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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강 Feb 14. 2024

우울과 글쓰기의 상관관계

기분이 좋아지면 글이 안 나오거든요

방학을 하기 전 가장 힘들 때에 학교에 2024년도에는 그만두겠다는 선언을 했다.

지긋지긋한 아이들과도 방학식을 하고 애들을 보내버렸다. 어찌나 싫던지.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애들과 진득한 일 년을 보내고 먼지를 떨어내듯 아이들을 보내버렸다.

그리고 방학이 왔다.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어쩔 수 없는 아침형 인간이라 회사에 다니던 때처럼 아홉 시나 열 시에 잠들고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는 삶을 살고 있지만, 방학을 한 지 열흘이 된 시점에서 커피를 늘렸더니 아홉 시에 자고 새벽 세 시에 깨는 일이 잦아졌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도 새벽 세시 사십육 분.

방학을 하면서 새벽에 깨는 일이 잦다.

새벽 세 시에 자던 사람이 새벽 세 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있다.


그동안 삶을 역행해서 살아왔다는 기분이 든다. 

내 삶은 역순행적 구성인 건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내 삶에 맞는 옷을 찾아 입은 기분이다.

새벽에 일어나도 졸립지가 않다.

(대신 아홉 시 뉴스를 할 때가 되면 너무나도 졸리긴 하다)

너는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쳐 자야 한다던 삼성역의 점술인 아저씨는 열두 시간은 자야 한다고 그랬는데, 우울증이 심할 때 그렇게 자고 나니 요즘은 여섯 시간 정도 자는 루틴으로 살고 있다.


우울함이 극심하면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먹고 자고부터 해야 하니까 글이 나오지 않는데 기력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면 내 안에서 글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글들을 저장해 두었다가 헨젤과 그레텔이 과자를 놓아두듯 한 점 한 점씩 내놓는 거다. 브런치에.


문제는 이렇게 '미라클 모닝'을 살고 있는 현재이다.


글이 안 나온다.


술술 풀리던 글들이 머리카락을 잔뜩 머금은 하수구처럼 꼴꼴꼴 글을 삼켜먹었는지 나오지 않는다.


글이 안 나온다.


새벽에 그래서 이렇게 노트북을 붙들고 아무 말 대잔치를 하고, 아침에 일어나 새벽 감성도 아니고 새벽 갬성에 취해 토해 놓은 토사물들을 치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온전히 나 혼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치유가 되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건 아닐까.


잠을 푹 자야겠다.


잠을 푹 자고 내가 스스로 깬 그 의지를 글에다 실어야겠다.


이 글도 발행이 될지 영원히 내 서랍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잘 다듬고 닦아서 세상에 내놓을 예정이다.


이만, 피곤해서 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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