다시 쌓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문제는 글이 잘 나오지 않는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집중력이 흐려진 2월은 다시 무기력해져서 누워 있는 날들이 많았다.

특히 2월 중순은 더 그랬다.


날 아프게 했던 학교를 떠나, 새로운 학교의 신학기 회의를 참석한 뒤 개학까지 2주 정도의 시간이 생겼다.


잠은 남편과 비슷하게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잤다.

다만 차이는 남편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회사로 가기 위해 7시에 나가는 동안 나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오전 업무에 열중할 열 시 즈음이 되면 눈이 떠졌다.

암막 커튼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쏟아질 즈음에 되어서 일어나... 기는 무슨.

눈을 떠도 한동안 일어나기가 귀찮다.

침대에서 웅크리고 한두 시간을 더 보내고 나서야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암막 커튼을 걷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로봇 청소기의 전원을 누르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두 시간의 소음을 견디면 점심이다.

아침 겸 점심은 시리얼과 우유를 먹고 탄수화물로 졸려오는 몸을 다시 침대에 뉘었다.

숨숨집에서 얌전하게 자고 있던 고양이를 꺼내어 팔베개를 해 주고 같이 누워 있었다.

그렇게 낮잠을 고양이와 세 시까지 자고 네 시가 되면 그때부터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었다는 불안감이 마음속에 자라났다.

또 불안하구나.

불안을 다른 행동으로 잊어버리는 게 내 장기인데.

이번엔 '불안해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묵묵히 견뎌보기로 했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다. 사랑하는 고양이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덜 불편해진다.

하루의 절반을 잠으로 보내는 날들이 사흘을 넘어가자 그냥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다.

나는 방학이 되어도 수영과 발레를 다니거나 청소를 하거나 무언가를 보거나 블로그를 쓰거나, 뭔갈 꼭 하고 있었다.

뭐 하여간 많이도 하며 지냈다.

그래서 쉬어도 쉰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나 보다.

그리하여 이번 겨울은 꼼짝없이 누워 지내보았다.

겨울나기를 하는 번데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물렁해져서 한없이 녹아 없어지는.

해를 쬐지 않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기분이 다시 우울해질까 봐 두려운 마음을 안고 누워 지냈다.

누워 지내는 동안 세상은 너무나도 평화롭게 흘러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암막 커튼 그림자에 내 시간과 불안과 우울이 흘러갔다.

정말 번데기처럼 누워 있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산성 없이 누워만 있어도 세상은 너무나 잘 돌아가네. 어쩌면 나는 발도 없고 집도 없는 달팽이가 아니었을까.

달팽이처럼 기어가는 삶을 살아야 했는데 치타처럼 달리며 살았던 걸 아닐까. 그동안 다리도 없이 달리느라 내 몸뚱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누워만 지낸 지 1주 반 정도가 되니 내 하루가 11시에 시작하는 게 아직은 죄스럽긴 한데 그렇게 나쁘진 않다.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아침을 먹고 글을 쓰고 잠에 들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달팽이로 태어난 걸까, 치타일까, 물고기일까, 번데기일까. 아직도 내 정체성을 모르겠다.


‘선생님, 봄이 온다고 하셨는데 저는 아직 겨울이에요.

겨울이기 때문에 겨울을 나는 게 당연한데 여전히 움직이는 게 힘드네요 저는.‘

가만히 누워서 병원에서 들었던 말들을 한 자 한 자 곱씹으며 해가 떨어지고 별이 뜨는 걸 지켜본 지 2주가 지나고 3월이 왔다.


인간 번데기도 노동은 하러 가야 한다.

새로운 학교에서 입학을 하는 아이들을 맞이하고, 새롭게 받은 업무를 어찌어찌하고 돌아왔던 오늘이었다.

그래도 번데기처럼 꼼짝 않고 지낸 덕에 오늘 하루는 움직일 수 있었다.

껍데기를 조금 벗겨내고, 아직은 물렁한 다리와 날개를, 코끝이 시린 바람 속에 내놓아보았다.

나비가 될지, 민달팽이가 될지, 치타가 될지,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느릿느릿, 겨울 동안 모아 둔 에너지를 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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