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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강 Jan 29. 2024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내 마음속엔

자이가닉 효과 또는 자이가르닉 효과라고 하는 걸 교육심리 수업 때 배운 적이 있다.  

미완성 과제에 대해 더 기억을 많이 하게 된다는 효과.

시험의 경우 풀지 못한 문제가 더 생각에 많이 남고, 이루지 못한 첫사랑이 더 마음속에 남게 되는 이유.


내 마음속에 남을 자이가닉 효과는 정규직, 합격, 교사 이런 단어들일 것이다.


시험을 본 횟수가 네 손가락을 넘어가던 시점은 20대 중후반이었다.

공부를 잘했던 언니는 한의사가 되어 이미 자리도 잡고, 결혼도 했고, 아이가 있었다.

나에게 취직을 하거나 취집을 하라고 지극히 현실적인 소리를 했다.

위로든 조언이든 들어는 보고, 적당한 감사를 표하고 나는 서울로 돌아와 불안해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던 시절.


불안을 달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고 연애를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항상 뿌리가 없는 개구리밥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부유하는, 뿌리가 없는 삶.

어딘가 내 안에서 편안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나는 수험 생활 내내 불안해했다.

허생은 10년 동안 책을 읽어도 부족하다며 책을 더 읽고 싶어 했다지만 나는 책만 보는 삶에 불안함을 느꼈다.


안녕하세요? 무직입니다.
저는 임용고시 4 수생입니다.


이 문구가 나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게 왠지 부끄러웠다.


상반기에 학원일을 하고 하반기에 공부를 하다가 다음 해부터는 기간제와 일을 병행하게 되었다.

일이 좋고 재미가 있었다.

정교사와 같은 업무, 같은 강도의 일을 했다.

힘들었지만 쓸모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고되어도 재미가 있었고 아이들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일에 취해서 공부를 손에 놓게 되었다.




지금도 일이 재밌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글쎄요.이다.

지금도 아이들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요.이다.

기간제 교사라는 일의 달콤함에 취해서 공부를 손에 놓은 그런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


안녕하세요? 내년에 무직이 될 사람입니다.
저는 임용고시 10년 차 고시낭인입니다.


포신구화(抱薪救火).

섶을 지고 불을 끄러 들어가는 어리석은 삶이었단 생각을 했다.

그 과보를 한꺼번에 받은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우울증에 걸리고 나서부터는 교직에 대해 추호도 미련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까지도 교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결국 이 뫼비우스의 띠가 지금의 우울증을 만든 건 아닐까.


아직도 모르겠다.


합격을 했다면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까?

정교사가 되었다면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까?


이루지 못한 첫사랑처럼 그 생각은 내내 내 곁을 맴돈다.

묶여 있는 것이 습관이 된 낙타가 줄이 풀려도 어디를 가지 못하듯, 내 마음은 빙ㅡ빙 학교 주변을 돌고 있었다.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었던 삶이었구나.

그렇게 하면 안 됐는데.

멋 모르는 사회 초년생은 그렇게 학교에서 자신을 불살랐다.

학교에서 내 몸이 익어가는지도 모르는 채 그렇게 활활 타고 또 탔다.

고시 낭인은 불 속에 누워 있다가 다 익어버린 팔의 수포를 터뜨리며 생각해 봤다.


떠나야 한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하였다.

나의 인연은 여기까지이니라.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나는 자유로워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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