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불안과 마주하는 연습
정신과 선생님에게 브런치에 우울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밝은 표정으로 칭찬을 해 주셨는데 자신의 해묵은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은 좋은 행동이라고 해 주셨다.
아이들의 경우 그것이 언어로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어서 미술 치료의 방법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활동을 한다고.
약간의 운동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음악을 듣든, 글을 쓰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건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칭찬을 받기 위해 한 일은 아니지만 선생님께서 긍정적으로 봐주시니 나도 기분이 좋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활동이 생활에 많이 스며들었다.
저장하는 글이 늘어날수록 곳간에 쌀이 차듯 마음도 두둑해지는 기분이다.
한 편으로는 글을 써내기 위해 내가 파묻어두었던, 마주하기 싫은 진실들을 부관참시하듯 다시 꺼내야 한다.
그 점은 썩 유쾌하지 않다.
애써서 겨우 외면했던 것들을 다시 꺼내서 응시한다.
오랫동안 파묻어놔서 악취가 나는 나의 진심들.
처음엔 우울로 시작했지만 결국 내 안에는 우. 울. 두 글자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불쾌하고 불편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오로지 나만이 이 똘~똘 뭉친 감정의 실타래를 풀 수 있을 테니까.
차라리 실마리에 불을 붙여서 화르륵 태워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황진이는 시간도 잘라서 이불속에 넣어두었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겠다는데, 나라고 못 할쏘냐!
'나는 똘똘 뭉친 감정의 실 끝에 불씨를 붙여다 활활 태워 마디마디 소멸하리라!'
하고 외쳐만 본다.
감정이 딜리트 키에 삭제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우린 모두 이렇게 고통받진 않았을 거다.
우울증에 대하여 탐구하면 탐구할수록 나를 알게 된다.
내가 강박이 심하고 불안도가 높은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3년에 아프면서 특히나 느끼게 된 것이 '불안'이었다.
편안하지 않다는 그 말.
언제는 편안한 적이 있었던가...?
나는 나 자신을 하루도 가만히 내버려 두지 못하는 사람이어서 가만히 편안히 있는 걸 못 견뎌했던 것 같다. 20대엔 뭐든지 하는 게 좋아서 알바든 연애든 공부든 봉사든 뭐든 했고 주말엔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취업에는 전혀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어쨌든 장학금도 야무지게 타고, ‘갓생’을 사는 대학 생활을 했다.
졸업을 하고 고시 생활을 할 때에도 최선을 다했다.
다들 열심히 하지만 나도 학원도 다녔고 스터디도 했고 독서실도 다니고 공부를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했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다들 최선을 다하는 시험에 떨어졌다.
시험에 떨어지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잘 되면 이렇게 해야지.'라는 생각보다 '또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임용고시는 시험이 서답 및 논술로 시험 유형이 바뀐 이후로 단 한 번도 모범 답안이나 예시 답안을 평가원에서 제시한 적이 없다.
답이 없는 문제를 계속 풀고 있는 게 안갯속에서 길을 찾아 더듬어가는 행위만큼이나 막연하고, 막막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답이 안 보이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암담함에 사로잡혔다.
그 막막함이 나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고시생 시절 여느 뉴스와 다름없이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았다는 평범한 뉴스를 들었던 오전이었다.
그 뉴스를 듣는 순간 갑자기 전쟁이 날 것 같은 불안함에 심장이 빠르게 뛴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황당한 떨림이었는데 그렇게라도 내 몸에서 불안하다는 걸 신호로 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신호들을 무시하고 또 무시하다 보면 공황장애처럼 펑하고 내 마음속에서 불안이 터지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공황장애 대신 우울과 불안장애를 얻게 되었다만, 어쨌든.
상담 과정에서 나는 통제하지 못하는 일이나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불안도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깊은 편이라 이를 다스리는 방법들에 대해 많이 상담받았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일어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 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구체화' 방법을 배웠다.
'일을 그만두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선생님의 질문에 막연하게 무서워지면서 불안이 마음속에 올라왔다.
그런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는 실제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대비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씀을 해 주셨다.
일을 계약 기간까지 만료를 하면 실업급여를 신청할 것, 이직확인서를 발급받을 것, 내일 배움 카드를 신청할 것부터 몇 월엔 무엇을 하고 몇 월엔 무엇을 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니 불안보다 미래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미래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걸로 잠시의 불안을 달랜다고 해도 현재의 불안은 어떻게 하나.
상담을 받던 여름에는 담임교사로서 벌여둔 복지 사업이나 아이들이 상금으로 벌어둔 돈을 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으로 느껴졌다.
이것들도 일의 연장선이라 일을 하면서도 불편하고 머릿속에 일이 계속 맴돌았다.
이것도 남아 있고 저것도 남아 있고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서 마음이 불안해요.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상담 선생님께서는 결정(!)을 내리는 솔루션을 제시해 주셨다.
결정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기한을 정하거나 결정을 하고는 더 이상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이렇게 올해도 아픈데 내년도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불안했다.
일을 그만두면 그만두는 대로 일이 구해지지 않을 테니 또 불안했다.
사실 그 과정에서 하는 고민에서 오는 불안이 가장 컸다.
몇 주 간 상담 선생님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지만 더 이상 약을 먹으며 일을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에 일을 중단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학교와 헤어질 결심을 했는데도 미래가 불투명해서 여전히 불안하긴 하다.
그래도 결정을 한 것에는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이 있다면 무언가를 결정하고 '안 돼. 안 바꿔줘. 돌아가.'모드로 내 결정을 밀고 나가면 조금은 덜 불안하다.
어쨌든 결정을 했으니까.
결정을 하고 나면 의외로 불안하지 않게 됐다.
구체화를 하고 결정을 하는 것들을 통해 나는 불안을 조금은 응시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불안하고 막막한 미래이지만, 작은 것부터 구체화하고 결심을 내려가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자 한다.
오랫동안 파묻어 둔 불안과 진실을 마주하는 연습을 해 본다.
손 대기도 싫었던 불안의 끄트머리를 잡고 한 올 한 올 풀어도 보고 굴려도 보기로 했다.
이걸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풀어 보는 과정에서 또 꼬이고 또 엉키겠지만 어쩌겠는가.
태워버릴 수 없는 걸.
서리서리 말려 있는 불안의 실타리를 하나하나 풀어다가 내 마음의 강이 흐를 때 구비구비 펴서 흘려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